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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분더 Feb 23. 2023

나에게도 기댈 식물들이 필요한 걸까

독서기록, 어떤 날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

#독서기록 #책읽기 #어떤날은식물들에기대어울었다 #이승희



이름 때문이었을까. 작가가 당연히 여자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 


내가 동경하는 삶이다. 작은 마당이 있고 그곳에 과일나무 한 그루쯤은 있고 계절마다 다른 색상의 꽃들을 잎들을 마주할 수 있고, 여름 비가 오늘날에 집 안 한쪽 구석에 앉아 식물들과 비가 가득한 작고 푸른 공간을 넋 놓고 바라보는 일. 


한국에서 보다야 여기서는 더 실현 가능한 일이지만, 나는 식물을 살리기보다는 죽이는데 더 능하다. 정원에 대한 로망을 갖고 그것을 실현시켜 사는 사람들에게 정원을 소유한 자의  현실에 대한 푸념을 들고 있자니 마음속 깊은 저 구석으로 그 꿈을 몰아 내고야, 몰아지고야 말았다. 0층 집 정원을 건조한 나의 2층 집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지 아니하냐고. 스스로를 애써 위로하면서. 


그런데  이 책은 연둣빛 정원으로 나를 유혹하고 있다. 아. 어쩐단 말인가. 



e-Book



사실, 돌봐준다는 건 나 역시 돌봄을 받는다는 말에 다르지 않다. 무엇인가에 마음을 준다는 것은, 그렇게 마음의 흐름을 갖는다는 것은, 그것 자체가 둘 사이에 시냇물 같은 게 생기는 거니깐. 


그게 한쪽으로만 흐른다 한들 서로 닿아 있다는 말이니깐. 거기에 발목도 담그고, 얼굴도 비춰보고. 안부도 전하면서. 


소리는 내게 직선으로 오지 않아서 더욱 좋다. 둥글게 돌아오는 소리, 집 안의 사물들에 여기저기 부딪혀서 건너오는 소리, 이를테면 책상에도 부딪히고, 모서리에선 잠시 길을 잃고 헤매기도 하고, 책장에 가득한 시집들 제목을 한 번쯤 훑고 오는 그런 느낌 말이다. 


어떤 관계든 그것이 관계가 되거나 관계로 남을 수 있다는 것은 함께 나눈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 기억이 나쁜 것이든 좋은 것이든, 아무튼 쌓여간다는 것은 그 관계가 그만큼 밀접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도, 심지어 가족이라도 함께 나눈 기억이 없다면, 그 관계는 관계로서의 힘을 잃어가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식물과의 교감이라는 것도 그렇다. 사소함이 모여 생활을 이루는 것처럼, 조금씩 쓸쓸한 마음이 모여 어딘가에 닿는 간절함이 되는 것처럼, 식물과 나는 아무 말이 없어도 혹은 함께 죽자고 말하지 않았어도 날마다 보내는 사소함이 꽃을 피우고 마음 따뜻해지는 결이 된다. '결'이라는 말은 얼룩이나 흔적이 담아낼 수 없는 고요하고 따뜻함이 느껴지는 온도 같아서 좋다. 


내가 아닌 식물에게 내어주는 한 평 혹은 어떤 공간들. 그렇게 만들어놓고 함께 살자고 하는 마음, 꽃밭이라는 말속에는 그런 마음이 살고 있으니깐. 


그리고 마음속에 벌써 맑은 시냇물 한 줄기를 담고서 물을 주는 사람들이다.


이건 아마도 미루나무 때문은 아닐 테고 미루나무와 함께했던 내 기억의 어떤 부분들 탓일 것이다. 어떤 음악을 들으며 그 음악과 함께 그 음악을 들었던 때의 기억들이 함께 떠오르는 것과 같다. 


특히, 뱅갈고무나무의 연두색은 세상 예뻐 코를 박고 죽고 싶을 정도다. 


채송화 씨앗은 참 작다. 가만히 보면 은빛이 살짝 나기도 하는 아주 작은 씨앗이다. 하지만 모든 식물의 씨앗에는 모체를 생산할 때 필요한 모든 유전 정보가 그 안에 담겨 있다. 더불어 스스로 성찰할 힘을 얻을 때까지 살아갈 영양분도 갖고 있다. 그러니깐 채송화 씨앗에는 채송화의 우주가 담겨 있다. 


식물은 작은 혀처럼, 막 생겨나는 무릎처럼, 한낮의 옹알이처럼, 돋아나는 새순은 그것 자체로 압도적으로 경이롭다. 


(어떤 밤은 식물들에 기대어 울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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