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준은 몸을 굽혀 이불 밖으로 나온다. 옆에 누운 낯선 얼굴을 들여다보고는 따뜻한 물 한잔을 받아들고 입 안을 행궈낸다. 이중의 블라인드를 걷어내고 이내 시선은 창밖에 머무른다. 35층 객실에서 아래를 내려다보자니 잠시잠깐 짜릿한 기분마저 들었다. 곧 그런 자신이 속물같고 쓰레기 같은 기분이 들어 욕실로 향했다.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기 때문이다.
그녀는 그를 기다리고 있다. 딸 아이의 아빠, 하지만 그걸 아는 사람은 없다. 그가 돌아오면 함께 수영을 하려고 수영복을 꺼내 입었다. 아침 수영을 즐기리라. 아무도 없는 곳에서 둘이서만. 사실 수영이 아니어도 좋았다. 그를 오래도록 안을 수 있다면.
잘록한 그녀의 허리가 돋보이면서 네크라인이 깊게 파인 수영복이다. 남자들의 시선이 오래도록 머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친구 연아가 선물해준 것이었다. 누구라도 만나 행복하고 안정된 삶을 살기를 바라는 연아의 바람이 고맙다. 검정 원피스 수영복은 그녀의 길고 하얀 팔 다리를 돋보이게 했고, 피부를 더 창백하게 보이게 했다. 연아의 말처럼 누구라도 홀릴 수 있을만큼 시선을 끄는 모습의 여자가 거울 속에 서 있다.
동준이 좋아해줄까. 아이를 낳고 예전보다 굵어진 허리, 처진 가슴도 그가 사랑해줄지 자신이 없어진 그녀는 못난 생각을 떨쳐내려 머리를 세차게 흔든다.
수영복 위로 린넨셔츠와 몸에 잘 맞는 스커트를 입었다.
커피를 내리고 침대 발치의 스툴에 허리를 세우고 앉아본다.
그를 만난 건 7년만이다. 오래오래 그를 끌어안고 싶었지만 애써 참았다. 그녀에게 돌아온 것이지 물어보지 못했다. 나를 위한 아침을 사러 간 것이리라. 멀지 않은 곳에 우리가 자주 가던 팬케이크 집이 아직도 영업중이라고 지난 밤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던가.
팬케이크 집에 다녀오고도 남을 시간이 지났다. 그녀는 침대로 돌아와 기대어 누웠다 몸을 일으켜본다. 문을 닫고 나와 그를 찾아 나서본다. 37층의 라운지에도, 2층의 식당에서도, 헬스장에서도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달리러 나갔을까. 달리고 웨이트를 하는 것은 그의 오랜 습관이리라. 그러고보니 처음 그녀에게 운동을 알려준 것도 동준이었다. 탄탄한 복부, 넓은 어깨. 그의 품에 안길때만큼은 그 단단함에 그녀의 불안같은 것도 사라질 것만 같았다. 운동을 마치고 그의 바이크에 올라타 그의 등을 끌어안고 기대어 바람을 가르며 달리던 날의 향기도 아직도 코 끝에 선하다. 얼굴을 간질이며 날리던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빗어주던 그의 손길도. 운동에 몰입하는 동준과 그녀에게 미치도록 빠져드는 순간의 동준이 그녀는 좋았다.
하지만 동준을 만나던 5년동안 그녀는 늘 꿈처럼 사라질 것만 같은 동준을, 다시 혼자 남겨져 동준을 기다리는 그녀를 애틋해했다. ‘이제 돌아온 걸거야.’ 애써 고개를 흔들고는 셔츠 위에 가디건을 다시 여미고 지하 4층 버튼을 누른다. 느리고 긴 호흡 위로.
지난 밤 발렛을 맡긴 차도 그대로인데, 어디까지 간 걸까.
라운지에 들러 오렌지 주스 한 잔을 마시고, 방으로 돌아온다. 빨간 리모와 캐리어에 짐을 담는 손길이 분주하다. 옷을 가지런히 개고 지난 밤 벗어둔 동준의 옷가지들을 바라본다. 그가 매고 온 가방과 함께. 그녀의 캐리어에 그의 짐들을 넣어도 될지 모르겠어서 한참을 바라본다. 침대 옆 탁상시계는 체크아웃 시간을 넘기고 있었다.
레이트 체크아웃을 신청해두고 더 기다려본다. 이렇게 짐도 다 둔 채로 떠나지는 않았을거야.
아직도 그의 쉐이빙폼과 묵직한 우디향이 호텔방에, 그녀가 기대 누운 배개에 그대로 남아있다.
그가 드디어 전화를 받았다.
“어디에요…?”
“나는 집인데…”
잠에서 깨어난 듯 동준의 낮은 목소리는 더 낮게 잠겨 있었다.
“나를 두고 혼자 간 거에요? 이번에도?…”
“……”
옷을 벗는다. 셔츠 안 수영복을 거칠게 벗어낸다. 그녀를 이토록 괴롭게 하는 것이 수영복인 것마냥. 참을 수 없는 수치심이 밀려든다. 그럴 줄 몰랐냐는 그의 물음은 삭제되어 있었지만 그녀의 귓가에는 계속해서 맴돈다.
아이를 깨운다. 발그레진 동그란 두 뺨을 쓰다듬는다.
‘다시 너와 나만 남았어. 미안해.’
다부진 손으로 캐리어를 세워 끌고 3517호의 문을 닫았다. 다시는 상처받지 않겠다는 다짐을 한다. 바라볼수록 동준을 닮은 딸아이를 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