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 없는 가르침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클리닉 시간이 되면 조교 선생님이 계신데도 꼭 원장실 문을 두드리는 고1 학생이 있습니다.
공부를 하러 온 건지, 출석 도장을 찍으러 온 건지 알 수 없는 질문들로 저와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이곤 하죠.
“선생님, 저 뭐 해야 해요?” “어디서 어디까지 공부하고 문제 풀어.”
잠시 후, 아이가 다시 나타납니다.
“선생님 문제 다 풀었는데요. 가도 돼요?” “채점했어?” “채점도 해야 돼요?” “... 당연히 해야지.”
얼마 뒤, 아이는 또다시 문을 빼꼼히 엽니다.
“선생님, 저 채점 다 했는데요. 이제 가도 돼요?”
“오답 확인하고 다시 문제 풀이 했어?” “오답 확인도 해야 돼요?” “... 당연하지, 오답까지 다 해야 간다.”
마침내 아이가 승리의 미소를 지으며 말합니다.
“선생님, 오답 끝났는데요.”
“그래, 이제 가라 가.”
불분불계 (不憤不啓) : 마음속으로 통분해하며 애쓰지 않으면 깨우쳐 주지 않는다.
— 《논어(論語)》 〈술이〉
본인이 부족한 점을 명확히 알고 그것을 채우려는 욕심으로 공부를 하는 것과, 선생님이 1부터 10까지 떠먹여 주는 것을 마지못해 하는 것 사이에는 거대한 강이 흐릅니다.
공부를 잘하고 싶다면 그저 시간 때우기식으로, 혹은 부모님께 보여주기 위해 자리에 앉아 있어서는 안 됩니다. 진짜 모르는 것을 알고 싶다는 갈증, '왜 이건 안 풀릴까' 하는 스스로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스스로 마음의 불을 지피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훌륭한 선생님이 일러주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 공부는 오늘도 30점, 내일도 30점이라는 제자리걸음만 반복하게 될 뿐입니다. 배움의 문을 여는 열쇠는 결국 선생님의 손이 아니라, 학생의 뜨거운 '열정' 속에 있습니다.
� [못다 한 이야기] 공자가 제자를 고르는 기준
공자는 가르침을 주는 데 있어 매우 엄격한 기준이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배우는 자의 '간절함'입니다. '불분불계'에서 '분(憤)'은 마음속으로 무언가 잘 안되어 끙끙거리며 애를 쓰는 상태를 말합니다. 스스로 답을 찾으려고 노력하다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스승이 한마디를 툭 던져 그 길을 열어주는 것이 교육의 본질입니다.
"이것도 해야 돼요?"라고 묻는 아이에게는 아무리 귀한 지식을 건네준들 귀한 줄을 모릅니다. 아이가 스스로 "이걸 꼭 알고 싶어요!"라고 눈을 반짝일 때까지, 때로는 그 간절함이 무르익도록 기다려주는 것 또한 스승과 부모의 인내심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