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선생님, 제 글에 빨간 줄은 긋지 마세요."

지적을 성장의 밑거름으로 삼는 용기

by 안선진

[오늘의 풍경]

글쓰기 수업을 하며 원고지 첨삭을 하다 보면, 아이들의 성격이 원고지 위로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유독 자신의 글에 손을 대는 것을 싫어하는 중학생 아이가 있었습니다. 빨간 펜으로 줄을 긋고 내용을 고쳐줄 때면 아이가 행여 상처받지 않을까 여간 조심스러운 게 아니었지요.


그 아이의 글에는 소위 ‘아는 척하는’ 내용이나 유식해 보이는 단어들이 가득했습니다. 본인은 그런 장식들이 글을 돋보이게 한다고 믿었지만, 실은 덜어내야 할 불필요한 무게였습니다. 그럴 때면 저는 직접적인 첨삭 대신 대화를 택했습니다. “이 문장에서 네 생각은 뭐야?”라고 물으며 아이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게 유도했지요. 흔쾌히 잘못을 인정하지는 않았기에 발전은 더뎠지만, 조금씩 마음을 여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성장이었습니다.


반면 고등학생들의 논술 수업은 공기가 다릅니다. 과감한 첨삭과 냉정한 점수가 담긴 원고지를 나누어 주면, 아이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한 줄 한 줄 꼼꼼히 읽어 내려갑니다. 점수가 납득가지 않거나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끝까지 질문하고, 점수가 좋으면 뛸 듯이 기뻐합니다. 자신의 허물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단단해지는 아이들을 보며, 저 역시 교육자로서 함께 성장하고 있음을 깨닫습니다.


[마음의 문구]

인 고지이유과칙희 (人 告之以有過則喜) : 남들이 자기에게 허물과 잘못이 있음을 말해주면 기뻐하였다.— 《맹자(孟자)》 〈공손추 상〉


[행간의 지혜]

누군가 나의 잘못을 지적했을 때 진심으로 기뻐하며 받아들이는 일은 어른에게도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배움의 자리에 있는 아이들에게 ‘지적’은 성장의 나무가 자라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밑거름입니다.


선생님의 자리에 있다는 것은 아이들의 수많은 잘못을 찾아내고 고쳐주어야 하는 숙명을 지니는 일입니다. 아이들이 저의 빨간 줄을 비난이 아닌, “네가 더 잘 되었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응원으로 읽어줄 때 성장의 나무는 무럭무럭 자라납니다. 나를 믿고 자신의 허물을 고쳐나가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제가 이 길을 걷는 가장 큰 이유이자 감사함입니다.


[못다 한 이야기] 자로가 성인이 될 수 있었던 비결

맹자는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를 두고 "남들이 자신의 잘못을 말해주면 기뻐했다"며 칭찬했습니다. 자로는 성격이 급하고 거칠기로 유명했지만, 누군가 자신의 허물을 지적하면 화를 내는 대신 오히려 고마워하며 그 즉시 고치려 애썼습니다.


글쓰기에서 빨간 줄을 마주하는 태도는 인생에서 시련을 마주하는 태도와 닮아 있습니다. "왜 나를 비판해?"라고 벽을 쌓기보다, "이 부분을 고치면 내 삶이 더 선명해지겠구나"라고 받아들이는 아이는 이미 성인의 마음가짐을 배우고 있는 셈입니다. 교실 안의 빨간 펜은 아이의 글을 망치려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가진 본연의 빛을 가리는 군더더기를 걷어내기 위한 스승의 섬세한 손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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