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선생님, 전 친일파 됐을 것 같아요."

이육사의 '광야' 앞에서 묻는 진정한 용기의 의미

by 안선진

[오늘의 풍경]

문학 수업을 하다 보면 일제 강점기 작가들의 작품을 자주 마주하게 됩니다. 특히 시 수업에서 빠지지 않는 두 거장이 바로 이육사와 윤동주입니다. 두 시인은 풍기는 분위기는 사뭇 다르지만, 지식인으로서 조국의 광복을 노래하다 감옥에서 생을 마감했다는 점에서 닮아 있습니다.


아이들과 독립운동가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다 보면, 요즘 아이들다운 지극히 현실적이고 솔직한 반응이 튀어나옵니다. “선생님, 굳이 목숨까지 걸 필요가 있었을까요? 저라면 절대 그렇게 못 하고 무서워서 친일파가 됐을 것 같아요.”


아이들의 솔직한 고백에 저는 '삶'의 두 가지 측면에 대해 이야기해 주곤 합니다. 우리에게는 눈에 보이는 육체적인 삶도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적인 삶도 있다는 사실을 말이죠. 육체는 건강하나 정신이 썩어있는 삶을 과연 진정으로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살아있어도 비겁하게 숨어 옳다고 생각하는 바를 행하지 못한다면, 그것이 죽음과 무엇이 다를지 아이들과 함께 고민해 봅니다.


[마음의 문구]

견의불위 무용야 (見義不爲 無勇也) : 의로운 것을 보고도 행하지 않음은 스스로 용기가 없는 것이다.— 《논어(論語)》 〈위정〉


[행간의 지혜]

이육사는 자신의 희생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며, 언젠가 올 광복의 기운을 불러일으키는 ‘가난한 노래의 씨앗’이 될 것이라 굳게 믿었습니다. 그는 육체적 안락함보다 정신적 가치를 지키는 용기를 택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유와 평화, 정의와 신뢰 같은 절대적 가치가 소중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진짜 의로운 삶은 그 가치들을 지켜야 할 때, 겁을 먹고 발을 빼지 않는 한 걸음의 용기에서 시작됩니다. 아이들이 문학을 통해 배우는 것이 단순히 시험 문제의 정답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옳음'을 선택할 수 있는 작은 용기이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문장]

광야(曠野) - 이육사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


모든 산맥들이

바다를 연모해 휘달릴 때도

차마 이곳을 범하던 못하였으리라.


끊임없는 광음을

부지런한 계절이 피어선 지고

큰 강물이 비로소 길을 열었다.


지금 눈 나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다시 천고의 뒤에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못다 한 이야기]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공자는 '의(義)'를 보고도 행하지 않는 것을 '무용(無勇)', 즉 용기가 없다고 단정 지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용기는 만용(蠻勇)과는 다릅니다. 무엇이 옳은지 판단할 수 있는 지혜가 전제된 상태에서, 그 가치를 실천에 옮기는 결단력을 의미합니다.


"친일파가 되었을 것 같다"는 아이들의 고백은 사실 인간 본연의 두려움을 솔직하게 드러낸 것입니다. 하지만 교육의 역할은 그 두려움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매화 향기'처럼 아득하게 피어오르는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는 데 있습니다. 이육사가 뿌린 가난한 노래의 씨앗이 오늘날 아이들의 마음속에서 작은 용기로 싹트기를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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