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선생님, 저 자습 좀 더 하고 갈게요."

몰입하는 아이가 보여준 공부의 정점

by 안선진

[오늘의 풍경]

예전 교습소를 운영할 때의 일입니다. 고등학교 1학년 중간고사를 마치고 기말고사를 대비하겠다며 한 친구가 찾아왔습니다. 첫 시험에서 국어 점수가 80점대 초반이라며, 국어만 망쳤다고 속상해하는 모습에 ‘공부 좀 하는 친구인가 보다’ 짐작만 했었지요.


본격적인 기말 대비 기간, 아침 9시부터 3시간 동안 쉴 새 없이 몰아친 정규 수업을 마친 아이가 불쑥 제게 물었습니다. 빈 강의실에서 자습을 좀 더 하고 가도 되겠냐고요. 그러라고 고개를 끄덕였는데, 그날 제가 본 광경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아이는 곧장 12시부터 오후 3시까지, 장장 3시간 동안 화장실 한 번 가지 않고 점심도 굶은 채 책상 앞에 붙박이처럼 앉아 있었습니다.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경주마처럼 내용을 정리하고, 문제를 풀고, 질문하고, 다시 문제 풀기를 반복했지요. 오후 3시가 훌쩍 넘어서야 개운한 표정으로 가방을 메고 돌아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저는 그 엄청난 집중력에 압도당하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마음의 문구]

부지로지장지 (不知老之將至) : 열의를 가지고 정진을 계속하면 늙음이 다가옴도 느끼지 못한다.
— 《논어(論語)》 〈술이〉


[행간의 지혜]

수업을 듣거나 자습을 할 때,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겠다는 의지로 무섭게 몰입하는 친구들이 있습니다. 주변의 소음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오로지 세상에 책과 나만 존재하는 것처럼 집중하는 아이들입니다.

그런 친구들은 평소 시크한 표정을 짓다가도, 제가 조금 과하다 싶게 내어준 문제들까지 완벽하게 해치워 옵니다. 결과는 당연히 시험에서의 만점, 혹은 한두 개 틀리는 정도의 압도적인 성취로 이어집니다.


몰입은 단순히 시간을 견디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하나의 점에 쏟아붓는 뜨거운 열의입니다. 그런 눈빛으로 책상을 마주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그 기특하고 대견한 마음을 어떻게든 응원해 주고 싶어 원장인 제 마음까지 덩달아 뜨거워지곤 합니다.


[못다 한 이야기] 공부의 즐거움에 빠져 밥 먹는 것도 잊다

공자가 자신의 학문적 열정을 설명할 때 쓴 표현 중에 ‘발분망식(發憤忘食)’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무언가 알려고 애를 쓰다 보면 밥 먹는 것조차 잊어버린다는 뜻입니다. 공부가 즐거워 근심을 잊고, 그러다 보니 내가 늙어가는 것조차 모른다는 것이 ‘부지로지장지’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6시간 동안 배고픔과 생리적 현상까지 잊고 몰입했던 그 제자의 마음속에도 아마 이 ‘발분망식’의 즐거움이 있었을 것입니다. 공부의 괴로움을 견디는 것이 아니라, 알아가는 즐거움에 빠져 세상과 단절되는 경험. 그 찰나의 몰입이 아이의 인생을 바꾸는 가장 강력한 근육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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