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타협이 부르는 균열, 한결같은 마음의 위대함
한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고1 때까지만 해도 입술이 부르틀 정도로 지독하게 공부하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고2가 되어 예체능으로 진로를 바꾸면서 아이의 태도가 180도 달라졌습니다. 실기 준비와 병행하느라 힘들겠거니 이해하려 했지만, 달라져도 너무 달라진 모습에 내심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그 아이가 어느 날 이런 고백을 하더군요.
“수학을 안 해도 된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수행평가를 포기했거든요. 그런데 ‘어? 그래도 괜찮네. 아무 일도 안 일어나네?’ 하는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 작은 안도감이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둘씩 포기가 늘어나자 단단했던 마음가짐은 이내 걷잡을 수 없이 해이해졌습니다.
반면, 한 남학생이 있었습니다. 이 친구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제시간에 나타나 꿋꿋하게 할 일을 마쳤습니다. 시험 기간이라거나 다른 학원 일정이 있다는 핑계로 결석하는 법이 없었지요. 주변 친구들이 학원을 옮기거나 분위기가 어수선해져도 전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묵묵히 수업을 듣고, 모의고사를 치며 고3 마지막 날까지 한결같은 보폭으로 걸어갔습니다.
난호유항의 (難乎有恒矣) : 변하지 않는 마음(恒心)을 지닌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 《논어(論語)》 〈술이〉
입시 결과의 차이를 떠나, 남학생과 같은 자세로 살아가는 것이 반짝 열정을 불태우다 금방 시들해지는 것보다 훨씬 무서운 힘을 가집니다. 변화를 받아들이는 유연함도 필요하지만, 정작 중요한 순간에 자신과 했던 약속을 지켜내는 '항심(恒心)'이야말로 한 사람의 미래를 결정짓는 가장 정직한 척도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공부를 하며 끊임없이 유혹에 빠집니다. "한 번쯤은 괜찮겠지", "이번엔 포기해도 세상이 무너지지 않아"라는 생각 말입니다. 하지만 그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평온함'이 사실은 성장을 멈추게 하는 가장 무서운 신호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흔들림 없는 마음으로 묵묵히 제 자리를 지키는 것, 그 평범한 반복이 비범한 결과를 만드는 유일한 길입니다.
[못다 한 이야기] 공자가 찾던 ‘항심’이 있는 사람
공자는 "성인을 만날 수 없다면 적어도 한결같은 마음(恒)을 가진 사람이라도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마음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수행임을 알고 있었던 것이지요.
여학생이 경험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은 사실 성벽의 첫 번째 벽돌이 빠진 것과 같습니다. 벽돌 하나가 빠진다고 성벽이 바로 무너지지는 않지만, 그 틈으로 비바람이 새어 들어오기 시작하면 결국 성 전체가 위태로워집니다. 반면 묵묵했던 남학생은 매일 벽돌 한 장을 정성껏 쌓아 올린 셈입니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화려한 기교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자신의 성벽을 쌓기 위해 자리에 앉는 그 '무거운 엉덩이'의 가치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