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중학생 과외를 할 때의 일입니다. 고등학교 선행 과정으로 시 이론을 아주 자세하게 가르친 적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아이구, 머리야! 꼭 이렇게 자세하게 배워야 해요?”를 연발하며 이런 복잡한 걸 다 알아야 하느냐고 투덜대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수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 아이가 눈을 반짝이며 예상치 못한 말을 던졌습니다. “선생님, 저 이제 시를 쓸 수 있을 것 같아요. 시가 막 쓰고 싶어져요! 우리 다음에는 시 작문 수업해요.”
오랫동안 아이들을 가르쳐 왔지만, 입시 위주의 교육 현장에서 시를 쓰고 싶다고 먼저 말하는 친구는 거의 전무했습니다. 대다수는 이론을 배우고 나면 문제를 잘 풀게 된 것에 만족하며 책을 덮기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성적 잘 받으라고 가르쳐준 수업을 듣고 시가 좋아졌다니! 그날 저는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저 역시 무언가를 배울 때 이 아이처럼 설레는 마음을 잃지 않겠노라고 말입니다.
수다 역해이위 (雖多 亦奚以爲) : 아무리 시를 많이 외운다 하더라도, [그 뜻을 실천하고 응용할 줄 모른다면] 또한 어디에 쓰겠는가.
— 《논어(論語)》 〈자로〉
공자는 시 삼백 편을 줄줄 외우더라도 정작 정치 현장에서 사명을 다하지 못하거나, 외교 무대에서 자기 생각을 펼치지 못한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일갈했습니다. 지식은 머릿속에 저장된 데이터의 양이 아니라, 그것이 내 삶에서 어떻게 작동하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에게 국어는 때로 넘어야 할 높은 벽처럼 느껴지지만, 그 벽 너머에는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과 표현의 즐거움이 숨겨져 있습니다. 문제를 맞히는 기술보다 중요한 것은 배운 지식이 아이의 마음을 건드려 새로운 창조의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것입니다. "시를 쓰고 싶다"는 아이의 고백은, 죽어있던 문자가 아이의 영혼 속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가장 아름다운 신호였습니다.
[못다 한 이야기] 지식의 유통기한을 늘리는 법
시험을 위해 외운 지식은 시험지가 걷히는 순간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즐거움'과 결합한 지식은 평생의 자산이 됩니다. 공자는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만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만 못하다(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고 했습니다. 시 이론의 복잡함을 뚫고 '쓰고 싶다'는 즐거움에 도달한 아이는 이미 국어라는 과목의 진정한 주인이 된 셈입니다.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처리해야 할 일'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자신만의 시를 써 내려갈 '재료'로 느끼길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