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샘, 제 이름 한자로 쓸 줄 알아요?”

아이들의 도발 앞에서 '잠시 멈춤'이 필요한 이유

by 안선진

[오늘의 풍경]

대학을 졸업하고 대형 학원에 갓 입성했을 때의 일입니다. 중학교 2학년 어느 반의 첫 수업, 설렘 가득한 마음으로 문을 열었지만 저를 맞이한 건 아이들의 차가운 텃세였습니다. 전임 선생님과 정이 깊었던 아이들은 수업 내내 그분을 찾으며 저를 시험했습니다.


“권샘 어디 가셨어요? 권샘은 화나면 옷 찢고 헐크로 변한다고 했는데.”

“헐크샘은 되게 웃긴데, 샘은요?”

꿋꿋하게 수업을 이어가려던 찰나, 한 여학생이 결정타를 날렸습니다.

“샘, 제 이름이 김지수인데 한자로 쓸 줄 알아요? 국어 샘이 그런 것도 제대로 못 쓰나?”

순간 화가 치솟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최대한 태연하게 받아쳤습니다.

“자기 이름은 자기가 한자로 쓸 수 있어야지! 내 이름 한자로 알려줄까? 자자, 수업하기 싫어서 그러지? 오늘은 일찍 마쳐줄 테니 여기 좀 보자.”


그날의 '작은 참음' 덕분일까요? 중2병의 절정에 있던 그 여학생들과 저는 그 후 누구보다 친해졌습니다. 전임 선생님에 대한 의리를 지킬 줄 아는 아이들이라면, 마음을 얻었을 때 누구보다 나의 든든한 편이 되어줄 것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문구]

소불인 즉난대모 (小不忍 則亂大謨) : 작은 일을 참지 못하면 큰 계획을 망친다.
— 《논어(論語)》 〈위령공〉


[행간의 지혜]

교실이라는 공간에서 아이들과 교감을 쌓아가는 시간은 지식을 전해주는 시간보다 훨씬 소중합니다. 아이들의 철없는 도발에 똑같이 화를 냈다면, 저는 그 반 아이들과 평생 '전쟁' 같은 수업을 해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작은 감정을 다스리지 못해 아이들과의 관계라는 '큰 계획'을 망치지 않는 것, 그것이 초보 강사였던 제가 배운 첫 번째 교육 철학이었습니다. 지식은 머리로 전달되지만, 배움은 마음이 열릴 때 비로소 시작됩니다.


[못다 한 이야기] 참는다는 것은 지는 것이 아니다

공자는 '인(忍)'을 강조했습니다. 여기서 참는다는 것은 단순히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목적을 위해 감정을 잠시 뒤로 미루는 지혜입니다.


"한자로 쓸 줄 아느냐"는 아이의 무례한 질문 뒤에 숨겨진 마음은 "새로운 선생님이 우리를 얼마나 이해해줄까?" 하는 불안 섞인 탐색이었을 것입니다. 그 마음을 읽어내고 웃음으로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있을 때, 비로소 선생님은 아이들의 마음이라는 '대모(大謨)'를 완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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