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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볕 Feb 14. 2022

(16) 교포

한국에서 처음 취업을 하고 가장 불만인 게 하나 있었다.

9시 출근이지만 8시 30분 전에 회사에 도착을 해야 하고, 6시 퇴근이지만 8시까지는 야근을 기본적으로 하고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2014년도 이야기이다.)

나는 약 12시간 가까이를 야근수당도 받지 못한 채 일만 하고 있어야 했다. 그 상황이 너무 답답했다. 업무를 하는 동안 나의 자유시간은 단 하나도 가지지 못했다. 12시간 가까이 일을 함에도 불구하고 내 월급은 140만 원이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2014년도 이야기이다)


호주에 가기 전, 여기 취업시장은 어떤지 seek.com과 한인 시장은 호주나라를 열심히 뒤져보았다. 

보통 Full time으로 일을 시키지만 Part time으로 일하는 경우 또한 많이 보았다.

한국에선 디자이너를 파트타임으로 구하는 경우가 잘 없었다. 그래서 파트타임 디자이너로 일을 해도 먹고 살 수 있다는게 가장 흥미로웠다. 


나는 한 직장에서 진득하게 있지 못하는 성격이다.

그래서 호주에서 파트타임으로 쓰리잡을 구해서 하루를 보내면 효율적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오전에는 Burwood에 있는 학원에서, 오후에는 Kelly 언니가 있는 이민법무사에서 업무를 하며 지내고자 했다.


Burwood에 있는 한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업무를 진행하였다.

첫 출근 날, 학원 데스크에서 일하는 한국인 언니가 나에게 인수인계를 해주었다.

그 언니는 이 학원에서 오래 일하면서 버틸 수 있는 tip을 알려주겠다고 나에게 말했다.

얼마나 어마어마한 팁이길래 나만 들릴 수 있도록, 누가 들으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 처럼 조심스럽게 말해줬다. 


"혹시 여기 와서 교포 애들 만난 적 있어요?"

"아뇨?"

"여기 우리 나잇대 교포애들은 자라면서 인종차별 엄청 받은 애들이에요.

여기 교포애들은 어릴 때 성장하면서 놀림도 많이 당하고 따돌림도 많이 당했어요. 아시아인이 호주에 많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소속감도 많이 못 가져보고요. 만나면 알겠지만 성격이 우리가 생각하는 서양애들이랑은 좀 달라요."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음.. 이건 겪어봐야 아는 건데 몇 애들은 좀 어둡기도해요"

"네?"

"아무튼.. 그래요. 근데 정말 착한 애들도 많아요."


맥락이 파악되지 않는 말을 해주고 그리고 다시 업무 시작 


10시쯤 되니 태닝 한 피부의 마른 체형의 한 여성이 사무실로 들어왔다.

이 학원 매니저인데 학원 원장 딸이라고 한다. 그녀의 이름을 '엘리사(가명)'이라고 하겠다.

"Good morning"을 외치던 엘리사는 나에게 "처음 오신 분?"이라며 서툰 한국어로 물어봤다.

나는 맞다며 반갑다고 인사했다. 그녀 또한 나에게 반갑다며 말했다. 


오전에 일하는 Burwood학원 내 자리 앞엔 프린트기가 있어서 사람들이 자주 왔다 갔다 하는 부산스러운 자리였다. 나한테 주어진 컴퓨터는 없었다. 그래서 직접 들고 온 노트북으로 학원 광고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본인이 출력한 프린트 물을 가지러 온 엘리사가 내 자리 쪽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영어로 혼잣말을 시작했다.


사무실에 나랑 단 둘 뿐이었다. 나한테 하는 말은 아니고 그냥 혼자서 계속 중얼중얼.. 


신경을 별로 안 썼는데 혼잣말로 하는 말을 집중해보니  "어쩜 저렇게 어린애처럼 생겼을까. 정말 초등학생처럼 생겼다" 라며 내 외모를 평가하는 게 아닌가..?

사실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라 확실하진 않았지만, 단어들을 조합해보니.. 

어라? 저거 지금 내 욕 하는 건가?


호주 오기 전에 인종차별을 당하거나 부당한 일이 생기면 당당하게 따져야겠다 라고 다짐했던 내 마음이 무색해지게 나는 그 자리에서 벙-찌게 되었다. 이게 무슨 상황일까? 나는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에게 이렇게 대놓고 욕을 먹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건 내가 생각한 수만가지 불행 시나리오에 해당된 사항이 아니었다. 그제야 나에게 앞서 인수인계해주던 언니의 말을 이해했다. 


오전에 버우드에서 일을 하고 오후에 캘리 언니를 만나 방금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언니는  "걔 어릴 때 차별 되게 많이 받고 자랐나 보다." 그리고 이어 "정말 밝은 애들도 있는데, 어릴 때 차별받고 자란 애들은 나중에 한국인들한테 엄청 텃세 부리고 못되게 굴어. 근데 어쩌겠어 본인이 보고 자란 게 그건데. 그냥 다음에 그런 애들 만나면 '아 얘 어릴 때 차별 많이 당하고 자랐구나' 하고 넘기면 돼.. 굳이 마음 쓸 필요 없어"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한국의 문화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 번은 누가 봐도 다단계로 보이던 사람들이 BTS의 나라에서 왔냐며 공감대를 형성하고자 했고, 벤치에 앉아 있으면 댄스 아카데미에서 나온 아르바이트생이 케이팝 댄스를 배우러 와라며 나에게 안내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일부 외국인들을 만나 내가 한국인이라고 하면 한국 가수를 안다며 아는 척을 하는 걸 보기도 했다. 그들은 내가 놀라는 리액션을 해주길 바랬다. 그래서 그들의 기대에 부흥하고자 놀란 척 리액션을 해주느라 조금 에너지가 빠지기도 했다. 


한국에 대해서 관심 없는 사람들은 아직도 없겠지만, 시드니 시티(시내)로 나가면 블랙핑크 아디다스 광고가 보이고, 가게마다 케이팝 노래가 심심치 않게 나왔다. 틱톡이 유행하면서 한국어로 된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학생들도 공원에서 간혹 보였다. 


그때 클로이(가명)라는 한 한인 2세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나랑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났는데 게이치 않고 서로 잘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한국으로 이민을 가는 게 최종 목표라고 했다. 


원래 꿈은 방송 쪽으로 나가는 거였는데, 호주에는 백인들이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비켜줄 생각을 당최 하지 않는다는 거다. 모든 일도 그렇게 되어있다고, 백인들의 벽을 넘어서기가 힘들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리고 몇년 전, 본인이 한국에 교환학생을 갔을 때 한국에서 느꼈던 수많은 오락 문화들이 좋았다며 부모님에게도 한국으로 이민을 가겠다고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는 "우리가 힘들게 호주에 정착했는데, 왜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라며 만류하셨다고 한다. 내가 클로이를 알고 있는 동안, 그녀는 계속 부모와 이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하 팀장 언니를 주말에 만났다. 언니한테 클로이 상황을 설명하니, 하 팀장 언니는 "우리 회사에도 20년 전에 호주에 이민 왔다가, 최근 다시 한국으로 역이민 한 사람 있어"라고 말했다.

이어 "예전엔 한국이 살기 힘들고 안정적이지 않은 나라였는데 지금은 아니잖아. 한국이 이만큼 성장할 줄을 누가 알았겠어. 그러니 역 이민하는 사람들도 심심치 않게 생기고, 교포애들도 한국에서 사는 게 더 낫다 생각하지. 영어도 잘해 한국어도 잘해. 걔네들은 한국에서 더 살기 편할걸?"



그 맘 때쯤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전 세계를 흔들었다. 기생충 배우들이 오스카에서 상을때 캐나다 교포인 산드라 오는 본인이 상을 탄 것 마냥 박수를 치며 기뻐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그 이후  OTT 플랫폼인 왓챠 플레이에서는 산드라 오를 인터뷰했다. 

그녀는 거기서 이와 같이 말했다. 

무대 위의 감독님을 보는게 저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어요. 한국에서 자란 한국인, 한 번도 소수인종으로서 인종차별적인 사회에서 자라지 않은 사람의 자유로움 그 자체를 봤죠.”


그 영상을 보는데 순간 엘리사와 클로이가 생각이 났다. 그리고 감정이 미묘해졌다. 말로 설명이 다 안 되는 그 복잡한 기분. 나는 그녀들을 안타깝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녀들이 자라온 환경을 잠시 생각하느라 산드라 오 인터뷰가 계속 나오는 유튜브를 틀어놓은채 책상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ZBSiIAfeU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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