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은 사실 자극만을 원하지 않는다
최근 가장 화두가 되는 단어 중 하나는 “저속 노화”이다. 모두들 어떻게 하면 혈당 스파이크를 방지하고 천천히 늙어갈 수 있을까, 인터넷과 책에서 모은 조각 지식들을 공유하고 실천하느라 바쁜 것 같다. 그리고 요 바로 전에 이만큼 화제가 되었던 단어는 단연코 “도파민”이 아닐까 한다. “도파민 터진다”라는 말이 없을 때는 같은 표현을 어떻게 하고 살았는지 이제는 바로 떠올리기 어려울 만큼 이미 일상의 언어에까지 자리 잡은 용어가 되었다.
다들 도파민, 도파민, 하기에 애나 렘키의 “도파민 네이션”을 읽었던 것이 몇 달 전이었고, 이제 다들 저속 노화, 저속 노화, 하기에 며칠 전부터 정희원의 “느리게 나이 드는 습관”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다 두 책의 메시지에서 의외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사람들은 더 재미있고, 더 맛있고, 더 큰 자극만이 쾌락과 휴식을 줄 수 있을 거라고 믿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두 저자가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이 의외로 단조로운 것들로부터도 충분히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 되어있다는 것이다.
나 역시 스스로에게 보상을 하고 싶은 날에는 으레 더 달고 기름지고 매운 음식을 찾아왔고, 쉬는 날에 책보다는 내 눈과 귀를 사로잡을 수 있는 유튜브 켜는 것이 진정한 휴식이고 즐거움이라 여겨왔다. 하지만 두 책이 세상에는 밋밋하지만 더 확실한 즐거움이 있다고 확신시켜주는 것 같아 신선하게 마음에 남았다.
애나 렘키의 기본 주장은 이러하다. 고통을 즉각적으로 피하고 싶다는 본능적인 욕망 때문에 점점 더 큰 쾌락 자극을 추구하게 되면, 오히려 고통을 이기는 내재 능력이 점점 줄어들게 되고, 반대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역치는 높아져서, 결국 고통을 견디는 내적 능력은 점차 약화된다는 것이다. 니체의 명언이자 켈리 클락슨의 유명한 노래이기도 한 “what doesn't kill you makes you stronger,” 아무리 힘든 일이 있다 해도 우리가 그것 때문에 죽지 않는다면 그건 결국 우리를 더 강하게 만들 뿐이라는 말은, 우리 신경의 보상 체계에도 적용 된다. 이가 시릴 정도로 단 음식을 먹거나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게 하는 영화를 보는 것보다, 천천히 하는 산책, 독서, 운동처럼 적당한 지루함과 적당한 고통을 수반하는 행위들이 우리 신경 체계의 항상성을 더 강하게 유지 시켜 주고, 궁극적으로는 더 확실하고 지속적인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주장이다.
정희원의 저속 노화 논의에서도 “내재역량”이라는 말이 핵심이다. 인간은 누구나 건강한 몸과 마음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역량을 가지고 태어났고, 이 역량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 노화이기 때문에, 운동, 영양, 스트레스, 정신 건강 등 내재 역량의 요소들을 잘 유지하는 것이 저속 노화라는 설명이다. 특히 내재역량을 잘 사용하고 유지시키는 구체적 비법을 전하며 던진 정희원의 메세지는 애나 렘키의 그것와 꽤나 오버랩된다. 빠르게 늙지 않기 위해서, 즉 내재역량을 최대한 길게 유지시키기 위해서는, “삶의 모든 면을 억지로 통제하려는 노력에 치중하기 보다는 내 삶이 비뚤어짐에서 벗어나 점차 경박단소한 자연스러움을 찾아갈 수 있도록 허용해주기만 하면 된다” 같은 구절이 그러하다. 사람들이 흔히 믿듯이 자극적인 식단과 행위들을 통해 “스트레스를 화끈하게 풀고 지금을 즐기며 사는 것”이 더 나은 삶은 아니라는 주장에 이르면 애나 렘키와 정희원의 논지는 명확히 교차한다.
자극적인 음식들과 컨텐츠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나의 몸과 마음이 하루하루에 지쳐 손쉬운 보상을 얻고 싶어 한다고 느낄 때, 나의 몸과 마음은 사실 그런 것들을 원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전문가들의 말은 안심이 된다. 더 안도감을 주는 말은, 우리 몸의 항상성의 회복력은 생각보다 더 강해서 일단 더 큰 자극과 보상들에 익숙해진 상태에서도 시간을 들여 노력하면 얼마든지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올 수 있다는 말이다.
평소라면 아침부터 맥주에 떡볶이를 먹으며 유튜브를 보며 보냈을 주말, 이번에는 책을 펴서 오십 페이지쯤 읽은 뒤 당근 스틱을 만들어 먹으며 쓰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