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67: Feb. 25th, 2021 (6:45PM)
차곡차곡 쌓아놓기만 했던 문단들을 꿰기 시작한 날. 더 나아가기 전에, 이미 6000여자가 되는 조각 글들의 흐름을 만들고 전체를 조망해야 할 시기라는 판단이 섰다. 논리적 흐름에 무리는 없는지 살피고, 더 견고한 논의를 만들기 위해 더할 것은 더하고, 뺄 것은 빼면서 글 전체를 다듬어 나가기 시작했다.
글쓰기 과정 중 이 시점쯤이 되면 항상 빈 문서를 보는 것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한 막막함과 두려움이 있다. 내가 몇주 전에 무슨 이야기들을 써 놨는지 기억이 이미 가물가물 한데, 다시 들춰보면 쓰지도 못할 엉망인 글을 써 놨구나... 라는 좌절감을 맛볼 것 같다. 그래서 몇날 며칠 고민하며 쓴 문장들을 1초만에 내 손으로 들어낼 일만 남은 것 같다. 단단한 이음매 없이 부실 공사로 얼기설기 지어 놓은 집처럼 툭 건드리면 와르르 무너질 게 뻔할 것 같다는 망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정교하고 날카로운 사고의 흐름을 만들고 싶은데, 이제 그 대망의 순간이 왔는데, 내 글을 마주하는 대신 이 중요한 순간을 유예해서 그냥 계속 나는 잘 하고 있다는 최면에 걸리고만 싶다. 실제로 이 과정을 한 없이 미루면서 싱글 스페이스로 50페이지 정도가 되어버린, 괴물 같이 덩치만 불어난 문서를 두고 어찌할 바를 몰라서 문자 그대로 눈물을 흘렸던... 과거도 있었다.
그러니, 정말로 내 글이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가 되기 전에, 마주하고, 예쁘게 다듬고, 또 앞으로 나아가기로 한다. 머리를 기르려고 해도 중간 중간 다듬고 잘라가며 길러야지 무작정 기르다 보면 그냥 바야바가 되는거다. 기꺼이 잠시 멈추어 내 글을 마주할 용기를 낸 지금의 선택으로 좀 더 기민한 글쓰기를 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