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브런치 #1
지금 난 인생에서 가장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아니, 그랬으면 좋겠다.
더 이상 이런 시간들이 나의 나약함의 내면을 드러내지 않았으면 한다.
내가 있는 이 터널은 암흑 자체이다. 낮인지, 밤인지, 혹은 공기의 온도나 습도와 같은 계절도 가늠할 수가 없다. 나의 눈은 안대를 한 것처럼 검은흙먼지와 짙은 안개로 가려져 있다. 눈을 뜨면 뿌연 연기들이 내 앞을 가로막는다. 입김으로 바람을 '후' 불어내면, 찰나의 여유가 생기지만, 그뿐이다. 찰나는 찰나이다. 잠깐조차도 허락되지 않는 곳이다. 살아 숨 쉬는 그 어떤 것도 가늠이 되지 않는다.
왜 이 터널에 들어오게 됐는지, 왜 하필 나여야 했는지, 원망이 가득했던 시간도 지나가 버렸다. 사실은 여전한데 애써 외면하는지도 모른다. 그만큼 아둔해져 있는지도. 확실한 마음 하나를 끄집어 내보자면, 적어도 지금은 터널에서 나만의 방식을 찾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이 어쩌면 생존 본능일지도, 또 어쩌면 안주일지도 지금의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정답이 있나? 경험으로 미루어봤을 때 모든 정답은 시간이 지나야 분명해진다. 학교에서 낸 시험 문제처럼 정답을 누군가가 만들어 놓을 수도 없고, 채점을 해줄 사람도 없다. 그러니까 지금의 나는, 그리고 내 삶의 모든 과정들은 점수를 매기기 어렵다. 계속 뭔가를 써 내려가고 있지만, 이것이 훗날 답이 될지, 아니면 오답일지, 누구도 말해 줄 수 없다. 그것이 내가 인간으로서 감내해야 할 가장 무거운 짐일 것이다.
이 터널의 끝이 어느 곳을 향하고 있는지, 혹은 끝은 있을지, 그것 조차 불분명하다.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터벅터벅 걸어가자, 멈추지는 말자, 적어도 내가 왔던 길을 되돌아가는 어리석은 짓만은 하지 않게 하자, 그렇게 스스로를 다듬으며 나아가는 것만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다.
예전에 바닷가에 가서 모래를 한 움큼 움켜쥐어 본 적이 있다. 한 손으로 쓱 끌어올렸더니 모래들이 사라락 빠져나가 손 위에 남는 양이 얼마 없었다. 슬쩍 돌아보니 왠지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더 많은 모래들을 들어 올리는 듯했다. 욕심이 났다. 옆에 있는 사람보다 더 많은 모래를 쥐어보려 두 손을 다 동원해서 잔뜩 퍼올려 봤지만, 모래는 손가락 사이사이 작은 틈 사이로 조금씩 새어나가 한 손으로 들어 올렸을 때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손이 하나가 더 많아졌지만, 완벽하게 틈을 매우지 못했고, 결국 끝은 비슷했다.
갑자기 그 모래알들이 떠올랐다.
내게 주어지는 최소한은 정해져 있다. 총량의 법칙은 어디에나 적용되기 때문에. 지금 터널에 있는 이 시간도 내 삶의 전체로 봤을 때, 한 번쯤 누구나 겪어야 하는 그런 어둠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봤다. 어느 날은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기구하고, 또 어느 날은 내가 살아온 시간들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 한 없이 평범하고, 또 다른 날에는 운이 좋은 편이라 생각되기도 했다. 그럼 나에게 '어둠'이 있었나, 하면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누군가에게는 불행하다고 생각되는 나날 속에도 나에겐 늘 밝은 빛이 존재했다. 그렇다면 나는 어둠을 늘 이기며 살아왔던 것이니, 완전한 어둠은 처음 겪는 것이 맞을 수도 있겠다.
그렇게 생각을 틀자, 이 터널도 꽤나 중요해졌다. 매캐한 냄새와 거친 입자들이 코로 담뿍 들어와 온몸을 자극하는 아주 건강하지 않음이 물씬 느껴지지만 그 자극마저도 '견딜 수 있는' 존재로 받아들여졌다. 내 마음 가짐에 따라 흉측한 이 터널도, 달리, 그러니까 좀 더 나은 공간이 될 수 있는 건가.
모르겠다. 이 터널이 나에게 앞으로 어떤 변수가 될지. 언젠가는 빠져나가야 함은 분명하지만, 터널 끝에서 작게 새어 나오는 빛에 반가워 달려 나갈 테지만, 적어도 이 터널의 어둠이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는 확실하게 알고 갈 필요는 있다. 사실 이 터널의 끝에 놓인 빛이 좋은지, 나쁠지도 모르는 거잖아. 그럼에도 늘 끝은 있으니까, 길이 선명하지 않다고 해서 멈출 필요는 없다.
딱 지금의 어둠이, 나에게 주어진 시련의 총량이라 한다면, 기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