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R] 트렌드코리아 2026

HORSE POWER, 켄타우로스 처럼....

by 신선

『트렌드 코리아 2025』를 지난해 10월에 읽고 리뷰를 썼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다음 책인 『트렌드 코리아 2026』을 바로 사서 읽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리뷰를 쓰기까지 두 달이 걸렸다.

몇 번이나 끄적이다가 덮고, 다시 써보다가 결국 서랍에 넣어두기를 반복했다. 한 번 마음먹고 발행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망설였을까.

아마도 이 책의 리뷰를 쓰는 일이, 다가오는 2026년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고민과 겹쳐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책을 정리하는 일과, 나 자신의 방향을 정리하는 일을 동시에 미뤄두고 있었던 셈이다.


2025년을 돌아보면 분명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아쉬움도 적지 않게 남는다. 그 아쉬움을 그냥 지나치고 싶지 않아서, 내년에는 무엇을 바꿔야 할지 계속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올해가 이제 며칠 남지 않았는데도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 못한 채, 마음 한편에 찝찝함이 남아 있다.

그래도 남은 며칠 동안이라도, 완벽한 해답은 아니더라도 방향 정도는 정리해 보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다시 『트렌드 코리아 2026』을 떠올렸다.


HORSE POWER, 그리고 켄타우로스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키워드는 단연 HORSE POWER였다.

첫 장에서 저자들은 ‘Human in the Loop’를 설명하며 반인반마의 신, 켄타우로스(Centaurus)의 이야기를 꺼낸다. 인간의 상반신과 말의 하반신을 가진 존재. 사고하고 판단하는 것은 인간이지만, 이동하고 속도를 내는 것은 말의 힘에 의존하는 존재다.

이 비유는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다.

AI는 인간을 대체하는 두뇌가 아니다. 인간이 더 멀리, 더 빠르게 갈 수 있도록 돕는 하반신에 가깝다. AI 덕분에 인간이 더 똑똑해진 것이 아니라, 더 많이 달릴 수 있게 되었다는 표현이 오히려 맞을지도 모른다.

이 켄타우로스의 비유를 읽으며, 나는 자연스럽게 내 업무를 떠올렸다.


특허 업무에서 AI가 맡아준 하반신의 역할

특허 업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전히 사람의 판단이다.

이 발명이 전략적인지, 이 권리가 앞으로도 의미를 가질지, 어디까지가 지켜야 할 선인지. 이런 질문에 대한 최종 답은 여전히 사람이 내려야 한다.

AI는 그 답을 대신 내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AI가 등장한 이후, 특허 담당자는 예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그 질문이 있는 지점까지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발명신고서를 요약하고, 선행문헌을 훑고, 심사관의 논리를 구조화하는 일들. 과거에는 말없이 사람이 혼자 감당하던 ‘하반신의 역할’을 이제는 AI가 나눠서 맡고 있다.

이미 많은 기업에서 특허와 AI는 자연스럽게 결합되고 있다.

발명신고서를 요약해 주는 서비스, 의미 기반으로 선행문헌을 찾아주는 검색 도구, 심사관이 지적한 선행문헌과 우리 특허의 차이점을 정리해 주는 기능까지. 공식적인 시스템이 아니더라도, 많은 특허 담당자들은 이미 개인적으로 AI에게 묻고 있다.

“이 발명의 핵심이 뭐야?” “심사관이 진짜 문제 삼는 포인트는 어디일까?”

이 모습은 『트렌드 코리아』가 말하는 ‘AI의 일상화’와 정확히 겹친다. AI는 더 이상 특별한 프로젝트가 아니라, 필요할 때 검색창처럼 꺼내 쓰는 도구가 되었다.


AX 조직이라는 키워드가 유독 와 닿았던 이유

책에서 언급된 또 하나의 키워드, AX 조직 역시 매우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AX 조직은 단순히 AI를 잘 쓰는 조직을 말하지 않는다. AI를 전제로 조직의 구조와 일하는 방식을 다시 설계한 조직이다. 그 핵심 DNA는 두 가지, 유연성과 자율성이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 최적화된 조직은 기능 중심의 부서,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지시 체계, 계층으로 구분된 역할과 권한을 전제로 했다. 하지만 AI가 일상적인 업무 도구가 된 지금, 이 구조는 점점 조직의 발목을 잡는다.

AX 조직에서는 부서 간 장벽이 낮아지고, 상하 관계로만 설명되던 위계의 의미도 달라진다. 요즘 자주 등장하는 ‘울트라 플랫’, ‘제로 디스턴스’라는 말은 직급이 사라진다는 뜻이 아니라, 의사결정까지의 거리와 시간이 짧아진다는 의미에 가깝다.


재즈처럼 일하는 조직

AX 조직을 설명할 때 내가 가장 공감하는 비유는 ‘재즈’다.

재즈 연주는 악보대로만 연주하지 않는다. 그때그때의 흐름과 분위기에 맞춰 즉흥적으로 연주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무대에 올라갈 수는 없다. 각자 자기 악기에 대한 실력과 책임이 전제되어 있다.

필요한 순간에, 필요한 전문가들이 모여 문제를 푼다. 이른바 ‘잼 세션’에 익숙한 조직이다.

여기서 중요한 역량은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가 아니다. 얼마나 빨리 배우고, 필요 없어지면 과감히 버릴 수 있느냐다. 그래서 AX 조직에서는 ‘러닝’만큼이나 ‘언런(unlearn)’, 즉 이미 배운 것을 폐기하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AX 조직에서 개인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조직이 아무리 유연해져도, 그 안의 사람이 준비되지 않으면 AX는 작동하지 않는다.

AX 조직에서 개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분명하다. AI를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자기 업무에 대한 명확한 전문성.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갖춘 사람이 흔히 말하는 ‘파이(π)형 인재’다.

그래서 문득 이런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과연 파이형 인재인가?

요즘 젊은 세대가 승진을 꺼리는 현상, 이른바 ‘의도적 언보싱’도 이 맥락에서 다시 보게 된다. 그들이 피하는 것은 책임이 아니라, 낡은 구조 안에서의 역할일지도 모른다.

정보가 위에서 아래로만 흐르던 시대에는 위치 자체가 힘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AI 시대에는 정보가 훨씬 평등하게 공유된다. 이제 힘의 원천은 ‘지시’가 아니라 ‘아이디어와 실행력’이다.


이런 환경에서 리더는 관리자가 아니라 설계자에 가깝다. 사람을 통제하는 사람이 아니라, AI와 사람이 함께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사람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부활 사례가 자주 언급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티아 나델라는 ‘모든 것을 아는 조직’에서 ‘모든 것을 배우는 조직’으로 문화를 바꿨다. 실패하지 않는 조직이 아니라, 실패로부터 배우는 조직을 만든 것이다. 그래서 AX 조직에서는 ‘레슨 앤 런(Lesson & Learn)’이라는 말이 자연스럽다.

돌아보면 2025년의 나는 바로 그런 한 해를 보냈던 것 같다. 시도했고, 실패했고, 그 과정에서 배웠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다시 확인했다.


2026년을 향해

현대자동차가 스스로를 ‘자동차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라 ‘고객의 모빌리티 경험을 설계하는 회사’로 정의했듯이, 일의 정의가 바뀌면 조직의 모습도 달라진다.

AX 조직이라는 설계도는 그 안을 채우는 구성원들이 자율성에 따르는 책임을 감당할 준비가 되었을 때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앨빈 토플러의 말처럼, 21세기의 문맹은 글을 읽고 쓰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운 것을 버리고 다시 배울 수 없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AI가 들어온 일터에서, 우리가 진짜로 바꿔야 할 것은 기술이 아니라 조직과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일 것이다.


글과 마음을 정리하고 나니, 미뤄 놓은 숙제를 끝마친것 같은 기분이다.

2026년도 화이팅이다!!!


화면 캡처 2025-12-23 170146.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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