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몰랐고, 이제는 알 것 같은 말
어렸을 때의 12월 31일 밤은 조금 특별했다.
부모님을 따라 늦은 시간 교회에 가야 했는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는 명확히는 알지 못했다.
그저 평소보다 늦게까지 깨어 있을 수 있는 날,
예배가 끝나면 친구들과 웃고 떠들 수 있는 날이었다.
‘송구영신’이라는 말은 늘 그 자리에 있었지만, 나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네 글자였다.
보낸다는 것과 맞이한다는 것이 얼마나 다른 마음을 필요로 하는 일인지 알기에는 많이 어렸다.
시간은 흘러 어른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안다.
送(보낼 송): 보내다
舊(옛 구): 옛 것, 지난 해
迎(맞이할 영): 맞이하다
新(새 신): 새 것, 새해
묵은 해를 보내고(送舊), 새해를 맞이한다(迎新) 는 의미이다.
같은 말을 다시 떠올리게 된다는 것은 어느새 한 해를 ‘그냥’ 넘길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지 않을까?
기대했던 것과 달랐던 순간들,
잘해냈다고 말하기엔 부족했던 날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지나온 시간들이
연말이 되자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제야 송구영신이라는 말이 조금 다르게 다가오는 것 같다.
보낸다는 건 잊어버리는 일이 아니라, 수고했다며 등을 토닥여 주는 일에 가깝다.
그리고 맞이한다는 건 새로워지겠다는 다짐보다는 다시 잘 살아보겠다는 조용한 허락 같은 느낌이다.
돌아보면, 감사할 일이 참 많았다.
완벽하지 않았지만 해야 할 일을 잘 해냈고,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하루였을지 몰라도 나에게는 분명 의미가 있었던 날들이었다.
한 해 동안 할 수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이제는 결과보다 과정에 먼저 고마워진다.
그리고 잘해낸 일보다 끝까지 해낸 일이 더 크게 느껴진다.
그렇게 지나온 시간들이 나를 조금씩 단단하게 만들어주었다는 사실도.
그래서 올해의 송구영신은
거창한 다짐보다 감사에 더 가까운 인사다.
무사히 보낼 수 있었음에,
다시 맞이할 수 있음에.
어렸을 때는 몰랐던 말이 이제는 그 말만 들어도 느낄 수 있는 나의 언어가 된 것 같다.
그러면서도 2026년 하고 싶은 다짐을 조용히 노트에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