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협상, '을'의 입장, '갑'의 입장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는 '을', 돈을 주는 '갑'!?

by 신선

나는 누군가를 설득하기보다는 설득당하는 데 익숙한 사람이다. 자유분방함을 추구하고 즉흥성 있는 MBTI의 인식형P(Perceiving)이면서도, 사회생활에서는 철저한 판단형 J(Judging)의 면모를 보여야 하는 이중적인 모습의 나다.


특허 협상이라는 중요한 업무를 맡게 되었을 때, 사실 막막함부터 밀려왔다. 상대방에게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는 '을'의 입장에서 어떻게 협상을 주도할 수 있을까? 잠 못 이루는 밤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단순히 '을'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는 것은, 결국 내가 돈을 주는 입장이라는 뜻이니까. 이 상황을 '갑'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현실을 직시하는 동시에, 새로운 해법을 찾기 위한 고민이 시작되었다.

이 글은 그런 고민 속에서 내가 마주한 질문과,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에 대한 기록이다.


1. "먼저 연락하면 지는 게임 아냐?"

가장 먼저 떠오른 고민은 '누가 먼저 협상을 제안할 것인가'였다. 계약 만료일은 다가오는데, 먼저 연락하는 건 우리의 절박함을 노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전문가의 조언을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무작정 기다리는 건 리스크만 키울 뿐이었다. 계약 만료일까지 아무런 연락이 없다면, 우리 사업은 불확실성이라는 큰 위협에 놓이게 된다.

결국 먼저 연락하되, '협상의 주도권을 잡는' 방식으로 접근하기로 했다. "계약 연장해주세요"가 아니라, "그동안의 파트너십에 감사드리며, 앞으로의 장기적인 관계에 대해 논의하고 싶습니다"라고 제안하며 대화를 시작하는게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의도를 숨기면서도, 우리가 먼저 계획을 세우는 신중한 파트너라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2. "1년 계약은 너무 불안하지 않을까?"

다음으로 고민한 것은 계약 기간이었다. 보통 특허 계약은 5년이나 특허 존속기간이 남은 때까지 하는 게 일반적이라고 들었는데, 1년 계약은 터무니없게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상대방이 우리의 의도를 의심하고, "혹시 회피설계라도 하려는 것 아니냐"고 직접적으로 물어오면 어떡하지? 하는 걱정이 앞섰다.

아직도 고민의 연속이다. 하지만 1년 연장이 오히려 우리에게 강력한 무기가 될 수도 있다. 1년이라는 시간은 단순히 계약을 미루는 것이 아니라, 다음 협상에서 우리가 주도권을 잡기 위한 시간을 버는 행위다. 이 시간 동안 대체 기술을 확보하거나 회피설계를 완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상대방이 회피설계 한다는 우리의 전략을 알고, 라이선스 비용 인상을 요구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가 감수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전략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3. "회피설계 후 돈을 안 내도 괜찮을까?"

1년 또는 5년을 계약하더라도, 계약을 진행하던 중 6개월 만에 회피설계가 성공하여 더 이상 상대방의 특허 기술을 사용하지 않게 되었다고 가정해 보았다. 남은 6개월 치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될텐데...? 이 부분은 가장 민감하면서도 중요한 문제였다.

이 문제는 계약서의 조항에 달려 있었다.

실시 기반 계약: '특허를 실시하여 생산한 제품 수량에 비례하여 비용을 지불한다'는 조항이 있다면, 회피설계 후 지불을 중단해도 계약 위반이 아니다.

고정 금액 계약: '계약 기간 동안 고정된 금액을 지불한다'는 조항이 있다면, 특허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남은 기간의 비용을 모두 지불해야 한다.

회피설계는 기술 발전을 위한 정당한 행위이지만, 계약 위반은 법적인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회피설계를 염두에 두고 있다면, 반드시 '실시 기반'으로 비용을 산정하는 조건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겠다는 계획이다.


아직 협상을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러한 생각에는 변화가 있을 수 있다. 단순히 내가 하는 계약이 아닌 회사의 앞으로의 방향을 세우는 것이기에 당연히 회사의 의사결정권자의 의견을 받아 진행하게 될 것이다. 회사의 리스크를 최소화 하는 방향으로 라이선스 비용을 절감하는 방향으로. 그리고 '을'의 입장이라도 주도권을 잡은 협상을 할수 있기를. 모든 선택에는 그에 따른 리스크와 기회가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고민의 고민이 되는 것 같다. 회사의 앞으로의 방향을 세우는 중요한 일인 만큼, 나의 고민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를 바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기술과 권리 사이, 기록이라는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