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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희건이나비 Nov 03. 2023

김밥 금지령

나는 김밥을 무지 좋아한다. 특별히 어떤 맛이 더 끌린다는 것은 아니다. 김밥이 엄청 다양해져서  더 신난다.  음식 종류도 많고, 새로운 요리가 많이 나와도 김밥이 젤 좋다. 아마도 김밥 얽힌 재미난 이야기가 있어서일까? 김밥은 평생 먹으라 해도  질리지 않을 것 같다. 그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어서 그 좋아하는 김밥을 한동안 못 먹었을까?


 이야기를 시작하려면 30년 이상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공부하고 있던 남편과 결혼해서, 미국서 아이를 낳게 되었다. 첫 아이를 혼자 돌볼 수가 없어서 엄마가 오시기로 했다. 아기를 낳으면  다닐 수도 없으니 좀 일찍 들어오시라 말씀드렸다. 엄마가 보름 일찍 비행기를 타셨다. 사실 국제선이 바로 내리는 곳이면  참 좋겠지만 국내선을 갈아타고 오셔야 했다.  할 수 없이 남편이 큰 도시로 마중을 나가고  혼자 있어야 했다. 그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석 달 전에 와이프가 아기를 낳은 자기 선배집에 가 있는 것이 좋을 듯한데.. 하면서 갔다.


비행기 시간과 시차등이 있어 하루 만에 돌아오지 못하는 일정이었다.  혼자 있는 것보단 선배 댁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배는 마침 신정이 지난 때라 한국에서 여러 물건들이 왔는데, 표고버섯이 참 좋더라 하신다. 선배는 요리를 잘하는 것도 아니서, 당신이 표고를 넣은 김밥을 말았다며, 저녁으로 같이 먹자고 하셨다. 정말 버섯 넣은 김밥은  처음 먹었는데, 오랜만에 맡는 특유의 버섯 향이 코를 즐겁게 한다. 신나서 김밥을 주는 대로 다 먹고는 잠자리에 들었다.


 아기랑 엄마랑  한방에서 자게 되었다. 그 언니는 미리 준비할 것 등을 알려주셨고  함께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지난번 병원 갔을 때 의사선생이 혹시 양수가 터지면 바로 병원으로 와야 된다고 하셔서, 궁금해서 물어보았다. “양수 터지는 걸 어떻게 알아요?” 했더니 그건 터져봐야 안다고 말씀하시는데, 내 안에서 뭔가 툭 하더니 뜨거운 물이 쏟아지는 것이다. 아 이게  양수인가? 예정일이 아직 보름이나 남았는데, 남편도 없는데, 엄마도 안 오시고, 어떻게 하지? 숱한 생각들이 순식간에 일어났다.


그 언니도 놀라서 “아이고 어쩌나!” 하며 선배님을 깨우고, 병원에 연락을 취해 주고, 옷을 챙겨주는 등 빠르게 움직여 주셨다. 그런데 설상가상이라고, 그지역은 본래 눈이 잘 안 오는 곳인데, 밤새 눈이 내려 차 위에 눈이 쌓였다. 다행히 늦은 밤이라 차는 많지 않았지만 길이 미끄러워서 선배님도 고생이 많으셨다. 미국 전역이 다 그러한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부인과는 아기를 분만하기 전에는 개인 병원에 가고, 아기를 낳을 땐 무조건 연결된 종합병원으로 가게 되어있었다.


다들 잠도 못 자고,  담당 의사 선생님도 나오시고  바로 분만실로 가게 되었다. 감사하게도 내리고있는 눈처럼 하얀 공주를 얻었다. 기후 탓인지 그날 폭설이 내려 다른 산모들도 아기를  낳았다는 후문도 있었다. 또 공항에 비행기가 못 내려, 엄마는 다른 곳에서 하루 더 주무시고 오셨다. 참 시간이란 것이 묘해서 지나고 나면, 재미난 추억이 되는데, 그땐 정말 놀라고 당황스럽고 힘들었다. 그렇게 표고버섯김밥을 먹고 첫째를 순산했다.


 다음은 둘째를 임신하고 산달이 되어가고 있었다. 다행히 그땐 서울서 지냈기 때문에, 먼저 친정이 있는 대구로 내려왔다. 엄마는 운동을 참 좋아하셔서, 막냇동생을 낳고 나서부터 운동을 시작하셨다. 테니스, 수영, 골프등 종목을 안 가리고 열심히 하셨다. 직장에 다니는 것도 아닌데, 저녁 할 때가  되어야 엄마를 볼 수 있을 정도로 운동에 심취하셨다. 그 부작용으로 자매 네 명은 아무도 운동하지 않는다. 이제는 운동도 좀 해야 하는데 서로 그렇게 얘기할 뿐, 또 엄마께서 누구든 운동하는 사람에게 주신다는 좋은  라켓이며 골프채들이 그냥 굴러다녀도 아무도 공치는 사람이 없다. 여하튼 “또 한 달 정도 운동을 못 갈 거니, 오늘 마지막으로 운동하고 올 테니 쉬어라” 하시며 좋아하는 김밥을 싸두고 나가셨다.


김밥을 맛나게 먹었다. 그러고 시간이 좀 지나서 또 이상한 거였다. 양수가 터졌다. 이번엔 남편은 서울에 있고, 엄마는 운동가시고, 할 수 없이 시아버님께 전화를 드려야 하는데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데 엄마가 안 계시니 뭐라 말씀드리지? 정말 기가 막혔다. 조금만 더 기다려보자 하면서 버티다가, 엄미의 대문 벨 소리를 듣자마자 시아버님께 전화드리고 SOS를 요청했다. 그때처럼 엄마가 원망스러웠을까? 난 절대 골프 안 친다고 맹세했다. 그렇게  병원 가서, 외할머니를 기다려 준 착한 둘째 딸을 얻었다.


 위로 두 딸을 낳고 보니 집에서는 아들도 있어야지 하시는데, 아이가 빨리 안 생겼다. 큰아이와 둘째도 4년 터울이고, 그렇게 삼 년이 지나서야 아이가 생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학교 잘 나가시던 시어머님께서 뇌경색이 와서 자리에 누우셨다. 임신한 몸으로 환자를 돌본다는 것이 힘이  들었나 보다.


7개월이 되어 일한다고 서 있으면 배가 딱딱해지며 금방이라도 아이가 나올 것 같았다. 불안감에 병원에 갔더니, 조산할 거 같다면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당장 누워있으라 하셨다. 남편을 불러라 하고 상황설명을 해주셔서,  친정으로 피난 가게 되었다. 시댁에서는 급히 사람을 구하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때 이야기는 다시 길게 풀어야 할 정도로 또 기막힌 사연이 있다.


 엄마는 둘째 때 일이 미안하신지 “이번에는 제대로 예정 날짜에 낳아야지.” 하셨다. 두 딸 이야기하다가  두 번 다 김밥 먹고 아이를 분만한 것을 알게 되었고, 혹시 모르니 “이번엔 먹지 말아라 “하셨다. 우연인지는 몰라도 제날짜에, 가마가 정 중앙에있는 막내인 아들을 분만했다.  웃기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김밥 먹을 때마다 이 일이 생각나면서,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되었다. 


 혹시 분만이 가까워 오시는 분들, 김밥은 아기 낳은 후에 드시어요. 그렇게 김밥은  재미난 추억이 되었다. 여러분도 추억의 음식이 있죠? 엄마가 생각나거나, 또는 추억이 되는 음식, 뭐가 있을까요?  궁금합니다. 댓글에 알려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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