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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희건이나비 Nov 23. 2023

감나무와의 인연

감나무 고맙습니다

  아이들의 입시가 다가오면 늘 운문사 사리암으로 갔다. 특히 그곳의 새벽예불이 좋아서 밤시간을 이용했다. 그 기도처는 다들 밤에 많이 오셔서 어두운 산사의 새벽을 밝힌다. 코로나 전에는 토요일마다 서울과 부산에서 신자분들을 태운 버스가 왔었다. 기도하다 보면 어느 사이 새벽 3시가 되고 맑고 청아한 비구니스님의 도량청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인시인 새벽 3시는 살아있는 생물이 깨어나는 시간이란다. 참고로 자시 즉 밤 11시는 하늘이 깨어나고 축시인 새벽 1시는 땅이 깨어나는 시간이다. 새벽을 울리는 그 청량한 목소리가 얼마나 심신이 나게 하던지! 백팔배를 절로 하게 했다. 낮시간도 좋지만 그 도량청을 들으려고 밤에 많이 다녔다.

  그날도 밤늦은 시간 청도로 달려가는 길이었다. 밤이다 보니 시야가 넓지는 않은데, 늘 보던 가로수가 낯설게 느껴져서 차를 세웠다. 길이 한적한 곳이라 내렸더니, 감나무에 감이 열려 익으니 그 전과 다르게 보였던 것이다. 잎과 같은 녹색일 때는 못 느꼈던 감열매가, 붉어지니 그 모습이 보였다. 그때 절에 올라가면서 그렇구나, 저렇게 익으니 보이는구나. 사람 또한 그러하겠지 하면서…

  그 뒤부터 감나무가 참 좋았다. 집에도 한 그루 밭에도 한 그루 있었지만 그전엔 무심히 봤었다. 그날 이후로 새롭게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우연히 읽은 어느 책에서 감나무를 예찬하는 글을 보게 되었다. 그런 것이 동시성인가? 뭔가 궁금하면 어디서든 알게 되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이번에도 그 글에서 감나무는 다섯 가지 덕이 있다고 쓰여있었다.

  잎이 넓어 글씨 연습하기 좋아서 ‘문’에 기여하고, 나무가 단단해서 화살촉으로 씌어 ‘무’에 기여하고 열매의 겉과 속 색이 같아 ‘충’에 기여하고, 서리가 내리는 늦가을까지 감이 달려있어 ‘절’에 기여하고, 물렁한 홍시를 부모님께 드릴 수 있어 효에 기여한다면서 ‘오절수’ 라고도 불렀다 한다.

  그 외에도 수명이 길고, 잎이 풍성해서 그늘이 짙고, 새 둥지도 없고, 벌레가 없으며, 단풍 든 잎이 아름답고 두꺼우며 과실도 훌륭하다고 나와 있었다. 청도엔 특히나 씨 없는 감으로도 유명하고 가로수로도 많이 심겨 있어서, 감나무하면 청도가 떠오른다. 더 옛날 추억으로는 대학입시를 치르고, 언니랑 운문사 작은 암자에 간 일이 있었다. 암자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그때 스님이 주신 홍시맛은 잊을 수가 없다. 때가 겨울이라 단지 속에 넣어두었던 차가운 홍시를 주셨는데, 아이스크림보다 맛있었다.

  사리암도 청도에 있고, 감나무 가로수길도 청도에 있어, 가을이 익어가고 입시철이 되면 청도 감나무가 보고 싶어 한번은 다녀오게 된다. 이번 가을엔 산책 다니면서 이쁘게 물든 감잎을 주워와 책에 끼워두었다. 얼마나 큰지 보통 책 사이즈는 안되고 노트는 되어야 크기가 맞았다. 잘 말려서 겨우내 이쁘게 봐야겠다. 시 한 편을 적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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