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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희건이나비 Nov 13. 2023

보물찾기

나의 소중한 보물

나는 아직 텃밭 가꾸기엔 왕초보다. 아버님께서 지으시던것을 내가 하게 되었다. 도시에서만 살았고, 아버님께서 하실 때 가끔 놀러 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텃밭은 다양한 재미와 볼거리를 준다. 봄이면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새순들과 잎이 나오기도 전에, 여리고 보드라운 속살로 피워내는 봄꽃들. 그들을 맞이하는 것이 나에겐 보약을 한 사발 마시는 것 같다. 물론 봄에는 시기를 놓치지 않고 땅에 거름을 넣고, 한번 뒤집어주어야 한다. 큰 밭이 아니라서 내 손으로  해야 하는 것이 버겁기도 하다. 이때의 가장 즐거운 일은 봄나물을 찾는 것이다. 물론 어디에 어떤 나물이 있는 것은 알지만, 누가 먼저  올라오는지 찾는 것은 정말 즐거운 일이다.


  늘 보물 찾으러 간다고 한다. 스스로 길고 추운 겨울을 이겨낸 친구들을 만나면 고맙다 하고 순도 나눠온다. 하루가 다르게 피어나는 꽃들과 함께 봄은 첫사랑처럼 나에게 다가온다. 봄에 부지런을 떨면, 풀도 잡고 텃밭도 보기가 좋아진다. 그땐 매일 가도 재미가 난다. 씨를 뿌리고 올라오는 상추며 배추들이 너무나 이쁘고 맛나다. 사계절이 다 좋지만 특히 봄이 제일 좋다. 봄의 전령사 새순은 언제나 나를 황홀하게 한다. 그렇게 봄을 즐기고 나면, 무지 괴로운 여름이 모기와 풀이 함께 온다.


 여름엔 비도 많이 올뿐 아니라, 약을 치지 않아서 모기도 엄청 많다. 다행히  아로마오일을 알게 되어, 모기 퇴치제도 만들고, 물리면 버물리도 바른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밭이 물기가 많은 땅이고, 작은 또랑이 있어서인지 모기가 많다. 그리고 여름엔  내가 여행을 가게 되는 경우가 많다. 모기핑계하고, 여행 핑계하다 보면 밭일이 멀어진다. 예전 아버님께서 하시는 만큼은 엄두도 못 내고, 내가 할 수 있는 정도만 한다. 사실 늦여름에 가을배추와 무도 준비해야는데 자꾸 놓친다. 겨우 모기를 피해 낮에 가서 채소들만 따오기도 한다.


 여름에 내버려 둔 밭이 가을이 되면서 풀이 씨를 엄청 물고 있다. 그들이 다 익기 전에 베어내야 한다. 낫을 들고 여기저기 자르다 보면 여름에 열려있던 오이가 숨어서 노각이 되어있고, 호박도 구석에서 누렇게 익어가고 있다. 가을엔 그래서 보물이 더 많다. 감사하게도 늦게까지 고추가 달려주고, 가지도 굵어지지는 않지만 열리긴 한다. 무성하게 자라던 풀도 성장을 멈추고 씨앗들만 터트려진다.


 이번 여름엔 상황이 더 심각했다. 아마도 내가 밭을 관리하고, 이렇게 비가 많이 내린 건 처음이다. 밭에 수도가 없기 때문에 큰 물통을 두어, 빗물을 받아서 보통 봄에 사용을 한다. 하지만 물통에 물이 반 이상을 찬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여름이 지나고 나니 물통에 물이 흘러넘친다. 그러니 풀이 얼마나 무성했겠나! 파와 부추밭이 풀로 덮여있다. 처음엔 너무 기가 막혔는데, 어쩔 수 없이 풀을 매기로 작하고 일을 시작했다.


 파는 생각보다 약했다. 물기가 많아서인지 잡초들에게 눌려서 제대로 크지도 못하고 있었다. 풀을 제거하고 나니 몸을 일으키는 것 같다. 다음은 부추밭을 손보는데, 놀랍게도 풀을 베어내니 부추가 길고 연하게 누워있다. 너무 아까워서 집에 갖고 왔다. 다듬기가 무척 힘들었지만, 손질하고 김치를 담갔다. 부추김치가 아주 맛나다. 이렇게 밭에는 보물들을 숨기고 있다. 그래서 시골에 사는 분들은 땅을 놀리지 않는가 보다. 빈 땅이 있으면 일단 씨앗부터 넣어둔단다. 그래서 나도 힘이 들지만 조금씩 따라 해본다.


  진짜 보물은 흙이다. 다 품어주는 그들, 뭐든 넣어두면 몇 배로 돌려주는 요술상자. 요즘은 흙길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다 시멘트로 덮여있다. 흙을 찾아서  걸어도 보고 화분이라도 장만해서  친해보자. 특히 비가 오기 시작할 때, 마른땅에서 올라오는 흙내음. 정말 기운을 주는 것 같다.  뿌리에서 나오는 진저 같은 오일들은 흙 향이 나면서 우리에게 원기회복을 시켜준단다. 

  텅 빈 겨울, 식물들이 다 돌아가고 빈 땅을 품고 있는 그들을 보면서, 그렇게 순환하는 자연에게서  많이 배운다. 비울 때는 비우고, 안아야 할 땐 다 떠안고 살아내는 그들!  ‘대지가 모든 생명체의 어머니’라는 인디언의 말를 빌리지 않더라도, 참 감사한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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