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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희건이나비 Feb 13. 2024

도마뱀과 외할머니

꼬리를 끊고 달아난 도마뱀

  아버지는 육 남매 막내셨고 엄마는 무남독녀였다. 내가 태어났을 때는 외할머니 한분만 살아계셨다. 엄마가 오 남매나 낳아서 외할머니는 근처에 사시면서 많이 도와주셨다. 엄마가 고등학생 때 누군가 갓난아이를 집 앞에 두고  갔다고 한다. 그때 외할머니는 엄마만 키우고 있었고, 나이 들어 외롭다고 그 아이를 받아들이셨다고 한다. 그런데 외할아버지께서 고혈압으로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할머니께서 힘들게 외삼촌을 키우셨다.


  할머니는 그 당시 직장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바느질이며, 절에서 필요한 일 등, 일거리가 생기면 다하셨다. 그러시면서 방학 때는 우리들 중 한 명을 데리고 절에 들어가셔서 공양주보살도 하셨다. 내 순서가 돌아왔을 때는 무주구천동에 있는 절에 가게 되었다. 마침 그 절이 불사를 하고 있어 부엌에 일손이 많이 필요해서  할머니에게 연락이 온 것이었다. 나는 대구서 태어나 한 번도 시골에 살아본 경험이 없어 완전  신이 났다. 초등학교 5학년때였다.


  지금은 무주 가는 길이 잘 포장되어 있지만 그 옛날에는 꼬불꼬불 산길을 한참을 달리고도 내려서 또 오래 걸어야 했다. 오죽하면 구천동 계곡이란 이름이 붙었겠나. 저녁이 다 되어서야  절에 도착했다. 처음 놀란 것이 분명 여름이었는데, 절에서는 방에 군불을 넣고 있었다. 불을 때지 않으면 추워서 잘 수가 없단다. 그렇게 피곤한 몸을 따뜻한 방바닥에 지지 고나니 아침에 쉽게 일어났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부엌에 들어가시고 난 혼자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산골체험을 했다. 무주구천동 백련사는 지금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지만 예전엔 더 많았던 것 같다. 

그때 기억으로는 늘 사람들로 북적이고 대중방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이 참 많았다. 공부하러 들어오는 고시생들도 제법 있었다. 식사하러 내려와서 나랑 놀아주고 산책도 같이하고 산 정상에도 데리고 갔다. 그때 산을 올라가면서 좁은 길보단 넓은 길로 가라, 혹시 길을 잃으면 물소리를 잘 찾아서 물소리 나는 곳으로 내려와라 등 많은 것을 알려주었다. 지금도 산에 가면 덕유산을 쫄쫄 따라 올라갔던 어릴 적 내 모습이 생각나서 웃음 지어진다.


  또 한 번은 할머니랑 잠시 쉬고 있었는데 도마뱀이 지나가는 거였다. 나는 기겁을 하는데 할머니께서 도마뱀 끝을 살짝 밟으시곤 보라 하신다. 신기하게도 그 녀석이 꼬리를 어떻게 잘랐는지 꼬리만 남기고 사라지는 것이었다. 그 장면이 너무 신기하고 놀라웠다. 동물들이 자신을 보호하는 방법을 처음 본 것이다.  할머니는 저렇게 미물도자신을 지키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야생 산딸기를 따 먹어보고, 동그란 나무욕조통에서 목욕도 해보고, 쏟아지는 별들도 실컷 볼 수 있었다. 젤 재미있었던 것은 군불을 지피는 것이었다. 

나에겐 작은 나무조각이나 떨어진 나뭇잎들을 주워오라 했고 군불을 지피는 법도 알려주셨다. 처음엔 불쏘시개 될 것들을 먼저 피우고 나무 잔조각들을 넣어서 불이 조금 달아오르면 장작으로 팬 나무토막을 넣어서 불이 옮겨 붙기를 기다렸다. 하나씩 불이 옮겨 붙으면 층을 내듯이 숨 쉴 공간을 주어가면서 나무를 쌓아야 한다고 하셨다.


 무슨 일이든 순서가 있고 기다려 줄 줄 알아야 된다고도 하셨다. 살아오면서 군불을 지필 기회는 없었지만 그 말씀이 잊히지 않고 내 몸에 각인된 것 같다. 그 한 달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내 인생에서는 귀한 체험이었다. 시골서 살아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진하게 나에게 남아있다. 외할머니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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