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미희건이나비 Feb 19. 2024

아버지의 향이 남편에게서?

장인이 사위를 부른다

  어린 시절 우리 오 남매는 아버지가 들어오시면 반가운 일도 있고 하기 싫은 일도 있어서 동네로 들어오는 차소리가 나면 순간은 망설인다. 빨리 나갈까 말까 잠시고민한다. 왜냐하면 첫 번째로 차고 문을 열어야 한다. 요즘 좋은 집들은 차고문도 자동으로 열리더구먼, 옛날은 그렇지 않아서  빵~하는 소리가 나면 얼른 차고 샸다를 올려야 한다. 아버지는 성질이 굉장히 급하셨다. 마치 사운드오브뮤직에 나오는 장교님이 호루라기를 불면 다 각자 방에서 튀어나오듯, 우리도 우르르 아버지를 맞이하러 뛰어 내려가야 했다.


  두 번째는 아버지 머리에 약을 발라드려야 했다. 엄마는 부엌에서 식사준비를 하시니 차고문을 열고 아버지 머리에 약을 바르는 일은 우리 몫이었다. 아버지 머리는 우리가 약을  안 발라드렸으면 대머리가 되셨을 거다. 할머니께서 40에 얻은 막내다 보니 많이 약했다. 1년에 한 번은 몸살을 하고 넘어가셨고 머리카락도 약하고 숱도 적었다. 인물은 우리 아버지라서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연예인같이 잘 생기셨다. 대학생 때 길거리 캐스팅도 받았다 하시며 가끔 자랑하셨다. 

 하지만 숱이 적다 보니 대머리 될까 봐 고민이셨다. 그래서 저녁마다 우리는 돌아가며 약을 발라드렸고, 기분 좋을 땐 용돈도 덤으로 주셨다. 바르는 것은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나 냄새가 조금 특이했다 아주 진한 풀향 같은데, 그리 좋은 향은 아니라서 우린 서로 눈치를 보며 암묵의 순서를 지켰다. 정말 그래서인지 돌아가실 때까지 아버지의 그 보드라웠던 머리칼은 아버지의 윗 머리를 잘 덮어주었고, 대머리는 면하고 가셨다.


  어느 날 이번엔 남편이  머리에 뭔가를 뿌린다. 그런데 그 크게 맘에 들지 않는 향이, 많이 맡아본 향인데? 잘 생각하니 아버지 머리에 바르던 냄새였다. 그 옛날에도 아버지는 수입한 일제물건을 쓰셨고 그때는 액체로 나와서 머리에 붓고 문질러야 했는데, 지금 남편이 쓴 것은 스프레이 형식으로 나와서 뿌리면서 사용하니 좀 더 편해진 것 같다. 시어머님이 며느리를 부르고, 장인 이 사위를 부른다더니 이렇게 두 남자는 머리칼이 약하고 부드러운 공통점을 가지고 있네. 순간 피식 웃음이 났다.


  이렇든 향기는 추억을 부른다. 우리는 아무 생각 없이 향을 맡고 있고, 부지불식간에 내 코로 향이 들어와서 뇌의 가장 중심인 변연게로 들어간다. 감정과 기억을 관장하는 곳이다 보니 향을 맡으면 관련된 추억이 떠오른다. 또 중요한 것은 냄새를 못 맡으면 기억력도 감해진다. 혹시 주위에 치매환자분이 계시면 한번 향을 맡게 해 보라. 대부분 구분을 못 한다. 그래서 가족 중에 냄새를 잘 못 맡으면 자꾸 향에 노출시켜서 후각을 발달시켜주는 것이 방법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모든 향에 노출되어 있다. 부디 천연의 향을 맡도록 의식적인 노력을 하자.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20년도 넘었지만 그 향은 지금도 내 기억에 저장되어 있다. 그리고 좋은 추억으로 현재와 연결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취향 발견 프로젝트] 향기 가득한 에세이 쓰는 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