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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izard Writer Feb 26. 2024

응답하라 1992, 카스텔라 냄새

세상에는 40만 개가 넘는 냄새가 있고 사람은 그중 2천 개를 구분할 수 있는데 크게는 10가지로 묶인다고 한다. 10가지 중 우리가 기분 좋게 느끼는 냄새는 주로 향긋한 냄새, 상쾌한 냄새, 그리고 맛있는 냄새가 아닐까 싶다. 꽃과 나무, 산과 바다 등 자연에서 풍기는 향도 좋지만 목욕이나 샤워 후 욕실 한가득 채워진 향은 찡그린 얼굴도 말끔히 펴내고 만다. 온종일 찌든 몸과 마음이 물과 수증기에 흠뻑 젖어 씻기고 향기를 덧입으면 마치 의류 관리기에 들어갔다 나온 옷처럼 새로 태어난 기분이다.


맛있는 냄새는 좀 더 특별한 구석이 있다. 고기 굽는 냄새, 라면 냄새, 갓 지은 밥 냄새, 겨울철 호떡이나 호빵, 군밤과 군고구마, 붕어빵 냄새에 반응하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갓 내린 커피 향은 물론이고. 모든 좋은 냄새가 특별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아니지만 맛있는 냄새에 떠오르는 추억이 없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에게 있어 그런 추억은 바로 빵 굽는 냄새이다. 엄마의 당시 표현을 빌리자면 빵 “찌는” 냄새.




1992년. 전자레인지가 요즘의 오븐처럼 보급되기 시작했다. 전자레인지 대신 오븐으로 빵을 굽듯이 그때는 밥솥 대신 전자레인지로 빵을 만드는 것이 새로운 시절이었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빵을 ‘굽는다’고 하지 않고 ‘찐다’고 표현하셨다. 전자레인지로 다양한 요리를 해내기 시작한 엄마는 부엌 한 곁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그 위에 30개들이 계란 여러 판과 밀가루 봉지, 베이킹파우더 등을 펼치고 앉으셨다. 수동 거품기로 계란 치는 소리, 가느다란 체로 밀가루 쳐 내리는 소리가 한참 들린 후 조용하다 싶으면 어느새 카스텔라 냄새가 온 집안에 퍼지기 시작했다. 카스텔라와 우유는 우리 집 단골 간식이었다.


그해 이사를 하면서 전학을 갔는데 엄마도 일을 그만두고 학부모 모임에 오기 시작하셨다. 요즘 학부모에게는 당연한 수준이지만 그때는 모든 부모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몇몇 부모님들이 약속을 하고 학교에 종종 와서 아이들의 생활에 관심을 가지고 선생님과 만나기도 하면서 정기적인 모임이 자연스럽게 생겨난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 학부모와 차이가 있다면 당시 이 부모님들의 관심은 자기 아이만 아니라 학급 전체였다. 학부모 간에 단순한 친교 모임에 지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학교에 빈손으로 오지 않고 아이들에게 간식을 사주셨다.


집안 살림이 넉넉하지 않았던 지라 엄마는 계란과 밀가루를 주재료로 하는 카스텔라를 전자레인지에 “쪄서” 한가득 머리에 이고 학교까지 걸어 내려오셨다. 후에도 엄마는 그때 돈이 없어서 빵을 만들어 간 거라고 종종 말씀하셨다. 요즘 아이들 같으면 부끄러워할까? 그 시절의 세상은 주거하는 아파트 단지를 따라 편을 가르지 않았다. 정원 딸린 친구네 저택에 초대받아 가서는 친구를 잘 둬 이런 곳을 다 와 본다며 기뻐하고 감사하던 엄마. 부모님이 잘 챙겨주지 못하는 반 친구들에게 학용품을 사서 선물하던 엄마. 니 자식 내 자식 구분하지 않고 그 시절의 카스텔라 치맛바람은 모든 아이를 위한 것이었다.




지금 내가 가장 좋아하는 빵은 버터 풍미가 가득하고 겹겹이 구워진 바삭바삭한 크로와상이다. 하지만 여느 빵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뽀얀 노란 옷을 입고 갈색 모자를 쓴 것 같은 카스텔라를 보면 ‘우유랑 먹으면 맛있겠다’하면서 간혹 같이 집어 들기도 한다. 마트에 가면 값이 좀 나가지만 달콤함과 촉촉함 사이에서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일본식 카스텔라 앞에서 발이 쉽게 떨어지지 않는다. 그 맛은 언제나 옳아서 돈이 아깝지 않다. 병문안을 가거나 특히 연로하신 분을 찾아뵐 때도 카스텔라를 산다. 호불호가 크게 나뉘지 않고 영양가가 높으며 실온 보관이 가능한 기특한 간식이다. 빵 냄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냄새 중 하나이고 카스텔라는 엄마에게 물려받은 건강한 내면과 이웃 돌봄을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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