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동 나나 May 01. 2024

천국의 문

OUD

35년 전 이집트 여행을 갔다. 


 도착한 날 저녁 피라미드와 스핑크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쇼를 보았다. 조명과 음향을 멋지게 연출하였고 투탕카멘의 죽음과 사랑을 이야기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감동과 함께 다음 날 아침 피라미드 내부를 들어가기 위해 같은 장소를 방문했다. 피라미드 주변은 낙타 똥과 쓰레기가 널려있고 허름한 현지인들이 미라를 쌌던 천이라며 ‘원 달러, 원 달러’하며  따라다녔다. 


피라미드 주변을 도는 낙타를 탔는데 남편만 내려주고 7살 딸아이는 돈을 더 달라며 내려 주지 않았다. 딸은 지금도 그때의 공포를 이야기한다. 낙타 사건을 계기로 남편과 나는 이집트 여행이 쉽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 


 다음 날 가이드가 향을 파는 가게에 데리고 갔다. 벽을 장식한 수많은 예쁜 병에서 나오는 향은 다양했다. 처음 맡아본 향은 끈끈하기도 달콤하기도 해서 신비롭게 느껴졌다. 가게 점원이 아랍어로 향에 대한 설명을 오랫동안 했다. 가이드는 여기 아니면 이런 고급 향은 살 수 없다고 했다. 




 ‘천국의 문’과 이름은 잊어버렸지만 뭔가 달콤하고 비릿한 향을 권했다. ‘천국의 문’이라는 오일을 밤에 바르면 부부가 천국을 다녀온다고 했다. 천국을 다녀온다는 말에 우리 부부는 눈짓으로 동의하고, 많은 것 중에 그 향을 선택했다. 


또 다른 향은 낮에 일반적으로 쓸 수 있는 오일이라고 했다. 한 50cc 정도 되는 오일 두 개를 예쁜 병에 담아 200불에 샀다. 35년 전의 200불은 적은 돈이 아니었다. 이렇게 해서 이집트 여행 둘째 날 사기에 가까운 바가지를 썼다. 



이 향수병은 한 5년 동안 선반 위에 장식품으로 놓여있었다. 진한 아랍 향이어서 이걸 바르고 나가면 내가 만나는 한국 사람들은 역겨워했다. 그렇다고 밤마다 천국을 갈 수도 없고 결국은 반은 날아가고 남은 것은 비닐봉지에 꽁꽁 싸서 버려야 했다.  





 

1995년 두바이에 도착해서 공항의 검색대를 지나는데 어디선가 아는 냄새가 났다. 내가 버린 그 향이 검색대 여직원을 감싸고 있었다. 내가 다시 아랍, 중동 땅에 왔다는 것이 느껴졌다. 



  아랍 사람들에게 향은 겉옷과 같고 부의 상징이다. 고급 향을 뿌려서 자신의 부를 과시한다. 비싼 향이라는 우드(OUD)는 동물적인 향이 섞여 있는 듯하고 일반적인 아랍 향은 샌달우드나 프랑킨센스가 가장 익숙하다. 우드 향은 금값만큼이나 비싼 향인데 한국 사람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냄새이다. 



 많은 아랍 여자들이 고급 향수병을 핸드백에 가지고 다닌다. 호텔이나 식당의 여자 화장실에 가면 검은색 아바야 위로 몇 바퀴 돌리며 뿌린다. 좁은 화장실에서 옆에 있는 나까지 향수를 뿌린 듯하다.  아랍 여자가 멀리서 오면 주변에 향이 넘친다. 비싸고 좋은 향이지만 진해서 아랍 사람이 모인 곳에 가면 머리가 아플 정도다. 




  


두바이를 떠난 지 4년 정도 되었다. 두바이에 사는 딸이 보내준 선물에 향수가 있다. 선물을 보며 아랍 여인의 향이 그리워진다. 짙은 화장의 강한 눈매, 진한 향, 잠자리 날개 같은 아바야를 날리며 걷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시간이나 날짜는 잊어버리지만, 냄새는 잊어버리지 않는다. 내게 향을 뿌려주듯 당당하게 걸어가는 아랍 여인이 그립다. 고향은 아니지만 25년을 살고 온 곳이라 고향을 떠난 사람이 느끼는 향수병(鄕愁病)이 생기나 보다. 


그래 나는 언제나 그랬다, 떠나온 것을 아니면 올 것을 그리워했다. 

하지만 오늘이 행복한 것을 알고 인정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응답하라 1992, 카스텔라 냄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