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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희건이나비 Mar 13. 2024

석굴암 부처님도 웃어주신 날

밤새 눈이 왔어요

  눈이 내리는 겨울에 눈소식이 없는 것은 축복일까? 다른 지역에선 눈이 쏟아져 힘든 일도 많이 불러온다. 그래도 대구의 눈 소식은 요지부동이다. 한편 다행인 것은 시내엔 비가 내려도 산에는 눈이 내려 멋진 풍광이 아련히 보이는 듯하다.


  아마도 십 년은 넘은 듯한데, 그 해도 대구는 눈 보기가 하늘의 별따기였다. 눈도 못 만나고 봄이 오려하고 있었다. 마침 평일인데 남편이 시간이 되어 아버님을 모시고 경주로 드라이브를 갔다. 아버님께서는 토함산을 가고 싶어 하셨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올라가는 입구에 바리케이드가 쳐있었다.  

 안내판에는 눈이 많이 와서 통행을 차단한다고 씌어 있었다. 우린 눈 보기도 어려운데 눈이 와 있는 모습이 아래에서도 살짝 멋지게 보였다. 그런데 길을 이미 정비를 해서  깨끗하게 치워져 있는데, 왜 진입을 못하게 막아두었는지 속이 상했다.  


  남편은 그냥 돌아서자 하는데 마침 위에서 차가 한대 내려오는 것이었다. “어 뭐지? 저차는 뭔데 올라갔지?” 우리도 가보자고 졸랐다. 왜냐하면 올라가는 길만 막아두었지 내려오는 길엔 차단기가 없었다. 그래서 “저리 올라가 보자,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기 너무 아쉽고, 혹시 길이 안 좋으면 내려오면 되니 가봐요” 하며 고집을 피웠다. 웬일로 남편이 따라주었다. 보통 때 같으면 또 고집 피운다고 한소리 들었을 것이다.


  아, 세상에 길은 이미 눈이 다 치워져 있었고 산으로 올라가는 풍경이 정말 대구선 절대 볼 수 없는 경치였다. 아버님도 좋아하시고 남편도 이렇게 갈 수 있는데 왜 막아두었지? 하면서 토함산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석굴암까지 눈길을 걸어갔다. 봄 눈이다 보니 크게 미끄럽지 않았다. 난 정말 입이 귀에 걸렸다. 옆을 보니 아버님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풍경을 얼마 만에 보는지 모르겠구나.” 하시며 연신 “ 좋구나!” 하신다.


 세상에 이렇게 감사할 데가 있나. 내 평생 몇 번의 기막힌 눈을 만났지만, 기대도 안 한 곳에서 이렇게 깨끗하고 고요한 눈을 만나다니.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왔다. 토함산 부처님도 웃고 계셨다.


  지금 생각해도 내 입가에 웃음이 번지고, 지금은 옆에 안 계신 아버님도 웃고 계신다. 정말 고집 잘 피운 선택 중 하나였다. 아직 3월이 다 지나진 않았으니, 깜짝 놀라게 밤새 눈이 한번 내려 멋진 풍광을 보여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날씨가 그리 춥지 않아 길은 빨리 녹을 것이고, 큰 피해 없는 검은 눈(밤새 내리는 눈)이라도 한번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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