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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희건이나비 Jun 08. 2024

답답하면 아버지만 찾는다

아부지 도와주시이소

  우리 세대 그러니까 60-70대 사람들은 부모님께는 효도하는 마지막세대, 자녀들에겐 대접 못 받는 첫 세대라 한다. 말 그대로 아직 나의 의무는 끝나지 않았다. 시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시어머니, 친정아버지, 시아버지를 차례로 보내드리고 이제 친정엄마만 계신다. 

 건강히 함께 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으련만 엄마는 2016년에 치매 판정을 받으셨다. 만 8년을 지나고 9년째 접어들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주 심한 상태는 아니어서 혼자 아파트에 계신다.


  형제가 다섯이나 되지만 엄마옆에 있는 사람은 나뿐이고 셋은 서울에, 동생하나는 부산에 있다. 그러다 보니 답답해서도 들리고, 안타까워서도 들리다가 이제는 매일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어찌 생각하면 아직 혼자 버티고 계시니 정말 감사하기도 하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얼마나 많은 일이 있는가? 먹는 일부터 치우는 일, 청소하는 일, 씻는 일등 다 어찌 나열할까. 시간이 흐르면서 못하는 일이 늘어난다. 식사도 혼자 못 차려드시고, 화장실에서 대소변을 가리긴 하지만 실수도 많다. 기저귀도 갈아줘야 하고 장도 봐야 하고 식사도 차려야 한다. 물론 도우미의 손길도 빌린다. 다달이 병원도 가야 하고 약도 매일 챙겨야 한다. 당뇨에 고혈압, 치매약까지 보탠다. 주간보호센터에 나가지만 아침마다 준비를 해드려야 가실 수 있다.


  할 수 없는 일이 늘어가면서 나는 더 바쁘다. 그러면 말이라도 잘 들어주면 좋겠는데 무남독녀 외딸로 자라서, 우리 엄마는 고집도 세고 자존심도 세다. 잘못한 일이 있어도 꼭 핑계를 대고 자신이 한 것이 아니라 하고, “힘들면 안 와도 된다. 어찌 되겠지.” 그런 속 터지는 말씀만 하신다.


  나는 철없던 30대에 막내를 임신해 있었는데, 시어머니는 뇌경색이 왔다. 10년의 세월을 어찌 보냈는지 모르겠다. 그나마 그땐 도와주는 사람도 있었고 가족도 함께 살고있어서,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속상했던 기억들도 이젠 다 잊었다. 그리고 시어머니라, 맞이인 나의 의무인 것 같아 그냥 했다. 그런데 지금은 엄마의 콧대 높았던 며느리는 오지도 않고, 가까이 있는 나만 답답할 뿐이다. 가끔은 나만 왜 이리 고생스러울까 하는 생각에 울화통이 터지는 날도 많다.


  일일이 일어나는 일들을 어찌 다 말로 표현하겠나? 혼자서 오롯이 감당해야 하니 힘들 때가 많다. 마음속엔 며느리가 할 일을 내가 대신해야 하는 억울함이 있어서 인가보다. 잘 지내다가도 한 번씩 마음에 통증이 온다. ‘긴 병에 효자 없다’고...


  그땐 애꿎은 아버지만 부른다. ‘당신의 아내 아니냐고, 헤어진 지 20년도 넘었는데 이젠 절 좀 도와주시라고. ‘ 차마 기도는 할 수 없고 아버지만 불러본다.  그땐  ‘이런 마음 가져도 되나, 또 죄를 보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순간순간 나의 한계를 넘어서는 엄마의 반응을 참아내기 힘들 때가 많다.

 오늘도 애꿎은 아버지만 불러본다. ‘죄송합니다 아부지, 딸도 좀 살려주시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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