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99 동양 오리온스 농구단
학창 시절 맞은 기억이 많진 않지만 고2때 담임에게 야구 방망이로 10대를 연속으로 맞은 적이 있다. 이상세의 만화 ‘달을 쏘는 사냥꾼’ 이 너무 보고 싶어 수업 시간에 만화방으로 땡땡이를 치다 걸린 것이다. 평소에는 그렇게 마구잡이로 때리는 사람이 아닌데 직전 반 모의고사 꼴등에 그날 집에 안 좋은 일이 있었는지 아침부터 기분이 나빠 보이더니 지체없이 빠따를 들었다. 다섯 대까지는 아픔이 직방으로 전달됐는데 이후에는 아프다는 감각조차 못 느낄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체벌과 폭력이 일상적으로 행해지던 시대라 10대 정도야 흔했지만 아무리 많이 맞아도 32대를 연속으로 맞는 건 본 적이 없었다. 32대는 맞는 사람 이전에 때리는 사람도 힘들어 한 템포 쉬었다 다시 때리지 않는 한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포츠 경기에서 32대를 연속으로 맞은, 아니 32번을 연속으로 진 팀이 있다. 그것도 아마추어 경기가 아닌 프로스포츠에서 말이다. 98/99 시즌 동양 오리온스가 그 주인공인데 올드 농구팬이라면 아아~ 하고 바로 생각이 날 지도 모른다. 32연패는 국내 프로스포츠는 물론 해외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대기록이었다. 그 시절을 모르는 혹자들은 32연패라고 하니 원래부터 팀이 노답이거나 돈이 없어 선수를 팔아넘긴 거지 구단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아니다. 동양 오리온스는 KBL 프로 원년 4강에 올랐고 이듬해도 중상위권을 유지한 강팀이고 오리온 그룹 역시 돈이 없지 않았다.
97/98 시즌이 끝난 뒤 동양은 팀의 주축인 전희철 김병철을 군대에 보내야 했는데 어차피 이들이 빠지면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었다. 결국 한 시즌을 날리더라도 이참에 선수들의 군대 문제를 한번에 해결하고자 주전 가드 김광운과 신인 박재일까지 입대시키는 원대한 리빌딩 계획을 세웠다. 이들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기아에서 뛰던 노장 이훈재를 데려오는 등 시즌을 치르기 위한 최소한의 구색은 갖추었지만 이빨 빠진 라인업은 딱 봐도 10개 구단 중 최하 수준이었다. 다만 한 가지 믿는 구석은 외국인 용병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KBL 리그에서 용병의 비중은 절대적이라 국내 선수들이 암만 구려도 용병만 잘 뽑으면 희망이 있었다. 어차피 상위권은 욕심낼 수 없다는 걸 알기에 탈꼴찌 정도가 현실적인 목표였다. 실제로 동양은 모기업 부도로 팀 매각을 앞둔 나산과 함께 2약으로 꼽혔다. 그리고 마침내 시즌이 개막되었다.
동양의 주전 베스트 5는 정락영, 존 다지, 이인규, 이훈재, 그렉 콜버트였다. 개막 후 2연패를 했지만 생각보다 대등한 경기를 펼쳤고 특히 센터 그렉 콜버트의 활약이 빛났다. 또 다른 용병 존 다지의 기량은 아쉬웠지만 콜버트가 이끄는 동양은 2승 6패로 그럭저럭 순항하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10경기 만에 콜버트가 개인사 문제로 아~몰라 야반도주를 하면서 연패의 전설이 시작되었다. 부랴부랴 뽑은 대체 용병 자바리 마일즈는 콜버트의 기량에 한참을 못 미쳤고 이름 그대로 짜바리였다. 이후 동양은 승리라는 단어를 잊어버린 팀이 되었다. 지고 또 지고 계속 지고....
98년 겨울 나는 장기 백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IMF 충격파로 취업 전선에 적색경보가 울렸고 준비하던 다른 일도 실패하는 바람에 빈대처럼 집 구석에 눌러붙었다. 할 일은 많고 시간이 없는 직장인과 달리 할 일은 없고 시간은 남아돌던 시절이었다. 평소 스포츠 중계를 가리지 않고 보는 편이라 야구 시즌이 끝나자마자 겨울 스포츠인 농구, 배구로 관심이 모아졌다. 배구야 어차피 삼성화재가 우승을 맡아놓은 거나 마찬가지라 농구를 주로 시청했다. 프로 출범 3년 차 KBL은 농구대잔치 시절만큼은 아니어도 쏠쏠한 재미가 있었다. 용병들의 호쾌한 플레이로 점수도 많이 나고 각 팀을 대표하는 국내 스타들도 있었다. 하지만 10개 구단 통틀어 최악의 용병과 국내 라인업을 보유한 동양 오리온스는 예외였다. 나 역시 동양의 패배 행진에 점차 주목하기 시작했다.
- 야, 이건 협회에서 뭔가 조치를 취해야 되는 거 아니냐? 무슨 놈의 팀이 저래.
농구에 그닥 관심이 없던 아버지도 동양의 연패 소식을 신문으로 계속 접하다 보니 본인도 기가 찬 모양이다.
- 그러게요. 동양은 인간적으로 용병 한 명 더 쓰게 해야 될 것 같은데요. 아, 그래도 안 되려나?
어쩌다 동양의 중계를 보는 날이면 진심 한숨이 끊이지 않는다. 골 밑은 속절없이 털리고 슛은 내 외곽 가리지 않고 빗나갔다. 무엇보다 연패가 길어지면서 선수들의 조급함이 화면으로 체감되었고 어쩌다 앞서가던 경기도 후반에 번번이 역전당했다. 냉혹한 프로의 세계는 동양에게 진심 가혹했다. 동양과 상대하는 팀은 이토록 쉽고 확실한 1승 재물을 절대 놓칠 리 없었다.
1승. 이게 어렵냐? 이게 어려워? 하지만 동양에게는 이 1승이 어렵다. 정말 어렵다. 존나게 어렵다. 해를 넘기고 세기말인 1999년이 밝아도 연패 행진은 도통 꺾일 기세가 없었다. 이 정도면 잔여 경기 포기하고 우리 더는 못해! 를 외치며 GG 쳐도 이해가 갈 정도다. 방송사에서도 동양의 중계는 소외되었다. 어차피 승부가 뻔한 시시한 경기를 뭐하러 보여주겠는가. 하지만 선수들은 1승을 향해 계속 달렸다. 성적만 놓고 보자면 팬들이 오리온 과자 불매운동이라도 벌여야 될 판이지만 대구체육관은 동양의 승리(아니 패배)를 보기 위해 홈팬들이 꾸준히 몰려들었다.
그해 설 명절은 예년보다 늦은 2월 중순이었다. 가족끼리 차례를 지내고 담소를 나누던 중 동양의 패배 소식이 또 전해졌다. 이쯤 되니 설마 하는 불길한 예감이 현실로 다가왔다.
- 동양이 남은 경기에서 1승이라도 할 수 있을까?
- 하겠냐? 지금 하는 꼴을 봐라. 어림도 없는 소리지.
- 그렇지? 이제 몇 경기 남지도 않았는데.
이쯤에서 동양의 최종 예상 승률을 시뮬레이션 해보았다. 잔여 경기를 모두 진다는 가정하에 2승 43패. 승률 4푼 4리! 프로스포츠에서 4푼 따리 성적이 나오다니 이게 리얼인가?
문득 동양의 선수들 얼굴을 하나씩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우리 동네 철물점 아저씨를 닮은 2년차 가드 정락영. 분에 넘치는 에이스 역할을 맡느라 얼굴이 벌써 삭았다. 국내 선수 최다 득점자 이인규. 작년까지 백업으로만 뛰다 플레이 타임이 곱절로 늘어났다. 기아에서 트레이드 된 67년생 이훈재 형님. 기아 시절 몇 번 경기에 나오지도 않고 우승을 밥 먹듯이 해 먹다 말년에 못 볼 꼴을 보고 있다. 개막전부터 전 경기를 소화하고 있는 존 다지. 외모는 NBA 스타 클라이드 드렉슬러를 닮아 겁나게 잘할 것 같은 와꾸인데 외모빨이 전부였다. 콜버트의 대체 센터 자바리 마일즈. 안 그래도 못하는데 제 포지션이 아닌 센터를 맡아 상대 센터들에게 허둥지둥 털리는 모습을 보니 차마 욕도 못 할 지경이다. 아! 이 팀은 정말 희망이 없어. 대학 졸업 후 2년째 방구석에서 굴러다니는 나보다도 더 희망이 없구나.
하지만 모두가 포기했을 때 기적이 일어났다. 2월의 마지막 날. 꽃피는 3월을 앞두고 동양 오리온스는 마침내 나산을 상대로 32연패를 끊어내고 승리를 따냈다. 안타깝게도 티비 중계가 없어 나는 이 경기를 라이브로 보지 못하고 스포츠 뉴스에서 소식을 들었다. ‘동양 32연패 탈출. 선수도 울고 관중도 울었다’. 다음 날인 삼일절에 실린 대구 매일신문 기사 제목만 읽어도 지난 3개월의 처절한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처갔다. 물론 이 승리는 팀 해체를 앞둔 나산의 봐주기라는 의견이 많고 상황적으로 일리가 있는 주장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쨌든 동양은 자칫 40연패로 끝날뻔한 시즌을 다행히(?) 32연패로 스톱시켰다. 삼일절에 대구 팬들은 대한독립 만세! 대신 대구 동양 만세! 라고 외쳤을지도.
이듬해 동양은 전희철의 복귀와 신인 조우현의 활약으로 중위권 도약에 성공했다. 어둠의 터널 속을 동양과 함께 걷던 나 역시 드디어 첫 취업이 되었다. 00/01시즌 동양은 다시 꼴찌로 추락했지만 01/02시즌 천재 가드 김승현과 엘리트 용병 힉스의 가세로 마침내 첫 우승의 감격을 맛보았다. 동양의 32연패를 보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은 언제든 들이닥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게 행운이든 노력의 결실이든 단맛을 느끼는 날이 당신에게도 찾아올 거라 믿는다. 앞으로 나오기 힘들고 나와서도 안 되는 기록을 수립하고 극복한 98/99시즌 동양 오리온스 선수들에게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