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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유 Feb 06. 2024

프로그래머 3화(삼성카드에서 만난 사람들)

첫 직장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기억은 좋든 싫든 힘이 세다. 손길이 닿지 않은 반질반질한 사회생활의 첫 경험은 그만큼 흔적도 오래 남는다. 삼성카드에서 만난 사람들 역시 그랬다. 이십년도 더 지났지만 그때의 시간은 꽤 생생하게 보존되어 있다.

     

조 대리는 미천한 6두품에 불과한 내 능력을 발견하고 인정해 준 사람이었다. 그는 프리랜서로 어느 회사에도 소속되지 않았다. 직책은 대리지만 능력과 역할은 과장급 이상이라 PM (프로젝트 매니저) 들도 함부로 다루지 못했다. IT 업계에서의 능력이란 직책에 상관없이 그 자체로 권위를 가진다. 그의 겉모습은 온화한 인상에 따뜻한 미소를 가진 사람이었다. 말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신입에게도 다정한 말을 건네며 편견 없이 사람을 대했다. 하지만 일적인 부분에서는 대단히 철저하고 일종의 결벽증도 있었다. 조금이라도 주변이 더러운 걸 못 참아하고 그의 신경을 잘못 건드리면 불같이 화를 냈다. 그의 예민한 성격을 아는 사람이라면 내재된 폭탄이 터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하지만 일과 배움에 관해서는 개방적이어서 기술을 숨기려하는 일부 개발자와 달리 자신의 노하우를 전수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조 대리는 내 옆자리에 앉았는데 실제로 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입사 초기 스스로 야근을 자처하며 책을 펼쳐들고 공부하는 모습이 기특했는지 그는 알토란같은 조언들을 많이 전수해줬다. 무지하고 어리버리한 내가 여기서 사람 구실을 하게 된 것도 그의 역할이 컸다.      


그와 함께 했던 일 중 가장 돋보였던 건 데이타 자동 검증 프로그램을 만든 것이었다. 콜센터 프로그램은 삼성카드의 고객 데이터를 내려 받아 자동으로 콜을 하는 시스템이다. 문제는 데이터의 양이 워낙 방대하다보니 가끔 오류 콜이 뜨는 경우가 발생하곤 했다. 물론 전체 콜 수에 비하면 미미하다고 볼 수 있는 비율이지만 시간 당 콜 처리가 생명인 상담원들 입장에서는 재수 없게 오류 콜이 걸리면 금전적 손해를 보거나 엉뚱한 곤욕을 치르게 된다. 상담원들이 불만을 제기해 봐도 위에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상담원들의 말을 듣고 조 대리에게 물었다.

“어차피 원본 데이터의 오류를 거를 수 없다면 여기서 오류를 미리 찾아서 제거하면 되지 않나요?”

“데이터 오류의 케이스가 명확하다면 당연히 그렇게 했겠죠. 하지만 기본 로우만 해도 100바이트가 넘고 하루에도 몇 만 건의 데이터가 계속 내려옵니다.”

“그래도 그간의 오류 사례들을 분석해보면 발생 케이스들을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전부는 아니더라도 그렇게 하나씩 잡아가다보면 오류가 줄어들겠죠.”

조 대리는 흥미로운 눈으로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럼 카미유 씨가 한번 만들어볼래요? 데이터를 자동으로 검증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네? 1년도 안된 신입인 제가 그걸 어떻게 합니까.”

“어차피 지금 바쁜 업무도 없고 시간 많잖아요. 제가 PM 에게 얘기해 놓을 테니 부담 없이 한번 해보세요. 모르는 건 옆에서 제가 도와줄게요.”

그렇게 나는 콜센터 상담원과 조장들을 찾아다니며 지난 오류이력들을 수집해 데이터 형식과 비교하며 케이스를 정리해 나갔다. 그렇게 모아진 케이스를 하나하나 프로그램에 심는 작업을 지속한 끝에 오류 콜은 획기적으로 줄었다. 이 소식은 현업 담당자들에게도 전해져 좋은 반응을 이끌어냈고 짧은 시간에 회사에서 내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다.

     

조 대리가 스승의 역할을 했다면 K씨는 가장 편한 동료이자 친구였다. 그는 고졸 출신 사원으로 소위 말하는 SDS 성골이었다.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개발 경력은 5년이 넘는 중급 프로그래머였다. 그는 신입시절 내가 곤란에 처할 때마다 먼저 다가와 필요한 게 없는지 물었고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 일부 SDS 출신들에게 느껴지는 거만함과 특권인식 따위는 전혀 없었다. 입사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았을 때 나는 첫 코딩 과제를 받았고 열심히 프로그램을 짰다. 하지만 쓸데없이 라인만 길어지고 실행은 되지 않아 진퇴양난의 기로에 서 있었다. 결국 나는 마감을 하루 앞두고 K에게 SOS를 쳤다.

“저 죄송하지만 제가 짠 소스를 한번 봐주실 수 있나요? 아무리 해봐도 실행이 안 되네요.”

그는 자신이 하던 일을 멈추고 스크롤을 내려가며 내 소스를 차근차근 훝어 보았다.

“음.... 제가 예전에 짠 소스가 있는데 한번 보시겠어요? 지금 카미유씨가 짜려는 프로그램의 형식과 거의 유사해 참고가 될 겁니다”

세상에! 내가 100 라인이 넘게 허둥거린 반면 그의 소스는 고작 30 라인 정도로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나는 부끄러움에 고개를 숙였다.

“처음엔 원래 다 그래요. 저는 처음에 카미유씨 만큼도 못 짰어요. 앞으로도 참고가 될 만한 소스가 필요하면 부담 갖지 말고 저한테 말씀하세요.”

이후 나는 다소 염치없을 정도로 그를 귀찮게 했다. 하지만 그는 한 번도 싫다거나 곤란한 내색 없이 아주 사소한 물음에도 정성껏 응대해 주었다. 그로 인해 SDS 본사 직원들에 대한 선입견도 많이 바뀌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만 근본이 선한 사람은 어떤 자리에 가도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걸 K를 통해 깨달았다.

    

콜센터의 조장 Y 만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고 얼굴이 화끈거릴 것만 같다. 당시 피 끓는 20대였던 나는 사랑을 하고 싶었고 수백 명의 여성이 운집한 콜센터는 나름 최적의 환경이었다. 그때 나는 첫 눈에 반해버린 한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상담원들을 관리하는 조장 중 한 명이었는데 과거 영화배우 조용원을 닮은 빼어난 미모와 남자를 죄다 녹여낼 법한 살인미소와 백옥 같은 피부를 지니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푹 빠졌지만 막상 앞에만 서면 말 한마디 제대로 건네지 못했다. 결국 나는 과거 짝사랑의 대상들에게 하던 것처럼 장문의 러브레터 이메일을 써서 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묵묵무답. 회사에서 사랑의 열병을 끙끙 앓는 걸 눈치 챈 동료 H가 연유를 물었고 나는 Y 조장을 좋아한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H는 드라마 같은 데서 보면 주인공의 친구 역할로 나와서 옆에서 까불거리며 오지랖 떠는 캐릭터였다.

“제가 사랑의 다리를 놓아드릴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워낙 친화력이 좋아 평소에도 상담원 조장 가릴 것 없이 농담을 건네는 그인지라 내심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며칠 후, 그는 나를 조용히 불러 얘기했다.

“카미유씨, Y 조장은 포기하세요.”

“아, 역시 그녀 눈에는 제가 맘에 안든 거군요. 하긴 그럴 만 하죠. 그렇게 예쁜 여자가 저에게 관심이 있을 리 없죠. 괜찮아요. 그냥 제 마음을 전할 수 있었다는 데 만족합니다.”

“저기 그런 문제가 아니라.... Y 조장 결혼한 거 몰랐죠?”

헉! 그녀가 유부녀라고? 많아야 이십대 중반 정도로밖에 안 보였는데. 물론 자신이 유부녀라고 써 붙이고 다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낌새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또 다른 충격적인 한 마디.

“지금 임신 중이래요. 얼마 안 되긴 했지만”

그렇다. 나는 임신한 유부녀를 연모하여 사랑의 편지까지 보낸 것이었다. 물론 모르고 한 일이긴 했지만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녀의 얼굴을 어떻게 다시 본단 말인가. 나는 한동안 콜센터 쪽으로 발도 들이지 않았고 행여나 마주칠까 봐 조심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사과는 해야 할 것 같아 그녀를 살짝 따로 불러냈다.

“죄송합니다. 정말 몰랐어요. 결혼한 것도.... 애를 가진 것도....”

하지만 그녀는 대수롭지 않은 듯 살짝 웃으며 말했다.

“저기, 편지를 그렇게 길게 쓰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거 다 읽느라 힘들었네요.”

“정말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제가 제정신이 아닌....”

“괜찮아요. 어차피 모르고 한 건데. 저 아무렇지도 않으니 신경 쓰지 마세요. 앞으로 좋은 분 꼭 만나시구요”     

어느 집단이든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는 한 괴상하고 나쁜 사람들은 존재한다. 나 역시 삼성카드에서 일하면서 힘들었던 사람,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지나고 생각해보니 그들도 일적인 갈등이 주원인이라 그렇게 미워할 만한 존재는 아니었다는 생각도 일견 든다. 당연한 말이지만 세상에는 평범하게 좋은 사람들이 훨씬 더 많고 이 곳 역시 그러했기에 안 좋은 기억들은 굳이 들춰내고 싶지 않다. 이 정도면 첫 직장치고 제법 운이 좋았다고도 생각한다. 그렇게 차츰 회사에 녹아들면서 나는 이십대의 후반에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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