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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미유 Dec 29. 2023

프로그래머 (2화 삼성맨이 아닌 자)

삼성카드 콜센터 C/S 개발팀. 간단히 말해 올해 개봉한 영화 ‘다음 소희’ 에 나오는 콜센터에서 상담원들이 사용하는 프로그램을 개발 및 유지 보수하는 일이었다. 상계동에 위치한 삼성카드 콜센터 빌딩에는 수백 명의 상담원들이 층층이 들어차 있었고 나는 꼭대기 층에서 이십여 명의 개발자 및 현업 담당자들과 함께 업무를 했다.


- 내가 신입 때는 말이야 일주일동안 집에도 못 들어가고 회사에서 먹고 자면서 밤새 일했어.

첫 출근 전날 직장을 소개시켜 준 아재는 사회 초년생이 듣기에는 섬뜩할만한 발언을 던져가며 겁을 주었다. 하지만 일주일 정도 분위기 파악을 해보니 그건 기우였다. 물론 신입의 특성상 모든 게 낯설다 보니 항시 긴장 상태를 유지했고 작은 실수에도 대역죄라도 지은 양  불안해하긴 했지만 아재의 말처럼 정신 못 차릴 만큼 힘든 건 아니었다. 개발사 협력업체 직원은 프로젝트 단위로 계약하고 움직이는데 가장 힘든 개발 단계는 마무리 되었고 현재는 유지보수 쪽으로 업무가 몰려있었다. 물론 긴급 상황이 발생하거나 신규 서비스 오픈 전에는 야근을 피할 수 없지만 그 외에는 칼 퇴근이 가능했다. 초췌한 얼굴로 밤낮없이 컴퓨터 앞에 허리를 구부리고 앉아 일하는 개발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학원에서 웹마스터 과정을 마쳤고 나름 컴퓨터에 익숙하다 생각했지만 이론과 실전은 많이 달랐다. 학원에서의 결과물이 가치 없는 건 아니었지만 여기 환경에서는 사실상 쓸모가 없었다. 메인 프로그램 개발 툴인 델파이도 이곳에서 처음 알았고 바닥부터 하나씩 익혀야 했다. 배워야 할 것이 산더미처럼 많았지만 이제야 정식 회사원이 되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불평은 사치였다. 비록 삼성 직원은 아니지만 대기업 삼성의 계열사답게 깨끗하고 스마트한 근무환경도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출근 첫 날부터 감지되는 사무실의 묘한 광경들은 알 수 없는 위화감이 느껴졌다. 8시 30분까지 출근이었는데 정확히 9시가 되자마자 스피커에서 삼성 찬가(?) 같은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러자 전 직원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자리에서 일어나 마치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듯 노래가 끝날 때까지 가만히 서 있었다. 엉겁결에 나도 따라 일어나긴 했지만 80년대도 아니고 이 무슨 촌스러운 행태란 말인가. 직원들의 분포와 배치도 이색적이었다. 개발자는 크게 삼성 정직원, 협력업체 직원, 프리랜서 세 파트로 분류되는데 삼성 정직원은 SDS 소속과 FDS 소속으로, 협력업체는 각 회사별로 다시 나누어졌다. 삼성과 비삼성의 비율은 4:6 정도로 수치상으로는 비삼성 직원들이 조금 많았다. 목에 거는 사원증이 없다 뿐이지 협력업체 직원들이 하는 일은 삼성 정직원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기획 회의부터 설계 개발 테스트 배포까지의 전 과정을 공유했고 개발자들의 레벨 격차도 거의 없었다.  


점심시간이 되서 다 같이 식당으로 내려갔는데 배식을 받자 양쪽이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따로 자리를 잡고 밥을 먹었다. 나는 무심코 식판을 들고 삼성 직원들 쪽으로 향했다가 이쪽으로 오라는 같은 회사 직원의 말을 듣고 발길을 돌렸다. 물론 칼로 무 베듯 항상 그런 건 아니었지만 양쪽이 겸상하지 않는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유지되었고 술자리조차 특별한 일이 아니면 함께 가지 않았다. 나는 술자리에서 협력업체 직원 선배에게 이 점에 대해 물어보았다.

- 신라시대 골품제라고 들어봤지? 성골, 진골, 6두품 같은 거. 말하자면 SDS는 성골, FDS는 진골, 협력업체들은 6두품, 5두품, 4두품 뭐 이런 식이지. 니네 회사는 그래도 6두품이야. 나는 4두품쯤 되려나. 뭐 어차피 거기서 거기지만.

선배는 농담하듯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골품제에 대한 비유가 전혀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솔직히 업무 중에는 이런 계급적 층위가 잘 드러나지 않았다. 어차피 하는 일은 별 차이가 없고 삼성 출신들이 우리를 차별하거나 무시한다는 느낌도 받지 못했다. 대개의 집단이 그렇듯 좋은 사람과 빌런은 늘 공존했고 그가 삼성 출신이냐 아니냐는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었다.       


그렇지만 내면을 들여다보면 이 같은 계급질서가 헛말은 아니었다. 일반 직원들은 아니지만 프로젝트 매니저(PM)와 임원급은 전부 삼성 SDS 출신이었기에 같은 삼성 출신들은 적잖은 우대를 받았다. 특히 삼성은 사내 행사나 교육 연수 같은 것들이 많아 그들이 빠진 공백을 협력업체 직원들이 떠안곤 했다. 허드레 잡일들도 대부분 우리들이 맡아서 하는 경우가 많았다. 삼성 정직원이 아니니 급여의 차이는 감수하더라도 이런 것까지 차별을 받는다는 게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문제 제기도 해봤지만 위에서는 대충 말로만 때우고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다. 

- 씨발 똑같이 일하고 똑같이 쳐 먹는데 쟤네들은 무슨 황금 똥이라도 싸냐.

- 야 억울하면 너도 삼성 들어가. 누가 여기 있으래.

- 왜 우리랑 같이 밥을 안 먹는 줄 알아? 지들은 삼성맨이라는 거지. 우리는 너희와 다르다는 의식 아니겠어.


나는 현실의 씁쓸함을 직관했지만 신입사원으로서 할 일이 많은지라 한탄하며 엄살떨 여유가 없었다. 특별히 할 일이 없는데도 야근을 자처하며 선배들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배웠다. 첫 직장생활이고 몇 번의 실패를 맛본 나로서는 최소한 성실한 태도와 인상을 심어줄 필요가 있었다. 차츰 회사에 적응해 가면서 평가도 나쁘지 않았다. 초보 프로그래머가 겪는 실수가 없진 않았지만 큰 문제가 되진 않았고 그럴 만큼 중요한 일을 맡지도 않았다. 가끔 사람들과 어울려 술을 마시고 퇴근하면 혼자 저녁을 차려 야구 중계를 보거나 MP3로 음악을 듣다 잠드는, 소소하지만 그럭저럭 괜찮은 직장인의 일상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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