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코치의 스피치코칭업세이
사람들은 말 그 자체를 바꾸려고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말을 그렇게밖에 할 수 없는 나’를
이해하는 일이다. <말 그릇, 김윤나> 중에서
어젯밤 예전 대안학교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 교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입시 면접 코칭을 부탁드릴 학생이 있어요. 저희가 봐주긴 하는데 너무 자신 없어하네요. 자기가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확신도 없다고 하고 너무 긴장해서 목소리는 기어들어가고..
좀 급한데 도와주실 수 있으신가요?"
순간 망설여졌다. 요즘 코로나 이후 일대일 코칭 수업이 늘고 공동저자로 책을 쓰는 중이어서 시간이 부족하기도 했지만, 이런 학생들이 왜 면접을 어려워하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마음 끝이 아파왔다. 작년 같으면 없는 시간이라도 쪼개어 아무리 급하게 부탁해도 수락하고 코칭을 했었다.
이번에는... 결국 거절했다.
나는 이제 입시 면접 스피치 코칭은 하지 않기로 마음을 정리하지 않았는가.
더 이상 그 불편한 허무함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해마다 11월부터 1월까지 치러지는 입시 면접에 대비해서 지금은 각 학교별 기출문제들과 모범답안에 맞게
내용이 거의 완성된 시기이다. 이후 면접 스피치 등을 훈련하며 그 내용이 내 것이 되도록 체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작년까지 나도 입시 면접 스피치 개인 코칭을 하고 학교별로 의뢰가 들어오면 바쁘게 움직였다.
열심히 했다. 나름의 성과도 좋았다.
눈앞에 자신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눈을 부릅뜨고 수업을 받는다.
하지만 이제 하지 않기로 했다. 계속해서 허탈함을 느껴왔기 때문이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일 년 중 어쩌면 단기간에 가장 돈을 많이 벌 수도 있고
이렇게 계속 나의 면접 스피치를 홍보하고 또 명성을(?)을 떨친다면 내게 있어서 손해볼일은 없다.
오히려 반대다.
그렇게 나는 돈을 더 많이 벌 수 있고 그들은 목적을 이룰 수도 있지만
'말에 대한' '나에 대한' 이해 없이 배우는 단기 목적만을 위한 스피치는 허무하다.
왜냐하면 그 목적의 유효기간이 끝나고 나면 그들의 말과 삶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말은 역시 기술이네~'라고 치부하기까지 한다.
면접 시즌이 끝나고 나면 한동안 내내 마음이 불편했었다.
일 년 내내 말은 '기술'이 아니고 '정체성'이고 '나 자신'이라고 설파하는 수업을 한다.
그런데 일 년에 한 철 해병대 조교처럼 변해서 갑자기 만난 아이들에게 각진 말들, 정해진 말들을 하도록
가르치는 이 일은 속상하기까지 하다. 앞뒤가 다른 말을 하는 모습의 내가 불편하다.
이상하게 다른 주제에 대해 말할 때는 안 떨리는데 내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떨리기 시작해요...
어제 스피치 수업을 시작한 친구도 대학 입시 면접을 앞두고는 있지만 내가 그 목적만으로 진행하는 수업을
하지 않겠다고 전했는데도 수업을 받겠다고 왔다.
1차시 '나의 말의 진정한 목적 찾기'에서 어제 그 학생은..
워크시트를 통해 여러 이야기를 고백했고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자아를 찾고 싶다'라고 말했다.
오 주님 감사합니다! 유레카! 바로 이겁니다!
그 아이도 코치인 나도 진정성 있는 말공부의 여정을 떠날 준비가 되었다.
자신감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은 흔히 '말하는 것에 자신이 없어요'라고 하거나 '말 잘하는 것은 타고나는 거죠?'라고 말한다. 오해이며 해결 가능한 질문이다.
자신감을 갖는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나 자신을 먼저 잘 아는 것에서 나온다.
오늘 만난 학생의 고민도 그렇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것은 좋은데 너무 다른 사람의 마음에만 집중이 되어있어서 자신의 마음은 잘 모르겠다고 한다. (심지어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도 상관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자신의 모습을 자신도 모르기 때문에 잘 말할 수 없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 때 긴장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말하고 나서 후회할까 봐 걱정이 앞서 말에 힘이 없고, 매력적이고 자연스러운 표정보다는 어색하고 혼란스러운 표정만 들켜서 호감도 살 수 없다.
가짜 자신감은 목소리가 크고 나를 포장하지만, 진정한 자신감은 솔직 담백하며 나를 아는 만큼 다른 사람도 공감해줄 수 있는 동그란 호흡의 소통형 사람이 된다.
면접? 그건 오히려 가장 쉬운 것인지도 모른다. '진짜 나'의 목소리로 '내가' 말을 한다면 사람들도 알아본다.
그게 쉽냐고..? 그래서 '나를 아는 기초공사'를 먼저 하라는 것이다. 이 기초공사를 잘해서 말로 설계를 잘 해놓으면 돌발적인 압박 질문도 무서워하지 않게 된다.
'내가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깊이가 깊고 글과 말로 정리가 잘 되어있는 사람, 더불어 언제나 더 알고 싶어하는 겸손을 갖춘 사람은 진정한 자신감을 가진자니까 말이다'
말의 기술만 배우는 것은 인스턴트 요리조리법을 배우는 것과 같다
<말 그릇, 김윤나> 중에서
기술로 배우는 말은 언젠가는 다시 갈라지게 마련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진정성에 대한 문제가 분리를 일으켜 '요상한 말'의 소유자가 될 수도 있다.
말 기술도 진정한 내게 맞게 체화되는 시간이 필요하다. 일정한 시간의 훈련을 겸하면 좋다. 그것이 오히려 시간을 버는 것이다.
나는 힘과 자신감을 찾아 항상 바깥으로 눈을 돌렸지만 자신감은 내면에서 나온다. 자신감은 항상 그곳에 있다.
<안나 프로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