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락이 닿지 않는 이들에게 미안함이 든다면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중

by 따뜻한 스피커

어제 문득 '뜨거운 미안함'이 올라온 순간이 있었다.

내면을 정직하게 마주하고 있는 성찰의 중년이 던지는 신호일 수도 있고

스스로 선택한 하얀 고독의 시간의 이삭 줍기 일 수도 있다.


미안한 대상이 이미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연이어 떠올랐다.

연락이 끊긴 이들에게 전하지 못한 마음은 에너지를 갉아먹을 수 있다. 수소문해야 하나.

아니다.

(연락처가 폰에 남아 있다고 해도 뜬금없는 사과는 기억도 못하는 상대를 당황하게 하고

그것은 나만 편한(아니 결국은 불편해지는)

또 다른 미안함이 될 수 있다. 시기성이 좋다면 기회를 잡아 진심으로 사과하라

나에게 뜨거운 미안함을 가진자도 그렇게 하길)


특히 기억하자 이런 마음이 든다면 자책으로 이어갈 것이 아니다.

우선 과거의 미숙함을 깨닫는 것은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보다 더 넓고 깊은 사람이 되었다는 반증이라는 것을 알아주자.

20~30대의 성숙이 '능력을 증명하는 것'이었다면, 중년의 성숙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는 용기'이다.(물론 세대와 상관없을수도)

미안함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마음의 굳은살이 빠지고 다시 유연해졌다는 뜻이며, 이것이 진짜 어른의 품격일 것이다. 부드러운 단단함은 이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

누군가에게 미안함을 느끼는 것은 그 관계를 내 안에서 화해시키고 떠나보내는 과정이다.

타인보다, 미숙했던 과거의 나를 먼저 용서하고 안아주는 것이 가장 큰 용서다.

완벽하지 않았던 삶을 비난하기보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지"라고 자신을 다독여주는 것이 나이를 잘 누리는 비결이다.


그래도 이미 연락이 닿지 않는 이들에게 미안함이 든다면, 그 에너지를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로 되돌려주자.

과거의 인연에게 미안함이 남은 이유는 '그때 더 잘할 걸' '그 말을 하지 말걸' 하는 아쉬움 때문일 것이다.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게 소홀히 한다면, 시간이 흐른 뒤 똑 같은 후회와 미안함이 반복된다.

미안함을 전할 대상이 아직 곁에 있을 때 잘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다.


"미안함은 과거에 살고, 다정함은 현재에 산다."


프로이트가 말한 방어기제 중에 '승화'라는 것이 있다. 죄책감이나 후회 같은 부정적 에너지를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행동(친절, 예술)으로 바꾸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인간이 가진 성숙한 심리 기제 중 하나로 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