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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같은 여자 산 같은 남자

우리 산처럼 사랑할수있을까

by 따뜻한 스피커
"그냥 헤어지죠!동물도 감정이 있는데 뭐가 다 괜찮대!!당신같은 사람 질리고 한심해요!!"




심리적으로 무척 불안정했던 25살의 나는 그에게 어떻게 하면 더 세게 말할까를 늘 고민했었다.

"이래도 안 떠나? 네 사랑이 그 정도는 아니지 않니?라는 독기를 가득 품고 있던 나의 센 말들은

그의 꿈쩍 않는 산 같은 사랑 앞에 매번 별 힘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나도 틈만 나면 계속 나의 '포기 의사'를 강하게 어필했다.


"나 지금 누구랑 말하는 거죠? 부모님이 그만큼 싫어하시면 우리가 헤어지는 게 맞죠."


진작 결혼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우리에게

그 남자 부모님의 연애 반대, 결혼 결사반대가 완강히 이어졌다.

반대 이유는 대충 추려보면 세 가지다.


첫째 남자 집의 종교는,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천주교다. 아들에게 '사제(신부님)'가 되는 것을 강력히 권하고 그 아들도 진지하게 그것을 고려해봤을 정도로 종교심이 깊은 가문이었다. 하나 더 사족을 붙이자면 남자의 고모는

우리나라 천주교계에서 알 사람은 다 안다는

수도회의 원장수녀님이었는데,

그분은 17년간이나 로마 교황청에서 교황과 함께 사역을 한 엄청난 이력을 가진 분이었다. 고모는 당연히 이 가문의 자랑이었다.

그런데 아들이 사귄다는 여자는 두둥!

교회를 다녔다. 이게 반대 이유라고?

그랬다! 같은 신을 믿는 것 같지만 서로를 인정하지 않는 길고 긴 세계사적 집안싸움 가운데 우리는 엄연한 피해자로 등극했다. 당시 나는 그다지 독실한 신자도 아니었는데 무조건 교회 다니는 여자는 안된다고 하셨다.


둘째 나의 직업이 맘에 안 드셨다. 방송국에서 방송일이나 하는 여자는 장남며느리감이 아니라는 것이 이유였다. 아니 무슨 이런 묻지 마 편견인가. 내가 무슨 유명 연예인도 아니고 일개 지방 방송국의 직원일 뿐데 그것이 결격사유라니 기가막혔다.


그리고 세 번째 이유는 이것이 아마 가장 유력했던 이유일 수 있는데, 내가 가난한 집 맏딸이라는 것이다. 어린 시절에는 나름 돈 걱정 없이 부유하게 살았건만 나의 청소년 시기부터 시작된 아빠의 사업이 이번에 세 번째로 망한 상태였다.


'우리 이혼했어요'라는 프로그램을 종종 넷플릭스로 본다. 시청률이 높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아 나만 공감되는 것은 아니었구나 했다. '고기와 깻잎(닉네임)'이라는 이혼 커플에 감정이입이 되어서 눈물을 줄줄 흘렸다.

서로의 사랑이 식은 것도 아닌데 시아버지의 며느리에 대한 미움과 편견이 이혼의 결정적인 이유로 비추어졌을 때 감정이 북받쳤다.

젊고 예쁜 커플이 너무 애초롭고 안쓰러워 눈물이 났다. 그 시아버지의 얼굴에 나의 시어머니의 얼굴이 겹쳐져서 더욱 그랬다.


하아 그들은 안타깝게도 헤어졌고

우리부부는 결혼해서 잘 살고 있다.

무엇이 다른 결과를 가져왔을까? 달랐던 것은 무엇일까? 우리는 그 고비를 어떻게 넘기고 이혼하지 않고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일까?


툭하면 바람처럼 사라지고 싶다고 한숨을 내뱉듯 말하는 여자를, 항상 그 자리에 굳건히 서서 요동없는 사랑을 보여주며 안아준 한 남자의 산 같은 사랑 때문이었다라는것이 일단 나의 결론이다.

둘다 현실을 피해 도망갈수도 있는데 산같은 그 남자. 지금의 나의 남편은 그러지않았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앞으로 더 풀어놓기로 한다.)



부모님은 우리를 헤어지게 하기위해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셨지만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그렇듯 반대가 거셀수록 우리의 애틋함과 사랑은 더 깊어져만 갔고 우리는 헤어지지 않았다.

부산 서울을 오고 가며 그 어렵다는 장거리 연애, 나중엔 중국한국간의 국제연애까지 해다.

늘 바람과 같이 마음을 잡지못하던 나도 어느새, 한결같이 그자리에 서있는 산같은 그의 사랑을 천천히 온유하게 닮아갔다.


그렇게 바람 같은 여자 산 같은 남자는 결국 부모님의 허락을 얻어 결혼을 했다.

그 뒤에도 시댁은 며느리인 내가 못마땅하셔서 종종 억지를 부리셨지만 남편은 나의 철방패가 되어주었다.

어설프게 편을 들어 욕을 얻어 먹는 정도의 수준이 아니고 아예 부정적인 말을 꺼내지도 못하도록 확실히 선을 그었다. 너무도 지혜롭게.

올해 시아버님까지 돌아가셔서 이제 이 세상에 아무도 계시지 않지만 시부모님은 우리부부가 변함없이 의좋게 사는것을 사시는 동안에 오래도록 기뻐하셨고 대견하다고 하셨다.




외로움이 병이고 도망이 특기였던 바람같은 여자와

든든하게 우뚝서서 힘껏 배경이 되어주던 산같은 사랑을 가진 남자의 결혼스토리다. 물론 엄청 요약본이라는 사실.


계절이 바뀌면 그렇듯 풍경은 달라졌지만

산은 변한것이 없다.

바람같던 여자는 늘 산속에서 새 바람을 일으키며 재미게 산다.


혹시 반대하는 결혼..겪고 계시나요? 서로의 산같은 사랑으로 이겨내시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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