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의 단상5. 힘겨운 삶의 모습이 눈에 담긴다

의식의 흐름으로, 뮤지컬 <빨래>를 떠올리며

by 해돌

오늘 산책길에 보았던 정경과 단상입니다.




1. 닭강정 가게의 폐업 - 한 삶의 희노애락이 여기서 스러지다.


집 근처 버스정류장 옆에 있던 닭강정 가게가 어느새 문을 닫았습니다.

폐업한 가게들이 그렇듯, 내부 인테리어를 뜯어내서 앙상한 구조물만 남아 있었습니다.


그 황량한 모습을 보며, 왠지 서글펐습니다.

유리창 위로, 이 가게를 꾸려나갔을 점장의 희노애락이 쓸쓸하게 스쳐갔습니다.

몇 천만원의 밑천을 소중히 모아 가게를 차리고, 지인들에게 개업 화환도 받고,

그 곳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나름대로 열심히 일하고, 일이 많을 때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알바생도 뽑고,

그러다 나태해져서 가게에서 스마트폰을 보며 빈둥거리기도 하고,

닭강정이 너무 딱딱하다거나 식었다는 손님과 싸우고...


그 모든 삶의 장면들이 녹진하게 묻어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습니다.


경영학도인 저는, 전에는 이렇게 폐업한 가게를 보면 영업 전략의 부재 혹은 실패, 경기 침체와 소상공인의 고통, 성공하는 가게의 차별성 등을 떠올렸던 것 같습니다.

어찌 그렇게 냉혹했을까요.

제 일이 아니라고 치부했던 탓일까요.




2. 신발 노점 할머니 - 추위와 싸우던 초라한 노구


위 닭강정 가게 바로 옆에는, 못보던 신발 노점이 하나 늘어서 있었습니다.

시골 5일장에서 볼 법한 털고무신, 중국산 운동화, 등산화 등이 잡다하게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충격적인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 노점을 지키는 할머니!

할머니는 어디선가 이사용 박스를 주워와서 그걸로 본인을 둘러싸는 구조물을 마치 성처럼 만들었습니다.

그 초라한 성 속에서, 자그마한 체구의 할머니가 의자에 앉아서 빼꼼히 얼굴만 내놓고 행인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바람을 조금이라도 피하기 위한 용도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상당히 바람 끝이 매서웠는데, 그런 조잡한 박스로 추위가 제대로 막아질리 없었을 겁니다.

어쩌면, 그 겨울바람 속에서 몇 시간을 버티고 앉아있는 것 자체가 할머니의 생명력(노동력이 아닌 생명 그 자체!)을 갈아넣는 게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하지만 시장성이 없는 신발은 사람들의 이목을 전혀 끌지 못했고, 상자의 성 속에 갇힌 할머니는 그저 한기를 버티고 있을 따름이었습니다.


할머니도 절박하셨을 겁니다.

신발을 떼오는 데 몇 백만원, 거기에 아들이 보태준 돈 얼마가 들어갔고, 이번 달 생활비는 얼마이니 하루에 신발을 적어도 다섯 켤레는 팔아야겠다, 이런 나름의 계산이 있었을 겁니다.


이 모습을 두고, 머리가 나쁘니 몸이 고생이라고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요.

시장의 트렌드를 읽지 못하고 무작정 장사에 뛰어드니 실패가 눈에 선하다고 넘길 수 있을까요.

어느덧 할머니가 돌아가실 때, 그 분께 이 날의 추위와 인내는 어떻게 기억될까요.




저는 뮤지컬 <빨래>를 참 좋아합니다.

몽골에서 온 솔롱고, 강원도에서 온 나영이 옥탑방에서 서로를 만나 교감을 나누는 내용입니다.

지방에서 학업을 위해 처음 상경한 저는, 대학시절 원룸을 전전하며 서울이 참 냉혹하다고 느꼈습니다.

조그마한 방에 50, 6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월세를 지불하기 위해 과외로 돈을 벌고, 교통비든 식비든 조금이라도 아껴보려 애썼습니다.

삶이 참 팍팍했던 그 때, <빨래>의 인물들은 모두 내 얘기 같고 가슴에 절절히 와닿았습니다.


그러나 몇 해 전, 어느덧 회사원이 되어 다시 본 <빨래>는, 이전만큼의 뭉클함이나 감동이 없었습니다.

내가 하나하나 다 기억하고 좋아하던 노래들마저, 마음이 아닌 머리로 흥얼거리는 듯 했습니다.

더 이상 <빨래>는 제 공감의 영역이 아니었고, 저를 치유하는 공연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어려운 시기가 오니, 어려운 사람들이 눈에 보입니다.

그 삶의 현장이 한 순간 한 순간 너무도 쉽지 않고, 누가 대신 싸워줄 수도 없어 힘겹습니다.

나는 다시 예전처럼 아픔에 공명하게 된 걸까요.

하루를 살아낸다는 것 자체에, 사람마다 다를 그 무게에 겸허해집니다.


<빨래> 속 노래 한 구절로 글을 마칩니다.


"누가 안쓰러운 우리 삶을, 위로해주나요. 누가 서글픈 우리 삶을, 위로해주나요." - <비오는 날이면>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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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처: 민중의 소리 2016. 4. 7. "[리뷰] 얼룩같은 어제를 털어내고 오늘을 살게 하는 힘, 뮤지컬 '빨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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