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의 단상4. 나는 나만 이기면 돼

by 해돌

1.

어제는 백수가 되고서 첫 대외활동(?)을 하였습니다.

장모님 생신 축하 파티!

장모님, 장인어른, 아내와 함께 안국역 근처에서 오붓하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지척에는 헌법재판소를 둘러싼 시위 군중이 몰려 있었는데, 다행히 식당까지 소음이 들리지는 않았습니다.)


걱정하실까봐, 처가 어른들께 차마 퇴사했다는 말씀을 드리지 못했습니다.

차차 자리를 잡고 나면 말씀 드릴 기회가 있으리라 생각하면서,

스스로에게 "3개월"이라는 시간을 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2.

왜 하필 3개월인가, 하면 똑부러진 답은 없습니다.

다만 1개월은 너무 짧고 6개월은 너무 길다 싶었습니다.

3개월 후의, 6개월 후의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일단 대강 그려본 구상은 이렇습니다.

-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걸 내 힘으로 직접 해본다는 계획(예: 소소한 상담)

- 가진 자산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가용한 목돈으로 재테크를 하기(장기적인 관점에서)

- 정갈한 사무실을 얻기! (이 곳을 베이스캠프로 삼아, )

- "매일" 운동하기 (특히, 작년부터 다시 시작한 달리기 + (감옥에 갇혀도 실천할 수 있는) 맨몸운동 서킷)

-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하루 루틴 꾸준히 실천하기(아침 명상+차, 매일 1편씩 글쓰기, 발성/표정 연습 포함)


이 구상의 컨셉은, 당장은 벌이가 작더라도 자급자족한다, 더 나은(내가 좋아하는) 나로 자신을 탈바꿈한다, 입니다.


3.

외벌이가 된 아내를 고생시키고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냥 조급해하는 것은 매우 경계합니다.

이기적으로 보일지라도, 나는 내 행복과 성공을 최우선으로 추구해야 합니다.

그게 나를 존중하여 기꺼이 지지를 보내준 아내에게 보답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회사를 중심으로 굴러가는 사회, 소비와 소속으로 신분을 증명하는 세상에서

때로는 당장의 모습에 쪼그라들어 전전긍긍할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건 내 마음의 문제이지, 결코 아내의 탓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마치 아내를 위해 힘내보겠다는 핑계로 자신을 몰아부치며 힘들어 한다면, 그건 모순이 아닐까 합니다.


퇴사를 해도 살 만하구나,

회사에 있을 때보다 더 성공하는 길이 있구나,

그렇게 희망을 주고, 행복을 증진하고 나누어 주는 남편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4.

오늘은 사무실에 들러 짐을 챙겨 왔습니다.

퇴사를 마음먹고 틈틈이 미리 치워둔 덕분에, 짐 정리는 금방 끝낼 수 있었습니다.

지나온 시간이 얼마였든, 뒤처리는 순식간입니다.

참으로 간결한 이별이었습니다.


5.

아내랑 연애시절 좋아했던 카페에 데이트를 갔습니다.

평소라면 별다른 의식 없이 이것저것 잔뜩 주문했을 텐데, 오늘은 꼭 먹고 싶은 메뉴만 골랐습니다.

씀씀이를 줄이자는 절박함도 있었지만,

풍족한(필요를 넘어선) 소비에서 만족을 느끼던 나를 떠나보내는 의미도 있었습니다.


6.

집에 돌아와서는 갑자기 피로가 몰려왔습니다.

순간 불안감이 엄습하여, 괜히 인터넷 검색을 하며 뇌를 마비시켰습니다.

사주 분석, 구직사이트, 동종업계 커뮤니티 등을 돌아다니다 보니 두 세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발전적인 대응은 아니지만, 그래도 자책은 하지 않습니다.


한 가지 소득이 있었다면, 제 사주(임술일주)에 관한(신기하게도 거의 들어맞아 보이는!) 글을 발견했습니다.

이 글을 읽으며, 말미에 "나는 나만 이기면 돼. 더 바랄 것 없이"라는 말에 다소 힘을 얻었습니다.

https://brunch.co.kr/@san-i/56


7.

로또에 당첨되어서 퇴사하였든, 암에 걸려서 퇴사하였든,

어떤 이유에서건 퇴사라는 사건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나는 물질적 여유가 있는 사람처럼 돈에 쫓기지 않으면서 일해보고(그렇게 시도하면서, 월급에 의존하지 않는 나만의 돈 버는 방식을 만들어내고),

아픈 사람처럼 나를 갸륵하게 돌보고 치유해 보려고 합니다.


8.

다음 번에는 제가 살아온 인생의 회고(!)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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