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의 단상3. "딱 월급만큼" 맞추어 사는 삶

by 해돌

취업을 하기 한참 전부터 회사 생활에 관하여 많이 들었던 조언들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 조직에 너무 헌신하지 마라, 헌신하면 헌신짝 된다.

- 회사는 직원의(너의) 인생을 책임져 주지 않는다.

-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재테크를 공부해서 자산을 모아라.

- 사회초년생 때는 절대 자동차는 사지 마라. (유지비가 많이 든다.)


어찌보면 누구나 할 수 있을 법한 너무 당연한 충고거나 혹은 일찍 깨달았다면 좋을 만한 격언이다.

나는 이런 얘기들이 가슴 깊이 와닿지는 못했지만, 주변에서 자꾸 듣다 보니 오랜 속담이나 상식처럼 생각했던 것 같다.


다만 특히 그 중에는, 내 아버지의 사례를 통해서 실제 목격하고 실감했던 것도 있다.

아버지는 회사에서 33년 동안 헌신했지만 결국 승진이 되지 않자 스스로 퇴직을 하셨다.

누구도 아버지를 쫓아내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조직에 남을 수 없겠다고 판단하신 것 같다.

본인보다 못하다는(못한 정도가 아니라, 능력으로나 인격으로나 형편 없다는) 사람이 승진을 하자, 이건 더는 견딜 수 없다고 마음 먹으신 것 같다.


아버지는 남부끄럽지 않게 묵묵하고 성실하게 일하신 것에 커다란 자부심을 가졌지만, 끝내 회사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았다고 좌절하셨다.

돌아보면 왜 그렇게까지 지나치게 열심히 일했는지 모르겠다며, "일에 너무 몰두하지 마라", "적당히 요령도 피우며 여유롭게 살아라", "능력이 100이면 70만큼만 일하고 30은 남겨두어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그것은 조직의 냉정한 생리를 알고서, 너무 자신을 소진하지 않아야 한다거나 조직을 영리하게 이용할 줄 알아야 했다는 취지의 울분과 회한이었다.


***


퇴사를 한 지금 나 자신을 돌아보면, 나는 어떤 면에서는 아버지의 충고를 그다지 잘 따르지 못한 것 같다.

너무 무리하지는 않으려고 했고 심신을 지키려고 했지만, 조금 여력이 남으면 일을 받아서 했고 내 딴에는 차질 없이 마치려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주어진 일 자체를 해내기 위해서는 여러 날 밤을 새워야 할 때도 있었다.

마냥 회사를 편하게 다니기에는 나는 너무 우직하고 뻔뻔하지 못하였다. (아버지를 닮아서일까?)

내가 만약 아버지의 충고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흡수하였다면, 그 절절한 심정을 진심으로 이해하였다면 적어도 나만큼은 다를 수 있었을까?


역설적이게도, 회사원 신분일 때 나는, 회사 생활이 아니라 내 자신의 인생을 아버지의 말씀대로 살고 있었다.

회사에서 모든 기운을 다 쏟아내고 와서는, 정작 나 자신에게는 헌신하지 않았던 것이다.

맡은 일을 처리했고 그 대가로 돈을 받는다! 그 소명을 다했다는 이유로, 나는 늘 후순위로 밀려났다.

더 나은 내가 되는 노력은 너무 귀찮고 비효율적으로 여겨졌다.

내가 살고 싶은 삶(그게 너무 이상적이든, 혹은 실제로 좋든 나쁘든)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 내팽겨쳤다.


예를 들면, 나는 회사 생활에 지장이 될 정도가 아니라면 내 몸을 가꾸고 건강을 증진하는 데는 소홀했다.

딱 노동력을 제공하기에 무리가 없는 수준으로 체력을 유지할 뿐, 그 이상 내 잠재력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더 나이 들고 기력이 빠지기 전에 한 단계 도약하는 나를 마주하고 싶었지만, 그건 아무런 실천도 없는 공허한 망상에 불과했다.


다른 예로, 나는 문학 작품을 좋아하는데, 책을 읽고나면 등장인물의 관계도를 체계적으로 그려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게 내 업무와 무슨 상관이 있나, 업무능력을 키우는 데 무슨 도움이 되나 의구심이 들어서 한 번도 실행해 본 적이 없다.


또는, 언젠가부터 낯선 사람을 마주할 때,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인사를 건네거나 살가운 대화를 하지 않았다.

일로 엮이지 않았다면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회사 일로 피곤한데, 더 이상 바깥에서 대인관계를 위한 노력을 할 동기가 없었다.

그런다고 월급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


바로 그거다. "그런다고 월급이 나오는 것도 아닌데!"

나는 이상하게도, 내 인생 자체를 월급만큼의 규모와 형태로 맞추고 있었다.

오로지 월급을 벌기 위한 목적에 맞게 삶을 최적화하고,

업무와 연계되지 않은 일들은 결국은 무의미한 낭비로 치부했다.


아마 직장에서의 일이 고되거나 한가롭거나 나는 똑같았을 것 같다.

고되면 고된 만큼 고통스러워서,

한가로우면 한가로운 대로 그걸 견뎌내느라(혹은 뒤처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용쓰다가)

그냥 딱 직장 생활에 맞춰서 내 삶도 그럭저럭 흘려보내고 말았을 것이다.


***


은퇴를 하고나면 갑자기 폭삭 늙어버리는 시니어들에 관해서 들어본 적이 있다.

나는 그 사례가, 활발하게 일하고 사람들과 교류하다가 그것이 끊어지니 고립되기 때문이라고만 생각되지 않는다.

그 사람들은 회사가 곧 내 삶 자체가 되어 버린 게 아닐까.

회사 생활에 꼭 맞는 정도로 평생을 살다보니, 더 이상 회사와 상관 없는 자기 본연의 잠재성을 발견하거나 성찰하기 어려워진 것이다.


회사 생활의 관성에서 벗어나고 나면,

빙빙 돌던 원통에서 갑자기 튕겨져 나와 어지러움에 멍해진 아이처럼,

마치 갈 곳 없이 버려진 개처럼,

발목이 잘린 채로 쫓겨난 퇴역 군인처럼 되고 마는 게 아닐까.


철저히 회사에 있을 때에만 쓸모가 있도록 만들어진 삶은, 그 이면에 내재된 공허함을 보면 참 무섭다.

조직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할수록, 더 잘하려고 애쓸수록 더더욱 그렇게 만들어질 위험이 있는 듯 하다.

퇴사만이 답은 아니겠지만, 조직과 업무에서 조금은 비켜서서 나를 관조하는 여지는 꼭 필요할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퇴사의 단상2. 응애, 다시 1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