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의 단상2. 응애, 다시 1살입니다.

by 해돌

퇴사 후 1일차 아침이 밝았습니다.

이 달까지 재직하긴 하지만, 오늘부터 휴가를 쓰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 오늘이 퇴사 후 1일차인 셈입니다.




어제는 하루종일 한 분 한 분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인사를 돌면서 고맙고 먹먹한 마음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계속 똑같은 말을 반복하는 게 지치기도 했습니다.

혹시나 표정이 어둡지는 않았을지, 말 실수는 하지 않았는지 잠깐 곱씹어 보았습니다.

혹여 의도치 않게 부족한 점이 있었더라도, 나로서는 최선을 다해 끝인사를 하였으므로 더 이상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덕담을 건네고 응원하는 많은 사람들 덕분에 찡하고 훈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몇몇 냉소와 무관심을 보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렇게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나를 사랑해 줄 의무는 없으니 말입니다.

(아직 무례함을 재치있게 응수하는 경지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이 그냥 흘려보내는 방법도 내가 타격을 받지 않는 현명한 대처가 되는 것 같습니다.)




어제 저녁 식사에는 친구들이, 귀가해서는 아내가 따뜻하게 다독여 주었습니다.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앞으로 다 잘할 수 있다고 기운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말도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고마웠습니다. 퇴사를 계기로 진심으로 교류하고 연대할 사람들이 남게 되는 것 같습니다.

친구들과 아내가 안겨준 꽃다발이 집 안을 화사하고 향긋하게 채우고 있습니다.

꽃병에 담긴 밝은 꽃들에 둘러쌓여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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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 소속되었을 때나 퇴사한 때나 분명히 나는 같은 사람인데

벌써부터 뭔가 변화의 태동이 있는 느낌입니다.


첫 번째 변화. "강제적, 비자발적 출근을 하지 않는다."

회사를 다닐 때에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힘들었습니다.

개운하고 활기찬 기분을 느낀 적이 별로 없었던 것 같고, 늦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몇 번이고 나를 다잡고 떠밀어 일어났습니다.


오늘은 저절로 눈이 떠졌는데, 어제 내가 할 일을 구체적으로 정해놓지 않았다는 생각에 오늘 계획을 세우자는 마음으로 몸을 일으켰습니다.


두 번째 변화. "내가 할 일을 계획한다"

원래 회사 일이 먼저고 내 일은 뒷전이었는데, 이제는 내 일을 우선으로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은 어떻게 보낼지 구상하고 앞으로의 삶을 설계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아무도 내가 할 일을 정해 주지 않으니, 스스로 찾아서 해야 합니다.


회사에서는 일로 바쁘거나 그냥 멍하니 있거나 어쨌든 시간이 가고, 그 보낸 시간을 대가로 돈을 받습니다.

시간과 돈의 등가교환.

하지만 회사 밖의 사람은 그런 대가가 없이 스스로를 윤택하게 할 기회를 찾아 나서야 하고, 자기 삶을 꾸려갈 중대한 의무가 있음을 실감합니다.




예전에 책에서 어떤 작가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40살부터인가 아예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살아야겠다고 마음 먹고, 그 날부터 태어난 첫 날로 쳤다고 합니다.


어제 아내는 저에게 케잌에 숫자 '1'의 촛불을 켜주면서, 이제 1살이라고 웃었습니다.

오늘부터 나도 새로 시작하는 1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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