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에는 아이디어가 다채롭게 샘솟습니다.
반짝이는 생각이 전깃불이 켜지듯 떠오른다기보다는, 실은 이미 무의식 어딘가에서 계속 생각해서 정리된 내용이 출력되는 듯한 느낌입니다.
포스트잇을 꺼내서 산발되는 생각들을 하나하나 낱장으로 글로 옮겨, 거실 빈 벽에 마음껏 붙입니다.
이 생각들이 하나씩 실현된다면 얼마나 재밌을까요? 벌써 그렇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되돌아보면, 삶의 모든 여정이 은연 중에 생각하는 그대로 흘러왔던 것 같습니다.
다른 인생을 살고 싶다면 무리한 계획이나 이상을 기준으로 자신을 닦달할 게 아니라, 그저 생각의 방향을 바꾸고, 그 방향에 힘을 실어주도록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부분을 여러 번 다듬어 나가면 된다고 믿습니다.
회사에서도 틈틈이 여유 시간이 생길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번뜩이는 생각을 떠올리고, 사념의 파편을 주워담아 옹골찬 아이디어로 바꾸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 아이디어가 모여서 나를 또 다른 나은 삶으로 이끌어줄 것을 준비하고 확신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 자투리 시간을 알차게 쓰기란 너~무도 어렵고 험난합니다.
무엇보다, 뭔가를 신선하게 생각할 상태도 아니고 여력도 없습니다.
당장 급한 일을 쳐냈던 것이지, 언제 급하기 다른 연락이 올지 알 수 없습니다.
늘 긴장된 상태로 있느라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이거나 머리가 딱딱하게 굳어있습니다.
꾹 참았던 소변을 보러 화장실이나 잘 다녀오면 다행입니다. (저는 일하는 중에는 계속 참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때에 가는 편이었습니다!)
또한, 회사의 녹을 받는 중에는 딴짓을 하기가 어렵고 망설여집니다.
죄책감, 책임감, 의무감 등이 한 눈을 팔지 않게끔 뇌를 가로막습니다.
뭔가를 몰래 하기에는 부족하고, 그렇다고 본격적으로 하기에는 눈치가 보입니다.
그 밖에도, 평소 생활의 관성으로 인해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고 맙니다.
결국 회사에서는 어쩌다 시간이 남아도, 그 시간을 주체적으로 쓸 수 없어 아깝게 흘려 보냅니다.
퇴근 후에도 명확한 목표나 꿈이 없다면 마찬가지로 축 늘어져 버립니다.
그동안 잃어버린 내 삶의 가능성!
제대로 피어보지 못한 채 사산된 내 소중한 생각들,
생각에만 머물러 무의식을 부유하다 소멸해버린 잔해들,
이것들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꼭 대단한 것이 아니었더라도, 스스로 나의 자존감을 지키고 미래를 그려갈 원동력을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실은, 저에게는 그게 가장 소중한 것임에도 말입니다!)
회사 생활은 안정적인 적응이 최적 전략이겠지만, 그 최적 전략을 실행하느라 몸이 무겁고 생각이 꽉막혀버린 제가 싫었습니다.
이렇게만 살다가 완전히 저를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제 시간을 선택했습니다.
연봉을 포기하고, 다시 오지 않을 저의 38세에 공백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이 공백을 채우는 실험과 모험이 저도 궁금합니다.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합니다.
잃어버린 나를, 방치했던 나를 구하는 시간입니다.
오래 축적된 토사와 잔해 속에 묻힌 유물을 조심스레 발굴하듯이,
창고 한 켠 상자 속에 꾸깃꾸깃 넣어둔 종이들을 꺼내어 하나씩 펴보듯이,
험한 정글 속 어딘가에서 길을 잃어 떨고 있는 아이를 구조하듯이,
나는 나를 찾으러, 나를 재건하러 가고 있습니다.
끝으로, 윤동주 시인의 아름다운 글귀로 제 심경을 갈음합니다.
***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