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의 단상6. 1억원을 주고 저의 38살을 샀습니다.

by 해돌

오늘 아침에는 아이디어가 다채롭게 샘솟습니다.

반짝이는 생각이 전깃불이 켜지듯 떠오른다기보다는, 실은 이미 무의식 어딘가에서 계속 생각해서 정리된 내용이 출력되는 듯한 느낌입니다.

포스트잇을 꺼내서 산발되는 생각들을 하나하나 낱장으로 글로 옮겨, 거실 빈 벽에 마음껏 붙입니다.


이 생각들이 하나씩 실현된다면 얼마나 재밌을까요? 벌써 그렇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되돌아보면, 삶의 모든 여정이 은연 중에 생각하는 그대로 흘러왔던 것 같습니다.

다른 인생을 살고 싶다면 무리한 계획이나 이상을 기준으로 자신을 닦달할 게 아니라, 그저 생각의 방향을 바꾸고, 그 방향에 힘을 실어주도록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부분을 여러 번 다듬어 나가면 된다고 믿습니다.




회사에서도 틈틈이 여유 시간이 생길 때가 있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번뜩이는 생각을 떠올리고, 사념의 파편을 주워담아 옹골찬 아이디어로 바꾸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 아이디어가 모여서 나를 또 다른 나은 삶으로 이끌어줄 것을 준비하고 확신하면서 말입니다.

하지만 그 자투리 시간을 알차게 쓰기란 너~무도 어렵고 험난합니다.


무엇보다, 뭔가를 신선하게 생각할 상태도 아니고 여력도 없습니다.

당장 급한 일을 쳐냈던 것이지, 언제 급하기 다른 연락이 올지 알 수 없습니다.

늘 긴장된 상태로 있느라 이미 기진맥진한 상태이거나 머리가 딱딱하게 굳어있습니다.

꾹 참았던 소변을 보러 화장실이나 잘 다녀오면 다행입니다. (저는 일하는 중에는 계속 참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는 때에 가는 편이었습니다!)


또한, 회사의 녹을 받는 중에는 딴짓을 하기가 어렵고 망설여집니다.

죄책감, 책임감, 의무감 등이 한 눈을 팔지 않게끔 뇌를 가로막습니다.

뭔가를 몰래 하기에는 부족하고, 그렇다고 본격적으로 하기에는 눈치가 보입니다.

그 밖에도, 평소 생활의 관성으로 인해 그저 시간을 흘려보내고 맙니다.


결국 회사에서는 어쩌다 시간이 남아도, 그 시간을 주체적으로 쓸 수 없어 아깝게 흘려 보냅니다.

퇴근 후에도 명확한 목표나 꿈이 없다면 마찬가지로 축 늘어져 버립니다.




그동안 잃어버린 내 삶의 가능성!

제대로 피어보지 못한 채 사산된 내 소중한 생각들,

생각에만 머물러 무의식을 부유하다 소멸해버린 잔해들,

이것들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꼭 대단한 것이 아니었더라도, 스스로 나의 자존감을 지키고 미래를 그려갈 원동력을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실은, 저에게는 그게 가장 소중한 것임에도 말입니다!)


회사 생활은 안정적인 적응이 최적 전략이겠지만, 그 최적 전략을 실행하느라 몸이 무겁고 생각이 꽉막혀버린 제가 싫었습니다.

이렇게만 살다가 완전히 저를 잃어버리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래서, 과감하게 제 시간을 선택했습니다.

연봉을 포기하고, 다시 오지 않을 저의 38세에 공백을 선사해 주었습니다.


이 공백을 채우는 실험과 모험이 저도 궁금합니다. 설렘과 두려움이 공존합니다.

잃어버린 나를, 방치했던 나를 구하는 시간입니다.

오래 축적된 토사와 잔해 속에 묻힌 유물을 조심스레 발굴하듯이,

창고 한 켠 상자 속에 꾸깃꾸깃 넣어둔 종이들을 꺼내어 하나씩 펴보듯이,

험한 정글 속 어딘가에서 길을 잃어 떨고 있는 아이를 구조하듯이,

나는 나를 찾으러, 나를 재건하러 가고 있습니다.




끝으로, 윤동주 시인의 아름다운 글귀로 제 심경을 갈음합니다.


***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윤동주, <쉽게 씌어진 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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