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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돌 Oct 28. 2024

에피소드3. 오피스빌런도 해고는 어렵습니다.

< 실제 사례를 각색하여 서술하였습니다. >


우리나라는 노동법의 규제 상 해고가 어렵다.

그래서 노동법이 근로자를 두텁게 보호하는 장치가 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 근로자가 커다란 잘못을 하지 않는 이상 업무능력이나 태도가 정말 좋지 못해도 쉽게 회사에서 내보낼 수 없는 제약으로 작동한다.


최근에는 "오피스빌런"이 화제다.

오피스(office)와 빌런(villain)의 합성어로, 회사의 골칫덩이라고나 할까.

나는 "오피스빌런"이라 하면, 본인이 문제 직원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책임을 전가하는 직원 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여러 직원들에게 직장 내 괴롭힘 가해행위를 해놓고서는, 도리어 본인이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고 신고를 제기하는 직원.

잘못된 행위를 응징하기 위해 징계하려고 하면, 본인이 제기한 직장 내 괴롭힘 신고 뒤로 숨어서 괴롭힘 신고자에 대한 불이익 처우를 하는 것이냐고 따지는 직원.

이런 직원이야말로, 회사의 직장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 회사와 직원간 근로관계의 신뢰파탄을 이유로 쉽게 해고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업팀장인 P팀장은 오랜 기간동안 부하 직원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흡혈귀 같은 존재였다.

P팀장은 팀원들에게 달성하기 힘든 목표를 하달하면서 어떻게든 목표를 달성하도록 다그쳤고, 그마저도 본인의 실적인양 은근슬쩍 가로채는 일가견이 있었다.

P팀장은 회사에서 지원되는 영업비용도 혼자서 독차지해서 사용하고, 팀원들에게는 나누어 주지 않았다.

(팀장도 팀원들과 마찬가지로 매년 적정한 영업실적을 달성해야 했고, 개인의 실적에 따라 급여와 포상이 달라지는 구조였다.)


그렇게 팀원들의 성과를 빼앗고 회사의 지원을 독식하면서도, P팀장의 영업실적은 영업사원들 중에서 중간에도 미치지 못하였다. (거의 일도 안하고, 그저 놀고 먹으며 회사를 다닌 거다.)

대리점들로부터도, P팀장은 대리점에 거의 와보지도 않고, 왔다가 잠깐 슥 둘러보고 가버릴 뿐이며 전혀 관리도 지원도 해주지 않는다는 항의가 빗발쳤다.

결국 회사가 경영위기로 어려워진 상황에서 희망퇴직 신청을 받을 때, 회사는 가장 직급과 연봉이 높으면서도(세후 연봉이 1억 원 중반대였다) 실적은 부직한 P팀장에게 희망퇴직을 권하였다.

그러나 P팀장은 희망퇴직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회사가 본인을 부당하게 내쫓는다면서 관할 노동청에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하였다.


그 와중에, 영업팀원들이 뜻을 모아서, 회사에 P팀장을 상대로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하였다.

오랜 기간 동안 쌓인 P팀장의 부당한 매출 요구와 실적 가로채기, 여기에 수반된 인격적인 모욕과 폭언이 모두 신고사실에 포함되었다.

회사의 조사 결과, P팀장의 행동은 더 이상 용납하기 어려운 수준이었고, 그 비위행위들을 모두 종합하여 결국 P팀장을 해고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P팀장이 본인에 대한 해고처분의 부당성을 다투는 분쟁에서, 해고처분은 부당하다고 판단되었다.

그 이유는 회사가 P팀장에게 권고사직을 한 이후에 일말의 명분을 들어 P팀장을 해고한 것은, 결국 P팀장을 회사에서 내보내기 위한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P팀장이 팀원들에게 한 잘못된 행동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P팀장이 먼저 직장 내 괴롭힘 신고를 한 상황에서 P팀장에 관한 조사와 징계를 가한 것은 불이익한 처우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회사에 비하여 상대적인 약자인 근로자를 보호하기 위한 노동법의 취지에 공감한다. 그와 같은 안전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사례와 같이, 팀장 권한을 이용해서 각종 전횡을 일삼던 "나쁜 팀장"인 P팀장을 해고하는 것은 정당한 조치가 아닐까 싶다. 이 사례는 본질적으로 회사 대 P팀장의 대립이 아니라, 팀원들과 P팀장 사이의 갈등이었다.

P팀장에 대한 조사 및 해고가 P팀장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이후에 이루어진 것은 맞지만, 그 원인이 된 P팀장의 비위행위는 P팀장의 직장 내 괴롭힘 신고 이전부터 존재하였다는 점이 충분히 고려되지 못한 것도 아쉽다.

노동법이 진정으로 선량한 근로자를 보호하는 안전망으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근로자를 보호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법이 "나쁜 근로자"의 전횡을 강화해주는 잘못된 유인이 되고, 나쁜 근로자에 피해를 당한 선량한 근로자들을 울리는 "나쁜 법"이 될까봐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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