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제 사례를 각색하여 서술하였습니다. >
E사원(30대 초반, 여성)은 20대 내내 인디밴드 보컬로 활동하였던 이력이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직후부터 꿈을 찾아 나섰던 길이었다.
철마다 머리를 빨주노초파남보 다채로운 색깔로 염색하고, 온몸 곳곳에 아기자기한 문신들도 그려넣고,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버스킹을 하는 자유로운 삶이었다.
하지만 그 시절 E사원은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다. 내심 불안정하고 불안했다.
밴드는 사사건건 싸움과 시비가 생길 때마다 갈라지고, 멤버가 이탈하고, 마음에는 상처가 생겼다.
수입도 변변치 않았고, 늘 춥고 배고픈 생활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직장생활을 한번도 못해본 채로 나이가 들어가는 게 초조했고, 취업을 한 또래들이 마냥 부러울 때도 많았다.
그러던 E사원에게 좋은 기회가 왔다.
고등학교 동창이었던 F사원에게 온 연락.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운 대화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던 중, F사원이 다니는 회사에 공석이 나서 채용을 수소문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였다.
공장에서 하는 일이라서 업무강도도 쎄고 급여도 많은 편은 아니지만, 학력에 무관하게 입사해서 차근차근 일을 배우면 되고, 전문기술을 배울 수 있어서 커리어에도 도움이 된다는 말에 E사원은 고무되었다.
무엇보다도, 회사에 E사원의 또래 여직원들이 많이 근무하고 있어서 분위기가 좋고, 사원급 직원들이 많아서 함께 친구처럼 지낼 수 있다는 것도 마음에 들었다.
F사원은 말이 나온 김에 한번 지원해 보라고 E사원을 격려해 주었고, E사원은 용기를 내어 회사에 입사원서를 보냈다.
그렇게 E사원은 인드밴드 보컬 E에서, "E사원"이 되었다.
E사원의 회사생활은 나쁘지 않았다.
처음 보는 어려운 용어와 격무에 힘들었지만, 나도 드디어 회사원이 되어서 사원증을 목에 걸고,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어울려 따뜻한 밥을 먹는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적지만 고정적인 수입을 얻으니 저축하며 미래를 설계하고, 회사에서 일도 배울 수 있고 차차 승진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설레기도 했다.
남들은 듣기 귀찮아 하는 회사의 의무교육 시간마저도, 그 시간을 통해 뭔가를 배울 수 있어서 정말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F사원의 말처럼, E사원에게는 든든한 친구들도 새로 생겼다.
E사원과 같은 부서의 여직원들은 총 4명이었다.
30대 초반의 늦은 나이에 입사한 터라 E사원이 가장 나이가 많았지만, 바로 옆부서에는 E사원의 친구인 F사원도 있었고, 어쨌든 모두 다 젊은 세대였다.
E사원은 자기보다 어린 3명의 여직원들과 금방 친해질 수 있었고, 이들은 매일 같이 몰려다니며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수다 떨며 깔깔깔 웃었다.
마치 학창시절을 보내듯이 흘러가는 직장생활이었다.
그러다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평화로운 수면 위에 떨어진 물방울로 커다란 파장이 일어나는 것처럼.
E사원은 워낙에 건강관리에 소홀했던 탓에, 본래 여기저기 아픈 곳이 많았다.
감기도 자주 걸리고, 한번 다치면 상처가 쉽사리 낫지도 않았다.
그래서 E사원은 아프다는 이유로 자주 병가를 내고 집에서 쉬었다.
처음 한두 번은 괜찮았다. 법으로 보장된 연차휴가가 있었고, 연차휴가를 다 쓰고 나서도 회사에서도 양해해주었다.
4인방 멤버들인 동료 여직원들도 걱정하지 말라며, E사원의 부재로 인한 업무부담을 묵묵히 책임져 주었다.
따뜻한 배려에 익숙해져, 너무 안일했던 탓일까.
예전의 자유로운 생활과는 다른, 월화수목금 나인투식스 출퇴근이 반복되는 회사생활이 너무 갑갑했던 탓일까.
E사원은 점차 회사에 나오지 않는 날들이 많았다. 입사 초기의 뿌듯함과 감사함은 사라진 것처럼, 회사에 나오는 날에도 번번이 지각을 하고, 아프지 않은 날에도 거짓말로 사유를 꾸며 조퇴를 일삼았다.
그렇게 해도 괜찮다는 걸 알자, E사원의 행적은 더더욱 뻔뻔해졌다.
어느 날도 그렇게 아프다고 쉬면서, 남자친구와 자취방에서 고양이를 만지면서 뒹굴거리던 참이었다.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지 않은 SNS계정에 놀고 있는 사진을 찍어 올렸다.
다음 날 회사에 나가보니, 4인방 동료들의 표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싸늘해진 그들은, 평소와는 달리 E사원의 인사도 받는 둥 마는 둥 하고, 점심도 커피도 약속이 있다며 자리를 피했다.
E사원은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로 동생들이 뭔가 서운해서 그러나 보다, 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동료들이 며칠동안 똑같은 반응을 보이자, 더는 못 참고 공장 정문 앞에서 한참을 기다리다가 퇴근하는 동료들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내가 뭘 잘못해서 그러냐, 우리 이러지 말고 말로 풀자. E사원의 말은 허공에 흩어졌다.
동료들은 불편한 눈짓을 주고받다가, 아무런 대꾸없이 뿔뿔이 흩어져 각자 갈 길로 가버렸다.
여기까지가 직장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다는 E사원의 이야기다.
동료들은, E사원의 SNS계정을 보게 된 다음부터는 너무 큰 배신감을 받았다고 했다. 비단 그 자취방 피드 뿐만 아니라, 아프다고 쉬었던 날들에 멀쩡히 놀러다닌 흔적들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그동안 E사원이 없어도 그 업무를 함께 다 나눠서 처리해줬는데, E사원은 아무런 책임감도 죄책감도 없이 편하게 놀고 있었다는 게 너무도 화가 났다고 했다.
동료들은 자기들도 아플 때가 있었는데, E사원의 부재로 인해 쉴 수도 없었다고 한다. 누구든 아플 수 있는데, E사원만 과하게 배려를 받고 그게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려 납득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E사원과 더 이상 전처럼 친근하게 어울릴 수 없었을 뿐, 따돌린 것은 아니라고 했다.
그 누구도 E사원을 따돌리자고 한 적이 없고, 각자가 E사원이 싫거나 상대하고 싶지 않을 뿐이라고 했다.
그동안 참고 있던 E사원에 대한 불만들도 터져나왔다. 혼자만 담배를 피우면서 흡연장에 데리고 가서 싫었다, 너무 노골적이고 선정적인 농담 때문에 불편했다는 등 E사원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원망스러운 사람을 피하는 것도 따돌림이 될까.
원망스럽게 한 원인을 제공한 사람도, 그를 피하는 사람에 의해 상처를 받았다는 이유로 피해자가 될까.
세련된 방법으로 거리를 두는 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다른 사람이 받는 배려가 부당하다고 지적하는 것은, 공평한 대우를 요구하는 것은 어떤 방식이 적절할까.
결국에 E사원은 따돌림을 당했다는 사실을 인정받지는 못했지만, 이번 일로 몸 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아프게 되었다는 호소를 하였고, 회사의 배려를 받아 지방 공장에서 업무강도가 훨씬 낮은(직원들이 선망하는) 수도권의 사무직으로 배치되었다.
서로 불편한 직원들끼리 마주치지 않도록 한 분리조치라고 하나, 여기에 동료들이 충분히 납득했을지는 의문이 든다.
E사원의 미안해, 죄송합니다, 반성합니다, 라는 말이 없어서 참 아쉽다.
회사의 따스한 배려 속에, 엄격한 원칙과 필터링이 없어서 또 아쉽다.
이 곳에서 아픈 사람을 챙겨주고 믿어주는 상부상조의 배려는 이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영화 부당거래였나, 호의가 계속되니 권리인줄 안다는 말이 떠오른다.
그와 비슷하게, 호이(호의)가 계속되니 둘리(빌런)가 되어버린 것 같다.
받을 때 고마운 줄 알고, 주는 게 영원하지 않을 걸 알았으면 좋았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