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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크리스마스

 

  간만에 강릉 경포대를 찾았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바로 눈앞에 펼쳐지는 눈과 마음이  온통 시원해지는 탁 트인 바다! 바다! 바다!  

마음이 마음껏 뛰논다.

그 멋진 바다를 곁으로 두고 데크로 쭉 이어진 길을 걷는다. 왕복 만보정도 되는 거리여서 걷기에 아주 좋다.

걷다보니 드라마 촬영지 포토존이 나타난다. 

 '함부로 애틋하게'란 드라마라고 한다. 본적이 없는 드라마이지만 청춘남녀가 손을 잡고 마주보고 있는 사진으로 보아 청춘남녀의 사랑이야기임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청춘남녀의 사랑이야기보다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없나보다. 거의 모든 드라마는 청춘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그러다 문득 얼마전에 본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가 떠올랐다. 넷플릭스에서 볼만한 영화가 없나 뒤적이다 발견한 영화였다. 한참 지난 영화이지만 많이 회자되는 영화라 궁금증이 발생해 보았다. 일상가운데 자연스럽게 죽음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담담하게 죽음이 처리되었다. 전혀 야단스럽지 않게. 영화는 죽음도 삶과 같은 결로 간주하고 있는 듯 했다. 그 가운데 역시 청춘남녀의 사랑이 소박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아직은 서로가 호감의 단계이지만 충분히 깊어질 수 있는 사랑인데 남자주인공의 죽음으로 완성되지 못한 미완성의 사랑! 그래서 더 애틋하게 여겨지는 그런 사랑이 역시 담담하게 펼쳐졌다.

 

   사랑이 이제 막 싹틀려고 하는데 죽음으로 막을 내려야만 했던 사랑 그 비슷한 것! 아,그래... 그 유사한 경험이 내게도 있었지....

 

   아주 오래전 막 대학에 입학하여 개나리가 미친듯이 피고 캠퍼스가 초록으로 물들기 시작할 즈음 기숙사에 면회온 이가 있었다. 혼자 오기 쑥쓰러웠는지 자신의 큰누나를 앞세워 찾아왔다. 재수하여 나와 고등학교 동급생 친구가 된 00의 연년생 남동생이었다. 그 해 그의 큰 누나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지만  나의 베프인 그의 작은 누나는 고향인 부산에 있는 대학에 입학을 했다. 한편 그는 서울의 명문대에 갓 입학한 새내기였고 나역시도 서울로 올라와서 신촌에 있는 여자대학교에 입학한 새내기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봄날 그가 자신의 큰누나를 앞세워 나를 찾아온 것이다. 베프인 친구의 연년생 동생이지만  친구집에 놀러가면 가끔 얼굴정도, 그것도 스쳐지나가며 볼 뿐 말도 한번 섞어보지 않은 서먹서먹한 사이였다. 그러니 만큼 그의 면회가 친구동생에 대한 관심이상도 이하도 없던 나에게는 약간 뜻밖이었고 살짝 당황스러웠다


  때마침 나를 면회온 다른 사람이 있어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나는 별다른 망설임없이 다른 사람을 선택했고 그쪽에는 면회가 어렵다고 얘기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용감했다 싶다. 쉽게 그 말을 했으니까. 아주 큰 마음먹고 왔을텐데 그가 상처받을 수 있다는 것은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입장을 헤이릴 만큼  철이 들지 않았다고 해야할까.

  

  그렇게 그를 돌려세우고 난 뒤 얼마 되지않아서 대학가에 휴교령이 내려졌다. 70년대 중반에 대학을 다닌 나는 대학에서의 찬란한 첫오월을 휴강으로 보내야만 했다. 그리고 기숙사도 페쇄해서 어쩔 수 없이 고향인 부산으로 내려가야 했다. 부산에서 재회한 베프인 그 친구는 담담하게 내동생이 면회갔다며?...하는 걸로 면회건을 마무리 하였다.

  

  휴교령으로 인해 나보다 먼저 집으로 내려온 그는 내가 친구집에 놀러가면 짐짓 관심이 없는 듯 행동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내려온지 얼마 되지 않아 부득부득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우겨서 서울로 올라갔다.

그런데 그러다 얼마지나지 않아서 몸이 아프다고 하며 부산으로 다시 내려왔다. 그리고 여름내 심하게 앓았다. 친구집에 갔을 때 오랫만에 나를 본 친구 어머니가 "00! 이뻐졌구나" 하니 그는 병상에 누워서 "본래 이뻤는데...머..."해서 나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2학기가 개강하면서 나는 서울로 올라오고 그는 병이 깊어져서 그대로 부산에 남았다. 대학 일학년!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오라는데 많고 갈데도 많고 할일도 많다. 나는 그를 온전히 잊어버리고 지냈다. 간간히 친구로부터  치료를 위해 여기저기 명의를 찾아다닌다는 소식을 들으면서...사실 기억할 만한 것도 없긴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에게서 편지가 왔다. "내 동생은 하늘나라로 갔다"는 것이다.

 

   아! 한 것도 잠깐,  얼마간의 아쉬움과 친구가 느낄 상실감을 잠시 생각하고는 그러나 그냥 그대로 흘러보냈다. 그리고 그 일은 나의 심리적 환경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지금 글을 쓰면서 오히려 강한 감정을 느낀다. 나이가 들어서일까?  그당시 어쩌면 그렇게 무심할 수가 있었을까 싶다.  

 

   8월의 크리스마스 마지막 부분에 남자는 죽으면서 애틋함을 느낀 여자에게 편지를 남긴다. 그는 그녀에게 죽으면서 마음에 사랑을 품고 죽을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전한다. 미완성이긴 하지만 아마 그는 그 애틋한 사랑하나로 이세상에 와서 짧게 살다가는 것에 대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으리라!

  

  내 기억 속의 그는 8월의 크리스마스 주인공보다 훨씬 젊은 나이에 이 세상을 하직하였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스무살이 채 안된 청년이다. 당시 고등학생의 이성교제가 허용되지 않던 시기인지라 아마 그는 여학생을 사귄 경험이 전무했을 것이다. 딱 보아도 범생이로 보이는 그는 대학생이 되면 이성교제도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열심히 공부했을 것이다. 그리고 원하는 명문대에 입학도 하였다. 이제 마음껏 청춘을 구가하면 된다.

  그런데 화창한 봄날, 여자친구가 아닌 병을 얻어서 속절없이 앓다가 허무하게 이 세상을 떠나갔다.

  

  그는 죽음 앞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  

  

  내가 그때 그의 면회를 받아들였다면 우리는 가끔 만나서 영화를 보는 사이가 되었을 것이다. 

  불과 몇달 뒤에 그가 세상을 그렇게 이별할 줄 알았다면.................내가 달리 행동했다면.....그래서 그에게 작은 추억하나 안겨주었더라면...........그가 안고 떠날 수 있는......

그리했더라면 참으로 그리 했더라면 그에게도 이생에서의 소중한 선물이 되었을까?

그래서 조금은 따뜻한 마음으로 죽을 수 있었을까?


 손주를 본 이 나이가 되고나서야

그의 젊음, 그의 애틋한 감정에 대한 연민으로 마음이 가볍게 아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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