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난 날, 나도 ‘엄마’가 되었다.
그날 이후로, 내 이름보다 먼저 불리는 건 늘 그 말이었다.
“엄마, 엄마, 엄마.”
어느 순간,
하루 종일 ‘엄마’라는 이름으로만 살아가고 있다는 걸 느꼈다.
그 이름이 싫었던 건 아니지만,
문득 내가 하고 싶은 건 뭐였지?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아이들은 사랑하지만,
가끔은 그 사랑 안에 내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아이를 챙기고, 일을 하고
밤에는 지친 몸으로 잠들기 바빴다.
그렇게 며칠, 몇 달, 몇 해가 흘렀다.
그러다 어느 날,
“그때 내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왜 기억이 안 나지?”
그제야 알게 됐다.
글을 쓴다는 건 ‘기록’이자 ‘기억’이라는 걸. 그때의 나를 붙잡아두는 일이자,
내 마음을 다시 바라보는 일이란 걸.
“엄마는 부자야?”
등원길 차 안.
오디오북이 흘러나오는 순간,
아들이 불쑥 묻는다.
잠시 멈칫했다가 웃으며 답했다.
“응. 엄마는 마음이 부자야.”
아들이 고개를 갸웃한다.
“마음이 많아?”
순간 웃음이 나왔다.
“응, 마음이 여러 개야. 너 줄 것도 있어.”
씨익 웃는 아이 얼굴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환해졌다.
짧은 대화였지만, 그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았다.
엘리베이터 안.
작은 손에 들린 젤리 하나를
옆집 아주머니께 건네는 아이.
“어머, 고마워~”
뜻밖의 선물에 놀란 아주머니.
아이는 부끄럽지만 흐뭇한 표정을 짓는다.
문이 닫히자마자 아이가 묻는다.
“엄마… 나 착해졌지?”
그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그 말속에는
‘엄마, 나 잘하고 있어?’
‘나 좀 칭찬해 줘.’
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다.
나는 최대한 따뜻하게 말했다.
“응, 정말 많이 착해졌어. 엄마가 다 알아.”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씨익 웃으며 어깨를 으쓱한다.
아, 이 작은 존재도 스스로를 바꾸고,
그걸 나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거구나.
저녁 준비로 분주한 어느 날.
주방과 거실은 어질러져 있고,
유튜브 소리는 쩌렁쩌렁 울리고 있었다.
순간, 참았던 말이 터져 나왔다.
“조용히 좀 해!”
“왜 그렇게 말을 안 들어!”
아이들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짧은 정적 끝에, 둘째가 조심스레 묻는다.
“엄마… 많이 힘들어?”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화를 낸 게 미안해서가 아니라,
그 한마디가 내 마음을 그대로 비춘 것 같아서.
맞다. 나는 힘들었다.
괜찮은 척했지만, 사실은 지쳐 있었다.
그냥, 누군가 안아줬으면 했던 날이었다.
아이의 말 몇 마디가
내 하루를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화를 내고 나서,
그 작은 손이 내 어깨를 토닥일 때
나는 비로소 깨닫는다.
나도, 아이도.
엄마도, 아이도.
서툴지만, 그래서 서로를 배우며
함께 자라 가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