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병원에서 커피를 마셨다. 매일 마시는 커피지만 누구와 어디서 마시느냐에 따라 조금은 더 특별해지기도 한다. 병원에 간다고 생각하는 대신 가족들과 커피 한 잔 마시러 가는 길이라 생각하니, 검사실과 진료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무거운 공기가 조금은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며느리가 오는 줄 모르고 병원 푸드코트에서 식사를 하고 계시던 시부모님이 눈과 입술을 동그랗게 만들어 나를 반겨주셨다. 운전을 못하는 나는 늘 시부모님을 모시고 먼 길을 운전해 병원을 오가는 시누이에게 미안함과 고마움을 담아 뜨거운 커피 한 잔을 샀다. 달달하고 폭신한 빵도 곁들여.
서울의 든든한 대중교통 덕분에 큰 어려움 없이 오랜 시간 지속 가능했던 무면허 뚜벅이의 삶. 아이들 키울 때는 크게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는데, 부모님들이 노약자석을 양보받으시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지금은 두려움에 져서 운전면허를 따지 못한 내가 종종 원망스러워진다. 지금이라도 용기를 쥐어짜 내 볼까. 설사 면허를 따게된다고 한들 내가 운전하는 차에 부모님들이 편하게 타고 다니실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는 않지만, 더 늦기 전에 시도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많아진다.
지하철을 타고 일부러 병원까지 온 며느리가 오후 일정에 늦을세라 시부모님은 자꾸만 늦지 않게 일어나라고 시간을 확인하신다. 사실 나는 꼭 오후 수업이 아니더라도 흐르는 시간을 조금 천천히 가게끔 붙들어 놓고 싶다. 시간이 흐를수록 서서히, 어쩌면 빠르게 달라지실 아버님의 모습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서. 카페테리아에서 천천히 빵을 찢어 드시던 아버님의 손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불편하시지만 아직은 스스로 식사를 하시고, 천천히 걸어다니실 수 있는 지금의 모습이 조금이라도 오래 지속될 수 있기를 바라서. 시간이 조금이라도 느리게 흘러가줬으면 좋겠다.
둥그런 테이블이 촘촘하게 엇갈려 놓인 병원 카페테리아에 앉아 우리는 아무렇지 않은 듯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바람은 아직 차도 볕은 이제 완연한 봄 볕이라는 이야기로 시작해 처음 들어보는 어머님의 친정 부모님 이야기, 아이들 어릴 때 다 같이 제주도로 여행을 갔던 일, 올해는 꼭 가족사진을 정식으로 찍어보자는 매년 이맘때쯤 반복되는 레퍼토리까지. 새로 들인 사이버틱한 버즈 이어폰이 아버님의 청력에 보청기 보다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커피 한 잔을 사이에 두고 두런두런 이야기 나눈 한 시간 남짓. 그 시간을 위해 왕복 두 시간 가까이를 이동했지만, 조금도 아깝지 않았다.
함께라는 이유로 별거 아닌 이야기들이 특별해지는 시간이 있다. 매일 마시는 커피 한 잔이 더욱 진하게 느껴지는 시간. 그 시간을 뒤로하고 서둘러 돌아오는 길, 입가에 남은 커피향이 달고도 썼다. 아마도 오늘의 커피는, 오래 식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