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먼지를 쓸어내며
아직 오늘의 새 빛이 시작되기 전, 깜깜한 방에 불을 켜고 책상에 앉으며 깨달았다. 글을 쓰기 위해 이 시간에 서재에 들어온 것이 참으로 오랜만이라는 것을. 처음 브런치 작가가 되어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 나는 종종 깜깜한 서재 혹은 식탁에 앉아 노트북 불빛을 벗 삼아 밤을 새우거나 잠을 설쳤다. 글감이 떠오르지 않아서, 애써 떠올린 글감이 문장으로 정리되지 않아서, 글이 좀처럼 써지지 않아서, 그러다가도 이상하게 어느 밤에 갑자기 글이 잘(혹은 막) 써지면 나도 모르게 밤을 새워 글을 썼다. 머릿속에서만 뒤엉켜있던 생각들이 글이 되어 손가락 끝에서 쏟아져 나오는 그 순간이 좋았다. 즐거웠다.
그때는 글 한 편을 쓰는데 꼬박 일주일 혹은 그 이상이 걸리기도 했다. 썼다 지우고, 넣었다 빼고, 다시 또 쓰고 지우고 붙이고…. 글을 쓰는데도 글을 다듬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그러다 보니 가끔 글이 잘 써지는 단비 같은 순간을 만나면 노트북 앞에서 일어날 수 없었다. 아니 일어나서는 안 됐다. 지금 글쓰기를 멈췄다가는 언제 또 이렇게 '글쓰기 요정'이 찾아와 줄지 모르니까. 요정인지 영감인지 모를 그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아 글이 되어 쏟아져 나오는 생각들을 일단 받아 적었다. 요정이 밝혀주는 불빛을 따라 ‘발행’을 향한 오솔길을 이리저리 헤매며 걷고 뛰는 그 과정이 좋았다. 재미있었다.
요정의 시간은 애석하게도 주로 늦은 밤에 찾아왔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가족들이 모두 잠든 깜깜하고 고요한 시간에. 몸은 어느 때보다 고단한 그때에 신기하게도 정신은 가장 맑았다. 깊은 밤, 편지나 일기를 일필휘지로 써놓고 다음날 다시 마주한 글을 차마 다시 제대로 마주할 자신이 없어 황급히 구겨버렸거나 누가 볼세라 서랍 깊은 곳 어디쯤에 숨겨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을까. 괜히 '새벽 감성'이란 표현이 나왔을까. 어둠이 주인이 되는 시간, 우리는 낮보다 용감해지고 솔직해져 버리곤 하기에 다음날 어김없이 이불킥하며 잠에서 깨어날 것을 알면서도 나의 민낯과 과잉된 감정을 글에 드러내 버리곤 한다. 어둠에 가려져 내 모습이 잘 보이지 않을지도 모르리란 착각 또는 안심이 이런 방심을 만들어 내는 걸까.
아무튼 나는 종종 그렇게 늦은 밤 글을 썼고, 글을 쓰다가 밤을 새기도 여러 번이었다. 아마 내가 20대였다면, 혹은 이른 아침부터 식사를 챙겨 가족을 배웅하고 오후에는 일터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며 없는 에너지도 긁어모아 발산해야 하고, 밤에는 다시 내 아이들을 챙기고 집안일을 해야 하는 현대인 다운 '1인 다역의 삶'을 살고 있지만 않았다면. 오롯이 글만 쓰는 사람으로 살아도 되는 그런 입장이었다면 계속 그렇게 늦은 밤에 기대어, 새벽 동이 트는 것을 기꺼이 맞이하며 글을 썼을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40대 후반, 바쁘다 바빠 현대사회의 일원을 담당하고 있기에 밤새고 글 쓰는 일을 계속했다가는 그 엔딩이 '폭싹 늙었수다' 또는 '피로와 사는 여자'가 될 것임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초심에 대해 글을 쓰려다 어쩌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왔을까. 이래서 내 글은 늘 길어진다. 브런치에 글을 쓸 땐 기승전결의 ‘결’부터 단도직입적으로, 임팩트 있게 쓰라고 알려주신 글쓰기 선생님의 가르침이 무색하게도 내 글은 늘 기승전을 한참 거쳐 결론까지 빙 둘러서 간다. 가다가 한눈은 또 어찌나 잘 파는지. 파랗게 반짝이는 바다와 파도를 보여주고자 시작한 글인데 파도를 그리러 바닷가로 가는 길에 산에 들러 나무도 구경하고, 바람도 쐬고, 돌도 줍는다. 평소에도 이걸 하려다 문득 저게 생각나 그것부터 하고, 한참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있다 고개를 들면 하다 만 채로 펼쳐둔 다른 일들이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고 있을 때가 종종 있다. 나는 왜 자꾸 샛길로 빠져 헤맬까. 생각도, 행동도, 어쩌면 삶도.
그런데 그때의 나는 그러니까 브런치 세상에 발을 들이고, 낑낑대며 머리카락은 잡아 뜯을 망정 일주일에 한 편 꼬박꼬박 글을 발행했고, 심지어는 12월 한 달간 야심 차게 30일 매일 글쓰기까지 도전했던 2024년 끝자락의 나는 분명 그 헤매는 시간마저 즐기고 있었다. 돈도 안 되는 글을 왜 쓰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재밌어서요.”라고 답했으니까. 별거 아닌 대화나 책 속 문장 하나, TV에서 우연히 마주친 한 장면에서도 글감을 발견하고 그 영감이 사라질세라 서둘러 '글쓰기'를 눌러 단어 하나, 문장 하나라도 쓰고 <작가의 서랍>에 담아 두어야 마음이 놓였으니까.
나에게 ‘쓰는 사람으로서의 초심’이라는 말에 어울리 시기가 있었다면 바로 그때가 아니었을까. 글쓰기가 재밌고, 신나고, 설렜던 때. 기억하는 사람에서 기록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뿌듯했고, 소중했던 그때. 그렇다면 일주일에 한 편도 글을 써내지 못하는 지금의 나는 초심을 잃은 사람인 걸까. 글을 쓰는 즐거움도, 글감을 발견하는 설렘도, 누가 읽어줄지는 몰라도 그저 발행하기를 누르고 나면 뿌듯하고 개운했던 첫 마음은 내 안에서 휘발되어 버린 지 오래인 걸까.
그렇다면 초심 보다 본심에 집중해 보기로 한다. 본심. '본디부터 변함없이 그대로 가지고 있는 마음.'이자 '꾸밈이나 거짓이 없는 참 마음'. 늘 첫 마음 그대로 살아가고 지속하긴 어려울지라도 본심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거라 믿는다. 더 잘 쓰고 싶다는 욕심, 더 많은 조회수와 댓글에 대한 기대, 오늘은 그냥 쉬고 싶고 놀고 싶다는 게으름과 핑계..... 시간이 지나는 동안 먼지처럼 뽀얗게 쌓여 나의 본심을 가려버린 그 많은 사심들을 조금이나마 걷어내 본다. 후후 불고, 슥슥 닦아서. 매캐하니 눈이 맵고, 콜록콜록 기침이 나더라도 먼지를 치우고 나니 그곳엔 뜻밖에 변함없는 마음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