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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햇살 드는 방 Nov 07. 2024

비포 크리스마스

당신의 마음에 온기를 더할 11월의 플레이리스트

"나야, 겨울."

갑자기 겨울이 왔다. 아직 11월인데.

노크도 없이 훅 들어온 초겨울 찬 바람에 벌써부터 코끝이 시리고, 어깨는 자꾸만 움츠러든다. 하지만 바로 패딩을 꺼내 입자니 남은 겨울이 너무 길고, 그렇다고 보일러를 돌리기엔 왠지 시작도 전에 지고 들어가는 기분이다. 백화점 쇼윈도는 이미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채비를 마친 듯 하지만 우리 집 거실에 트리를 장식하고, 캐럴까지 곁들이고 나면 안 그래도 짧은 가을 제대로 누려보지도 못하고 성급히 등 떠밀어 버리는 거 아닌가 싶어 망설여지는. 그래, 딱 지금 이맘때.


여기, 호빵처럼 폭신하고 붕어빵처럼 따끈하게 초겨울을 감싸 안아줄 다섯 곡의 음악을 소개한다. 추울 때 슬쩍 꺼내 먹으면 웃풍 부는 마음방 아랫목을 뜨끈뜨끈 덥혀줄 초겨울의 플레이리스트.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는 당신의 11월에 한 스푼의 온기나마 더할 수 있다면 매우 기쁠 것 같다.




1. 첫 곡부터 너무 뻔한 선곡 아니냐고? : Autumn Leaves / Nat King Cole

어허. 그것은 김장 날 수육 빠진 것 마냥 섭섭한 소리. 낙엽 떨어져 뒹구는 이 계절에 이 곡을 안 듣고 지나가면 대체 무엇을 듣는단 말이오. 클래식은 영원하고, 명곡은 결코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 법. 더 이상의 설명은 사족일 뿐. 지금 바로 재생 버튼 온, 볼륨 업! 자 이제 올드팝의 전설이 당신을 11월의 어느 로맨틱한 순간으로 안내할 시간이다.


"I miss you most of all my darling
When autumn leaves starts to fall"
가을 나뭇잎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당신이 그리워집니다.
내 사랑이여.


https://youtu.be/Gnp58oepHUQ?si=rzKvF7jyEggr9m30

♬감상 포인트: 이것은 뉴욕의 어느 노천카페에서 마시는 한 잔의 깊고 진한 가을 맛 에스프레소.
♬주의 사항: 쌉싸름 주의, 얼죽아 주의, 뉴욕 아님 주의



2. 이별하기에 좋은 계절이 있을까마는: 바람이 분다 / 이소라

겨울의 문턱에서 맞닥뜨린 이별은 더욱 아리다. 차가워진 바람이 미처 여미지 못해 휑한 목덜미를 훑고 지나가면 살갗으로 절절히 파고드는 쓸쓸함에 오소소 소름이 돋겠지. 거리마다 나뒹구는 낙엽들은 얼마 전까지 아름다운 단풍이었음을 까맣게 잊은 듯 스산하고 부질없이 바스러져 차인다. 세상에 아름답지 않은 사랑 없듯이, 아프지 않은 이별이 있을까. 거리의 모든 것들이 떠나갈 채비를 서두르는 이 계절. 딱히 이별하지 않았더라도 괜스레 우수에 젖고, 추억에 취하고픈 당신에게 추천.


내게는 소중했던 잠 못 이루던 날들이
너에겐 지금과 다르지 않았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https://youtu.be/pv6qFKM5y_A?si=IQmv6R3cTkiwEEy4

♬감상 포인트: 24시간 새벽 2시 감성 '이별 전문 보컬' 이소라의 잔잔해서 더 슬픈 음색. 들숨에 눈물, 날숨에 한숨을 불러오는 절절하게 아름다운 가사.
♬주의 사항: 오열 주의, 병나발 주의, 현 남친/여친(배우자 포함) 눈총 주의



3. 사랑도 책으로 배울 수 있다면: Il Libro Del'amore(사랑의 책) / Forte di Quattro

수학의 정석처럼 사랑에도 완벽한 길잡이가 되어줄 안내 책자가 있다면? 우린 더이상 사랑 때문에 울 일도, 마음 무너질 일도 없을까. 그럼 우리에겐 더이상 유행가도, 손수건도, 시집도 필요 없어지려나. 설령 ‘사랑 사용 설명서’가 진짜로 있다고 한들 과연 쓸모가 있을까.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 개의 설명서가 있을 터인데.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설명서 주인조차도 그 설명서가 어떻게 쓰여 있는지 모른다는 거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나 다 사랑 앞에 길을 잃어본 경험이 있다. 하지만 잠시 길을 잃어도 괜찮다. 사랑에 관한 책에선 소리가 나고, 그렇게 음악이 탄생할 테니까. 가을엔 편지를 하겠다던 연인들 모두 겨울엔 함께 사랑의 음악을 듣고 있기를.


Eh Ma a, Mi piace Quando lo leggi tu
E tu u di più
Tu puoi leggermi Il cielo al blu
Il libro dellamore suona
Nasce così la musica
하지만 네가 사랑에 관한 책을 읽는 게 좋아
책 보다 네가 더 좋아
네가 파란 하늘에 관해 읽어줘도 괜찮아
사랑에 관한 책은 소리가 나
그렇게 음악이 탄생하는 거야     


https://youtu.be/3s9SFyVCyTg?si=lP5U86UmjSa9Jemi

오늘의 TMI: 그렇습니다. 제가 7년째 덕질 중인 우리 팀입니다.
♬감상 포인트: 영어로 부르는 원곡도 좋지만 겨울엔 꽉 찬 하모니의 이탈리아어 버전 추천. 팬텀싱어 초대 우승에 빛나는 4인조 크로스오버 그룹 <포르테디콰트로>가 말아주는 사랑의 책은 사랑입니다♡
♬주의 사항: 사심 가득 주의, 덕밍아웃 주의, 포디콰 보고픔 주의



4. 찬 바람 불면 꼭 생각나: Falling Slowly / 영화 <Once> ost 中

찬 바람 불기 시작하는 11월이 되면 마음이 조급해진다. 벌써 올해가 끝나간다고?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난 걸까. '올해'라고 부를 수 있는 시간이 이제 두 달도 채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적잖이 당황스럽다. 거창하게까진 아니어도 소소하게 계획했던 일들, 이루고자 했던 것들에 얼마큼 다가간 한 해였을까. 2024년을 보내며 내게 남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또 무엇일까. 나, 올 한 해 후회 없이 잘 살았을까? 이런저런 생각들로 무거워진 마음이 한없이 가라앉으려 할 때, 아직 늦지 않았다고 말해주는 그와 그녀의 이야기를 만나보자. 후회 그까이꺼 쫌 남으면 어떤가. 한 해 동안 수고 많았다고, 올해도 애쓴 나를 꼬옥 안아주자. 투박한 그의 목소리를 섬세하고 여린 그녀의 목소리가 따스하게 감싸 안아 주듯이.


Take this sinking boat and point it home
We've still got time
Raise your hopeful voice you have a choice
You've made it now
가라앉는 이 배를 붙잡아 줘
우린 아직 늦지 않았어
희망의 목소릴 높여봐 당신은 이미 선택을 했고
이젠 결정할 시간이야


https://youtu.be/S2ANkkdhWVY?si=YBajt8ptMqyw7egQ

♬감상 포인트:  "밀루유 떼베(Miluju tebe)", 체코어로 "너를 사랑해"
♬주의 사항: 의외로 욕설 주의, 결말 여운 주의



5. 각자의 꽃 피우는 11월이길: 젊은 나의 책갈피 / 정우

그렇다. 젊은 날에는 책갈피가 있다. 언제든 펼쳐보라고. 오래 간직하라고. 오늘의 내가 20년 전의 나를 펼쳐보듯, 20년 뒤의 나도 오늘의 나를 펼쳐보겠지. 이젠 젊지도 청춘도 아닌 나이임에도 여전히 나는 '가시 돋친 말들과 달랠 길 없는 마음'과 작별하지 못한 듯하다. 때때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고 종종 무언가로 인해 마음에 흠집이 나는 걸 보면. 그래도 청춘이 노래해주지 않는가. 그 모든 것이 꽃이 되어 피었다고. 11월엔 우리 모두 꽃이 되어 피어나기를, 꽃이 핀 자리에 '행복'이라는 책갈피를 꽂아 놓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내 젊은 날의 사랑이어라
가시 돋친 말들도
달랠 길 없던 마음도
꽃이 되어 피었네

나의 사랑 나의 젊음 나의 책갈피
늘 뒤서는 걸음과 서투른 입술
나의 자랑 나의 청춘 나의 책갈피
퍽 어설픈 몸짓과 길 잃은 마음


https://youtu.be/2wKayNiRs2M?si=YzQ0dA8YIsNOgMyr

♬감상 포인트: 먹먹하고, 아련하고, 아름답다. 잘 지은 가사의 맛.
♬주의 사항: 건배사 '청바지'는 아재 주의,  '청춘은 바로 지금'인건 맞는 말이지만.

                 




당신과 함께 듣고 싶은 11월의 플레이리스트는 여기까지입니다. 덕분에 다섯 곡을 고르기 위해 고민하는 과정에서 참 많은 음악들을 들을 수 있었음에 가을 햇살같은 고마움을 전합니다. 세상엔 잊고 지내기엔 아까운 명곡이 참 많다는 걸 새삼 다시 느껴본 시간이기도 했어요.


지금, 당신의 플레이리스트에는 어떤 곡들이 재생중인가요? 모쪼록 평안한 겨울의 시작이 되기를 바라며, 혹시라도 시간과 상황이 허락하여 당신이 이어폰을 끼고 나의 11월의 플레이리스트를 들어봐 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 같습니다.


11월의 어느 날, 햇살드는방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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