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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선 Jan 26. 2021

지독한 경계

극단 김장하는날 <에볼루션 오브 러브>

 

1월 8~17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랑의 형상은 무엇일까. 고작 대책 없는 낭만으로만 보인다면, 그것은 사랑의 일면에만 취한 것이다. 아마 우리는 영원토록 사랑의 형상을 찾지 못할 테다. 모질게도 사랑은 때에 따라 자꾸만 모습을 바꾸기에, 연극 ‘에볼루션 오브 러브’는 사랑의 진화사(進化史)를 훑는다. 

작품은 작년 서울연극제에 오른 ‘피스 오브 랜드’와 비슷한 형식을 보인다. 극단 김장하는날은 매해 하나의 주제를 정하여 연극으로 만들어왔다. ‘피스 오브 랜드’는 땅에 관한 이야기다. 한 명의 주인공이 존재하지 않고, 각 배우들의 대사에 귀 기울이다 보면 한 편의 연극으로 귀결된다. 이번 주제는 사랑. 다양한 장면이 그물망처럼 연결되어 있는 이른바 ‘복잡계 플롯’을 따르지만 큰 줄기는 사랑에 기대고 있다. 최근 몇 년 간 단원들의 연애·결혼 이슈는 복잡했고, “사랑은 본능인가, 학습인가?”에 대한 질문이 연극의 시작점이었다. 극단 김장하는날은 작품 기획 단계부터 함께 리서치를 하며 아이디어를 냈고, 이를 이영은 연출가가 수렴해 집필했다. 

작품의 목표는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통해 ‘사랑의 실체’에 다가가 보는 것이다. ‘진화(evolution)’는 미개함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적응하는 걸 말한다. ‘에볼루션 오브 러브’는 시대·문화의 차이에 따라 사랑의 모습이 어떻게 변천되어 왔는지를 이야기한다. 긴 사랑의 역사를 되짚다 도달한 지점은 진부하지만 ‘다양성’이다.

무대에는 일곱 명의 배우가 선다. 지금까지 선보인 이영은 연출작을 보면 한 명의 주인공이 서사를 이끄는 것보다는 다각도에서 여러 사건을 다루는 작업을 보여 왔다. 이번에는 펼쳐진 이야기를 정리해 관객과 소통하는 ‘해설자’를 두었다. 해설자는 사랑에 관한 다채로운 사례를 관객에게 소개하고, 여섯 명의 배우는 이를 재현한다. 해설자의 대사가 다소 길기 때문에 그동안 다른 배우들은 일종의 자료화면 역할을 해낸다. 넘치고 넘치는 사랑의 사례를 보여줘야 하니 장면은 즉각적으로 변화한다.

첫 시작, 배우들은 유명한 고전 작품을 읊는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오텔로’ ‘한여름밤의 꿈’ ‘페드라’ ‘로미오와 줄리엣’…. 무수히 많은 고전은 각자의 사연을 지닌 사랑을 표출해왔다. 총 12장으로 이어지는 연극은 인간의 사랑에 대한 사회·문화·정치·철학·생물학·심리학적 분석을 시도하다가 종국엔 사회를 비추어본다. 그러다 마주하게 되는 것은 지독한 경계(境界). 역사를 훑다 보면 사랑이란 이름으로 존재해 온 오만한 편견과 차별, 폭력이 날카로이 스친다. 인류가 더 나은 사랑을 원한다면 사회적 진화를 이뤄야 한다는 것이 작품의 요지다. 


글_ 장혜선 

사진_ 한국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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