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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선 Sunny Dec 22. 2024

혼술 일기

호수와 노, 정수기 아저씨, 옷

호수, 노

오늘 아침에는 노를 젓고 왔다. 호수에 둥둥. 은근 잘 젓는 것 같기도 하고 팔과 다리를 접고 펴는 그 동작이 마음에 들어 노년에는 호수 근처에 살면서 노 젓는 취미를 가지면 근사하겠다는 꿈이 몽글 피어 올랐다. 오늘 아침에 탄 건 사실 진짜 노가 아니라 로잉 머신 이야기다. 주말에 PT받은 건 아마 시작하고 처음인 것 같은데 8시간 푹 숙면해서 그런지 아주 컨디션이 좋았다. 꽤 하드한 루틴을 하고도 머신을 2천 키로 탈 수 있었다.대시보드에서 나의 기록을 보는 것보다 휠이 나오는 캄캄한 빈 공간을 영혼 없이 바라보면서도 힘있기 당기는 게 오래 하는 것에 도움 된다. 포인트는 기록에 대한 생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멍하니 다른 생각을 하거나 혹은 생각을 안하거나. 김연아의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 뭐. 내가 좋아하는 대사가 생각나는 지점이다. 빠르게 지루함을 느끼고 그만두는 것을 더 즐기는 나에게 어떤 일은 계속 하게 만드는 마법의 주문이다. 덕분에 지구력이 좋다는 칭찬을 꽤 들었다네. 땡스 갓 연아!


정수기 아저씨

드디어 냉수 온수 정수! 브리타 정수 필터로 몇 년을 버티다가 정수기를 들였다. 어디서 구매를 할까 하다가 어머니가 십 몇년을 거래하고 계시는 아저씨를 소개 받았다. 엘지나 코웨이 같이 익숙한 브랜드는 아니지만 호탕하게 웃으며 안내해주시는 것이 좋아서 쿨거래 했다. 요즘에는 돈을 쓸 때 그 물건의 가치나 디자인보다 파는 사람의 마음을 보고 결정할 때가 많다. 제품에 큰 차이가 없으면 그 편이 안심이 되고 돈 쓰는 보람이 있다. 그렇게 맺어진 관계만 모으고 모아서 남은 생을 살아가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나에겐 이상한 패션 습관이 있다. 내돈내산 보다 남돈남산을 즐기는 것이다. 내가 직접 고르고 사서 입는 옷보다 남이 산 옷을 받으면 훨씬 오래 입고 자주 손이 간다.  어제 받은 체크 무늬의 발목까지 오는 귀여운 원피스를 받아서 입었다. 너무 잘 어울리고 할머니 될때가지 입고 싶어요! 감사 인사를 보냈다. 32살 정도면 나에게 잘 어울리는 것을 척척 고를 법도 한데, 자꾸만 나에게 어울리는 것보다 입고 싶은 것을 골라서 종종 실패하곤 한다. 내가 사는 옷의 빈도를 줄이고 친구 집에 가서 남는 옷 좀 탐색해야겠다


연말 맞아 친구와 저녁 나들이 하기로 해서 망원역 성립이라는 적당히 수다스럽고 정성스러운 공간에서, 바에 앉아 몇 글자 끄적인다. 친구가 약속 시간 20분 늦어준 덕분에 꽤 오랜만의 혼술. 늦어서 미안하다는 친구에게 이 시간이 정말 좋았다고 보냈다. 쓰는 사람이 되는건 남는 자투리 시간을 잘 활용하는 능력을 장착하는

것이기도 한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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