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선 Sunny Dec 13. 2024

몇 개의 일상에서 꺼낸 생각들

가구, 베이스, 마늘

가구

수퍼싱글 침대 2개. 잠이 곧 국력이다 믿는 나는 이사 올 때 무리하게 당근에서 매트리스 한 개를 예약하고 가져와서 2개를 넓게 넓게 깔았다. 남자친구와 함께 살게 되면서 혹시 모를 잠의 뒤척임에 대비하여. 이불도 2개, 침대도 두개. 작은 체구 덕분에 뒹굴 뒹굴 4번은 해야 끝에서 끝으로 가닿을 수 있는 크기였다. 함께 산지 1년이 지났는데 옆의 침대는 7일을 썼을까 말까. 생각보다 우리는 작은 체구에 잘 붙어 자는 편(?)이었다. 처음에 몸부림이 심하던 남자친구의 습관이 생각보다 빠르게 해결되어 생각보다 우리는 수퍼싱글에서 둘이 잘 잔다. 그럼 일단 사는 걸 보류하기로 했다. 침대가 2개 있었던 방은 커다란 러그를 깔았음에도 어딘가 허전해보인다. 가구를 들일까? 편안하게 앉을 수 있는 리클라이너를 찾아보다 말았다. 2인용 쇼파를 살까? 집에 있는 가구 중 가장 묵직할 것 같은 무게감이 내 어깨로 앉는 듯 왠지 부담스럽다. 다른 집은 가구로 예쁘게 인테리어 하는데 어쩐지 그 '소유'가 썩 내키지 않는다. 언젠가 떠날 때 무거운 짐이 될테고, 자꾸 생각하다보면 없어도 살수 있을 을 것 같다. 100% '나의 집' 이 생기면 이 마음이 달라질까? 지켜볼 일이다.



베이스

연결하며 확장되는 세계관이 좋다. 12월 둘째주 월화, 평일의 어느 날 서촌의 숙소에서 모였다. 서촌 옷가게 갔다가 친해진 사장님과 아끼는 동생 친구와 함께.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끼리는 그냥 자리에 앉혀두기만해도 풍족한 시간이 완성된다. 저녁 시간부터 새벽 1시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 24년과 25년은 어떨지. 요즘 보는 콘텐츠는 무엇인지, 우리가 앞으로 할 수 있는 건 뭘까.. 등등.. 1박으로 잡은 넉넉한 시간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헤어지는 길에 나의 역할에 대해 칭찬해주셨다. 중간 중간 모더레이터, 질문도 잘 던지고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어줘서 너무 좋은 시간을 보냈고 이 자리에 초대해줘서 고맙다고. 그것이 뿌듯하고 따뜻했다. 나는 밴드에서 베이스의 역할에 최선을 다한다. 맨 앞에 나서서 멜로디를 깔고 분위기를 억지로 끌고 가지 않아도, 든든하게 깔려서 자연스럽게 곡의 무드를 완성시키는 역할이 잘 맞다.



마늘

오늘 병원에서 무려 50만원을 결제했다. 살면서 지불해본 병원비 중에 2번째로 큰 돈이다 (1번째는 스마트 라식, 280만원) 6개월 내내 고생한 입술의 알러지를 근본부터 치료해보고 싶어서 '지연성 알러지' 등 내 몸의 알러지와 관련된 검사를 신청했다. 이 검사는 아무 병원에서 하는 건 아니어서 아는 동생이 했던 곳에 일단 갔는데, 굉장히 신기한 타입의,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어딘가 일론 머스크를 닮고 초점이 흐리며 다리를 덜덜 떨며 진료를 보는 그는 '무세균론자'다. 마늘을 좋아하고 입에서 구취 풍기는 한국인을 혐오한다. 진료 중에 호기 검사를 권하셔서 해봤더니 나도 일반인 이상 수준이란다. '헉'스러운데, 같이 사는 남자친구한테도 딱히 피드백은 못들었어서 놀라웠다. 아무튼 구취도 있고, 입에서 염증도 나고, 그래서 비염도 있고 등등.. 모든 곳에서 '니 몸에 염증이 가득해! 이 세균 덩어리' 를 외치는 것 같다. 그래서 당장 약을 먹어야 하나? 여기는 처방 요청하면 항생제를 한 무더기 주는 곳이다. 어제 여러 후기를 서핑하고, 의사 선생님의 블로그를 탐닉한 덕에 그의 치료 철학을 알 것도 같았다. 일단 항생제를 2주정도 복용하며 몸에 세균을 싸-악 제거한다. 식단에는 마늘, 생야채, 김치, 내 사랑 김밥.. 마저 세균 덩어리라는 이유로 차단 당한다. 재미있는 건 대신 설탕, 백미, 콜라, 맥도날드는 된다.. 혹시 이런건 본인의 취향에 따라 논리 사고가 맞추어지신건 아닌가요? 물으면 '역시 미개한 한국인' 하며 혐오스럽게 바라보실 것 같지만. 그렇게 항생제와 맥도날드 요법으로 세균이 몸에서 어느정도 제거되면, 이후에는 안맞는 음식을 먹었을 때 바로 반응이 일어난다. 몸이 너무 클린해진 나머지 조금의 세균에도 저항하는 것이다. 염증을 없애는 건 좋은데..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이 지속 가능한가? 동생도 물어보니 예전에 먹고 피부가 깔끔하게 나았는데 겨울철에 좁쌀 여드름이 다시 생겨서 다시 약을 먹고 있다고 한다. '약을 다시 먹는다'라... 항생제가 여드름 없애는 것에 직빵이라는 것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뭐야 그럼 마늘은 왜 끊는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