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선혜 Jul 07. 2021

인기 없는 내 글도 책이 될 수 있을까?

브런치에서 한 번도 '제안' 메일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의 출판기



브런치에서 작가라 불리기 위해 재수를 했다.

한번 떨어지니 다음 도전은 꽤 비장해져서

'서른두 살, 혈액암에 걸린 이후 달라진 것들'에 대해 장황하게 써냈던 것 같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 처음 뭘썼는지 모르지만, 무지 애썼던 기억이 난다.

백스페이스(Backspace) 키를 연신 눌러가며 글 하나를 겨우 썼다.

그렇게 쓴 글을 어떻게 알고 사람들이 읽어주는 건지.

가끔 울리는 '좋아요'나 '구독' 알림이 신기해서 남편한테 자랑했다.

"이거 봐, 내 글이 마음에 드나 봐. 하트 눌러준다! 구독자 수도 좀 늘었어!"

카톡보다 더 자주 울리던 브런치 알림이 반가워서 휴대폰에서 손을 떼지 못했다.



하지만 글을 열 개쯤 쓰고 나니 다른 걸 원하게 됐다.

브런치만 잘해도 손쉽게 출판을 할 수 있다던데.

어떤 베스트셀러 작가는 브런치에 글 하나만 올리고도 출판사의 제안을 받아서 출간을 했다던데.

내가 구독하는 브런치 작가들은 출간 제안을 잘도 받던데.

섭섭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단 한 번도 어떤 제안을 받은 적이 없었다.

(지난달 책을 출간해서 '작가'가 된 지금까지도!)


교보문고에 '누워있는 내 책'을 보고 싶어서 남편과 굳이 광화문에 갔던 날


이름 모르는 작은 출판사라도 내 글이 좋다고만 해주면 못 이기는 척,  처음에는 다들 그렇게 시작하더라며 못마땅한 기색을 숨기고, 출간 계약서라는 곳에 사인을 하고 싶은데. 전혀 그런 낌새는 보이지 않았다.  



그 시절 나는 엄격한 비평가가 되어서 내 글을 흠집 내기에 바빴다.

마치 경상도에서 나고 자라 누가 봐도 사투리를 쓰는 사람이 '저는 서울 사람이에요.' 하는 것처럼 어색하게 글을 썼다.

그렇게 책이 될만한 글만 쓰려고 하다 보니 브런치가 재미없게 느껴졌다.

결국 내 브런치는 폐업처리도 하지 않은 채 오랜 휴업 상태로 방치됐다.  



2020년 가을부터 심신치유학을 공부하기 위해 대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내내 무기력증에 시달리던 나는 심리상담을 전공하시는 교수님께 도움을 청했다.

'작가가 되고 싶긴 한데 노력을 하지는 않는다. 내 마음을 내가 잘 모르겠다.' 고 했다.

교수님은 작가가 되고 싶은 이유를 궁금해하셨다.

"어.... 음.... 저는 아이한테 멋진 엄마가 되고 싶거든요."

순간 내 입에서 나온 '멋진 엄마'라는 말이 어쩐지 하나도 멋지게 느껴지지 않았다.



30분 남짓 상담을 하는 동안 교수님은 별다른 조언이나 지시를 하지 않으셨다.

다만 내 마음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어두운 길에 작은 불빛을 비춰주셨다.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글을 쓸 수 없었던 건 내 안에서 길어 올려진 욕망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저 글을 쓰고 싶어서 쓰는 게 아니라 남보기에 그럴듯한 무엇이 되려 했던 것이다.



그때부터 작가가 되겠다, 멋진 엄마가 되겠다는 마음 같은 건 버렸다.

하얀 화면을 그릇이라고 여겼다. 불안하고 우울한 내 마음을 담아낼 그릇.

누가 읽든 말든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는 식으로 글을 썼다.

남몰래 써왔던 일기장을 뒤져 글감을 찾았다. 그걸 바탕으로 보름 동안 썼다.

처음으로 이 글이 책이 되지 않아도 좋고, 내가 작가가 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쓴 원고지 200매 분량의 글과 기획안을 출판사에 보냈다. 2021년 1월 3일이었다.


 

내 글에 관심을 가질 만한 출판사를 추려보니 대충 서른 곳이었다.

그중에 열 곳씩 3일 동안 투고하기로 했다.

물론 서른 곳 다 실패하면 다시 또 찾아서 투고해 볼 작정이었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투고를 한 첫날, 오후 7시에 메일이 도착했다.




보내주신 원고 잘 받았습니다.

순식간에 반 정도 읽고,

바로 연락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메일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울림이 있고, 글이 참 좋네요.

이 책을 한번 진행해 보고 싶은데요.

정식 계약까지는 여러 절차가 남아있지만,

원고 완성도나 콘셉트 등이 분명해 좋은 결과가 있으리라 예상됩니다.  

혹시 그 사이 다른 출판사와 계약이 될까 싶어 먼저 연락드리게 되었습니다.




네이버에서 검색하면 '베스트셀러' 표시가 붙어 있길래 기분 좋아서 캡처했다!


돌이켜 보면 나는 브런치에서 인기 없는 작가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 글은 읽히고 싶어서 쓴 글이었다.

독자가 읽어주지 않는 글은 무용(無用)하지만,

글을 쓸 때만큼은 독자를 너무 의식하면서 쓰면 안 된다는 걸 책을 내고 나서야 알았다.



내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브런치를 시작한다면, 브런치를 '글쓰기 훈련장'으로 여길 것이다.

김연아 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다고 해서 훈련장에서 매 순간 완벽하게 연기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아니, 오히려 훈련장에서 수없이 넘어졌기 때문에 올림픽에서 완벽한 연기를 보여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금도 브런치라는 공간에서 긴장한 채 글을 쓰고 있을 누군가에게 감히 이야기하고 싶다.

이곳에서 마음껏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라고. 조금 더 관대해져도 괜찮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책을 쓰겠다는 마음, 멋진 작가가 되겠다는 마음은 내려놓고

'아, 이 얘기를 쓰지 않고는 못 배기겠네!' 하는 마음으로 써보라고.

그런 글이라면 독자들이 도저히 읽지 않고는 못 배기지 않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