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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선혜 May 17. 2019

우리는 거실에서 더 많은 것을 하고 싶다

거실에 소파와 TV를 없애고 찾아온 변화

일요일 낮, 남편이 소파에 누워 졸고 있었다. 

 "아빠 이제 우리 집에 놀러 와!"

아이는 그 옆에서 소꿉놀이를 펼쳐놓았다. 

"아빠! 아빠? 아빠아아아아아!" 

아빠를 부르는 소리에 남편이 눈을 비비며 "으... 응... 그래 그래" 겨우 대답을 했다. 


아이가 4살 때까지 우리 집 거실은 여느 집과 같았다. 소파와 TV가 주인공이었다. 아이가 어릴 땐 소파에 앉아서 수유도 하고, TV도 보고, 낮잠도 잤다. 푹신한 소파에 앉으면 누군가 백허그해주는 것처럼 편안했다. 예능프로그램 한편 틀어 놓고 깔깔거리며 누워있으면 잠시나마 힐링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소파가 너무 편해서 문제였다. 한번 앉으면 눕고 싶고, 누우면 일어나기 싫었다. 아이가 "엄마 잠깐 와봐"하며 방에서 부르면 푹 파묻혀있던 몸을 일으키기가 힘들었다. 낮에 아이가 유치원에 가고 잠깐 쉬려고 소파에 누우면 블랙홀처럼 TV에 빨려 들어갔다. 몇 번째 보는지도 모르는 예능 프로그램 재방송을 멍하니 보다 보면 시계는 어느새 '애델렐라'를 재촉했다. 

 

남편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늘 피곤하고 졸린 사람이었으니 소파에 눕기만 해도 숙면을 취했다. 어떨 땐 앉아서도 졸았다. 나도 소파에 퍼져 있는 게 좋으면서 이상하게 남편이 그러면 화가 났다. 평소에도 아이가 아빠랑 놀 시간이 없는데, 주말이라고 소파에서 자고 있는 게 괘씸했다. 피곤한 줄 알면서도 째려보며 잔소리를 했다. 



아이가 막 5살이 되었을 무렵 우리는 이사를 했다. 그리고 과감히 소파를 없앴다. 대신 그 자리에 160센티미터짜리 테이블과 벤치를 뒀다. 남편의 반대가 만만치 않았다. 무엇이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말하는 평화주의자라서 소파 없애는 것쯤이야 상의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구 전시장에 가서 소파 대신 테이블을 놓겠다고 말하니 사색이 됐다. "가구의 꽃은 소파"라는 생전 처음 듣는 말을 하면서 나를 말렸다. 


"우선 한번 소파를 없애보자. 처음엔 불편하겠지만 적응하면 괜찮을 거야."

살살 달래는 나를 보며 굳은 표정을 짓던 남편은 내 고집을 꺽지 못했다. 


며칠 후 커다란 테이블과 의자가 거실 중앙을 차지했다. 티브이도 한쪽 방으로 옮겼다. 앉아서 무언가 그리고, 만들기 좋아하는 아이는 테이블 앞에 앉아 많은 시간을 보냈다. 나 역시 아이 옆에 앉아서 이것저것 거들어 주기가 편했다. 만족이었다. 무엇보다 좋은 건 아이가 의자에 앉아서 놀이하는 습관이 생겼다는 점이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제일 중요한 건 의자에 앉아 있는 습관을 들이는 거야. 유치원하고 달라. 40분씩 앉아있는 게 쉬울 거 같지? 처음엔 애들도 멘붕이야. 무조건 앉아서 뭐든지 진득하게 하는 습관을 들여. 그림을 그리든 종이접기를 하든 무조건 책상 앞에 앉아서! 그것만 잘해 놓으면 초등 전에 조기교육 같은 거 필요 없어."


아이 셋을 초등학교에 보낸 선배 얘기를 듣고 나니 잘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아이만 좋은 건 아니었다. 우리 부부에게도 긍정적인 변화가 생겼다. 우선 무조건 눕는 습관이 사라졌다. 아니, 사실 거실에 누울 곳이 없었다. 남편은 피곤할 땐 차라리 방에 가서 잠깐 자고 나왔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도 많아졌다. 아이는 넓은 테이블 앞에 앉아 아빠가 논문을 쓰는 모습을 보면서 책도 읽고 그림도 그렸다. 나는 아침마다 신문을 펼쳐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눴다. 쿠키를 만들고 만두를 빚는 것도 커다란 테이블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함께 둘러앉아 보드 게임하기에도 딱 좋았다. 아이가 자면 남편과 야식에 술 한잔을 곁들여 피로를 씻기도 하고, 때로는 향기로운 차를 마시며 하루 일과를 이야기했다.  



한동안 거실을 서재로 바꾸는 게 유행이었다. 소파와 텔레비전을 없애고 거실에 책장을 둬야 독서를 많이 하게 된다는 취지였다. 나는 거실을 꼭 서재로 바꿀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거실이 책만 읽는 서재 말고, 가족의 여가를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랐다. 실제로 우리 집은 낮은 책장에 헐겁게 책을 꽂아서 독서에 대한 압박은 줄였다. 대신 무엇이든 함께 할 수 있게 테이블 크기에 신경 썼다.  


어쩌면 아이가 자란다는 건 거실에서 자기 방으로 중심을 옮기는 일일지도 모른다. 나 역시 사춘기 때는 내 방에 엄마가 들어오는 것조차 싫었던 시절이 있었다. 내 아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춘기가 되고, 성인이 되면서 점점 자기만의 영역을 만들어 갈 것이다. 그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변화다. 다만 그런 시기가 오기 전에 우리는 거실에서 더 많은 것을 할 생각이다. 소파에 누워 TV 보는 달콤한 시간도 물론 소중하다. 하지만 TV 대신 아이의 눈을 맞추면서 추억을 쌓고 싶다. 그런 시간은 휘발되지 않고, 우리 가족의 마음속에 화석처럼 남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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