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인 듯 '사랑'아닌 그렇지만 '사랑?'인 우리 엄마아빠 이야기
“아빠는 사랑 같은 거 몰라”
농담인지 진담인지 평소 알 수 없는 말을 하던 아빠는 다음 날 아침 일어나 엄마를 찾았다. 무뚝뚝하기만 하던 아빠가 평소와 다르게 눈 뜨자마자 엄마를 찾다니.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꿈에서 엄마가 불치병에 걸렸는데 담담하게 그 이야기를 전하는 엄마의 모습에 가슴이 너무 아팠다는 것이다. 새벽에 베개를 적실 정도로 울며 꿈에서 깬 아빠는 아침부터 그렇게 엄마 얼굴이 보고 싶었단다.
“아빠는 사랑 같은 거 모른다면서요” 킥킥 웃으며, 출근하는 아빠를 배웅하고 돌아서는 그 순간 아빠와 엄마의 사랑을 어렴풋이 알 거 같기도 했다. 평생 자라면서 본 아빠 엄마의 모습은 내가 아는 달달한 사랑과는 거리가 멀었다.
둘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지만,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고 그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것 같았다. 나는 종종 그런 엄마 아빠를 보면서 의무감으로 서로의 곁에 있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사랑이란 뭘까, 내 인생 평생을 같이할 동반자가 존재할까. 엄마 아빠를 보며 늘 품어왔던 의문. 하루는 친구에게 물었다. “서로 사랑한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의아한 눈초리로 날 바라보던 친구. 그 마음은 상대방에게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정량적으로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라고 덧붙였다.
우리 엄마랑 아빠의 첫 만남은 고모의 주선으로 이루어지게 되었다. 당시 아빠는 집안이 매우 어려워 결혼은 언감생심이었다. 첫 만남 때 코를 훌쩍이며 나온 아빠를 본 엄마는 왠지 모를 순수함을 느꼈고 연애를 시작했다.
연애할 적 아빠는 아침부터 새벽까지 동대문에서 일하느라 바빴고 근사한 레스토랑에 엄마를 데려가거나 값비싼 선물을 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루는 아빠가 거래처 일로 엄마의 직장에 찾아가는 일이 생겼었는데 번지르르하지 못한 모습으로 엄마와 엄마 직장동료들을 마주쳐서 적잖이 당황하고 창피했었다고 한다. 혹여 본인의 모습 때문에 엄마가 곤란했을까 걱정하던 아빠에게 다음날 엄마는 장갑을 내밀었다. 추운 겨울이었는데 영업하던 아빠의 손이 시려 보인다는 이유에서였다.
뜨거운 사랑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둘은 연애 끝에 결혼했다. 아빠는 자식들 볼 새 없이 밤낮으로 바빴고 엄마는 임신 막달까지 직장에 나가서 일하다가 아토피로 고생하는 동생을 돌보기 위해 일을 그만두게 된다.
동생 치료에 힘쓰랴 나를 돌보며 살림하랴 우리 엄마는 예쁜 옷 한번 못 입고 젊은 세월을 보냈다. 어린이날 아기들이 아빠 엄마와 함께 하는 광경에 우리 아빠는 차 안에서 숨죽여 울었다고 했다. 엄마는 그 시절 유행가를 모른다. 엄마 아빠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쉼 없이 달린 것이다.
누군가는 행복한 시간이었을 그 시간 동안 우리 엄마 아빠는 힘든 상황 속에 많이 다퉜다. 서로를 위했음에도 이해 못 하는 날들이 더 많았고 힘들었기에 위로조차 건네지 못하는 시간이었을 것이다. 어렸을 적 나는 엄마 아빠의 이런 모습이 사랑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다.
결국, 언젠가는 엄마 아빠 둘이 다른 길을 걷게 될 거라고. 그리고 어린 나이에 인생은 결국 혼자라는 제법 냉소적인 결론을 내렸다. 상대 마음을 확인할 수도 없는데 사랑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흘러가듯 계절이 바뀌고 나와 동생 모두 성인이 된 지금, 동생은 아토피를 완치했고 아빠는 고생 끝에 직원 여럿 둔 사장이 되었다. 어릴 적 나의 우려와 달리 엄마 아빠는 웃으며 티브이를 본다. 시간이 날 때면 여행도 같이 다녀온다.
엄마 아빠 젊은 시절 서로에게 서운했던 앙금이 그 세월 지났다고 없어진 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 막막한 세월 속에서 손 붙잡을 사람은 둘 뿐이 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 힘든 시절 이겨내고 지금 우리 가족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언젠가 나는 엄마한테 물었다. 가진 거 아무것도 없는 남자랑 어떻게 결혼을 확신할 수 있었느냐고. 엄마는 아빠가 잘살아 보려고 노력하는 그 모습이 창피하기보다 멋있었다고 대답했다. 만약 아빠가 앞에서 손수레를 끌면 엄마는 뒤에서 밀어주고 싶을 거라고 말이다.
엄마 아빠가 겪어온 세월을, 서로를 위하는 마음을 사랑이란 말로 압축하기에는 그 시절이 너무 고달팠다. 달콤하고 로맨틱함만이 담겨있는 그런 ‘사랑’ 말고 다른 단어로 엄마 아빠의 세월을 대신하고 싶다. 미워도 서로 이해하지 못해도 묵묵히 같이 걷는 ‘동행’은 어떨까….
아빠는 매번 사랑을 모른다고 말한다. 하지만 난 아빠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아빠는 사랑을 모르지 않는다고, 오히려 사랑할 때뿐만 아니라 그 어떤 순간에도 함께하는 동행을 하고 있다고….
철학자 존 설은 경험의 언어 의존성이 언어의 근본성이라고 주장합니다. 경험이라는 것은 언어에 의존하기 때문에 언어가 없으면 모든 경험과 사회적 관계가 불가능해지고 인간 존재와 인간 삶을 잘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존 설은 언어가 인간 삶에 근본적이라는 결론을 내놓게 되었습니다.
‘사랑’이라는 행위의 언어화는 우리에게 사랑에 대한 고차원적 인식을 가능하게 합니다.
그렇다면 ‘사랑’을 대체할 수 있는 다른 말은 없을까 고민스러워졌습니다. 달콤하고 가벼운 감정도 사랑, 없으면 죽을 것 같은 것도 사랑, 슬프고 미워도 사랑. 이 모든 감정을 사랑으로 통칭하는 건 너무 무책임한 거 같아요. 이 '사랑'이라는 언어를 만듦으로써 모두가 공유하는 경험은 비슷해져야 하는데 사랑의 범위는 유독 너무 넓기 때문입니다.
너와 나의 ‘사랑’이 같은지, 같은 감정을 공유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랑은 모든 경험들 중에 제일 가지각색인 거 같습니다.
모양도, 깊이도, 행위를 하는 방식, 기억해 내는 방식까지도.
저는 엄마 아빠의 사랑을 보고 사랑보다는 동행이라는 표현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나'의 사랑을 좀 더 구체화할 수 있다면, 어떤 언어로 대신하고 싶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