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념] ‘인공자궁 카드 뉴스’

포스트휴머니즘 시대

by 써니

[인공자궁 카드 뉴스 전문]

" 2060년인 지금, 인공 자궁 출생아 수가 97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 10년간 합계 출산율이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며 인공 자궁의 전망이 더욱 밝아졌습니다. 이는 인공 자궁 도입으로 기대되던 예상치를 한참 뛰어넘은 숫자입니다.

인공 자궁은 더는 무의미해진 인간과 기계의 구분 속에 등장했습니다. 도입 초기부터 반대의 목소리에 부딪혔지만, 아직도 여성만이 임신해야 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라는 많은 시위를 통하여 도입되었습니다. 인공 자궁이 도입되고, 인공 자궁을 통한 부모의 경험이 가능해짐으로써 여성을 비롯한 인류는 새로운 주체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모성애’ ‘부성애’와 같은 이분법적 호칭이 아닌 ‘양육자’라는 이름만이 존재할 뿐입니다. 또한, 출산의 불평등이 사라지면서 모성애라는 이름으로 여성에게 희생을 강요하던 전근대적인 사고방식과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은 급격히 감소하였고 워킹맘과 같은 전근대적 용어도 사라졌습니다. 기존에 임신과 출산 때문에 포기했던 일과 취미 모든 것 또한 가능해졌습니다. 이는 출산 가능자와 불가능자의 구분이 사라지면서 주체성을 재확립한 것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자연임신이 더 안전하다는 우려와 새로운 가족관계에 대한 논의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에 다양한 가족관계에 대한 법안이 마련되었고 우리 인식 또한 변화할 때가 아닐까 하는 메시지를 남기며 뉴스 끝맺겠습니다."



한때는 섹시한 속옷에 감춰져 있던 나의 가슴은 이젠 아이에게 모유를 주기 위해 존재하는 포유류의 젖으로 변해 버렸다. 그리고 이 동물적인 모습은 가장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자주 들켰다. 난 그렇게 수치심을 잃어버린 채 제3의 성이 되어가고 있었다.


드라마 산후조리원 5화의 대사입니다.


출산은 사실상 여성의 많은 희생을 요구합니다. 호르몬 변화, 산후 우울증, 경력 단절 등이 대표적 예입니다. 하지만 여성의 본성이라 생각되어 왔고 여성이라면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모성은 여성에게 희생과 헌신을 강요함으로써 여성 개인의 주체성을 지워버리고 ‘엄마’라는 이름으로만 존재하게 합니다.


이러한 모성애 신화는 사회적으로 자연적이고 올바른 것으로 탈명명화 됩니다. ex-nomination(탈명명화)는 롤랑바르트가 말한 것으로 지배적인 권력을 가진 쪽은 이름 붙여지지 않는 현상을 말합니다. 즉 남자는, 자본주의는 명명화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임신과 출산의 모든 과정에서 ‘모성애’로 이름 붙여진 여성의 희생은 남성이 여성을 억압해 왔던 근대 휴머니즘과도 맞닿아있습니다.


따라서 포스트 휴머니즘 사회가 도래한다면, 가장 먼저 도입해할 것은 인공 자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과 기계의 경계가 없어진 사회에서 출산만은 인간의 자궁으로 해야 한다는 생각은 구시대적 발상이라고 생각했으며 인공 자궁 기술을 도입함으로써 신체적 차이에서 오는 불평등을 해소하고, 출산이 갖는 한계를 극복하며 모성 신화와 같은 전근대적 이념을 타파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호모 파베르의 미래>의 비판적 포스트 휴머니즘에 감명을 받아 제작한 카드 뉴스 대사입니다.


비판적 포스트 휴머니즘 학자들은 새로운 기술들이 근대 서양 휴머니즘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그것을 극복할 계기를 마련했다는데 방점을 두었습니다. 이들은 현대 기술을 통해 기존의 인간관, 근대의 휴머니즘과 같은 억압은 극복되거나 버려진다고 주장했으며 불필요한 차별이 없어지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기술적 성공뿐만 아니라 근대 휴머니즘을 극복하는 새로운 주체성 개념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이에 여성에게 새로운 주체성을 부여할 인공 자궁을 고안했습니다.



포스트 휴머니즘 시대가 가져올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무엇일까요. 기계 다리, 팔... 신체를 기계로 대체하여 누리는 초월적인 역량도 좋지만, 저는 주체성의 변화에 주목했습니다.


임신, 오로지 '여성'만이 할 수 있어 신성한 행위임과 동시에 여성을 옥죄는 것.

아이를 임신하며 누리는 행복감과는 별개로

'임산부라면, 엄마라면 마땅히 감내해야 하는' 따위로 당연하게 여겨지는 많은 희생을 감내하게 됩니다.


여성을 '엄마'라는 이름의 족쇄로부터 해방시키고, 아이를 갖지 못하는 모든 사람에게 아이를 가질 수 있는 '부모'라는 새로운 주체성을 부여하고 싶었습니다.


신체적 차이의 불평등을 극복함과 동시에, 새로운 주체성을 갖게 해주는 것이 바로 포스트 휴머니즘 시대의 과제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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